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2002-06-21

“니 눈엔 내가 스탭으로 보이니?”

FILE NO .8 ┃소름끼친 <소름> 현장, “돈도 필요없으니 당장 떠라라”┃

저주받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은 공포영화 <소름>의 촬영현장은 유독 어수선했다. 촬영지가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던 시영아파트였던 탓에 으스스함은 더했다. 복도에 늘 흥건하게 고여 있었던 물과 곳곳에 깊게 드리운 어둠은 스탭과 배우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당시 제작실장이었던 김경미씨는 촬영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스탭들의 교통사고도 잦았다고 기억한다. 이 영화는 3월 말까지 촬영됐는데, 날씨는 유난히 추웠고 눈이 오기도 했다. 모두를 오싹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아파트가 불타오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기 얼마 전, 같은 아파트의 다른 편 동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스탭들의 정신은 혼미해졌다.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일부 아파트 주민들도 영화 촬영 때문에 이런 괴기스런 일들이 일어난다며 소란을 피웠다. 일부 주민은 “돈도 필요없으니 빨리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촬영을 방해했다. 촬영이 마무리되면서 김 실장을 비롯한 스탭들은 “<소름>은 소름끼친다”며 황급히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스쿨리: 몰더 요원은 <소름>을 찍으면서 귀신 소동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다지만, 사실을 확인해본 결과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의 내용과 촬영장의 분위기가 겹쳐지면서 공포가 극대화됐던 것뿐이죠.

몰더: 흠흠…. 다음 파일을 열죠.

FILE NO .9 ┃ “날 부른 게 정말 이승복의 동상이었을까”┃

<꽃섬>을 찍고 있던 어느 날, 제작실장은 배고픈 제작진을 위해 라면과 과자 등을 사서 촬영장소인 폐교로 향했다. 숙소에서 폐교까지는 평소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폐교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는 보통 때처럼 교문 앞에서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는 제작부원을 바라보며 30분째 걷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 남자는 제작부원이 아니라 운동장에 있던 이승복 동상이었던 것. 온몸에 소름이 끼친 그는 간신히 폐교에 도착했고, 생각해보니 이승복 동상이 손에 들고 있는 책의 모양이 날마다 바뀌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꽃섬> 제작진의 유령 목격담은 한없이 이어졌다. <꽃섬>의 주연 임유진씨는 평소 영(靈)적 존재에 민감했던 여인. 그녀는 같은 폐교에서 환상에 빠져드는 장면을 찍던 도중 다리가 없는 웬 꼬마가 와락 달려드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같이 비명을 지른 사람은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스틸 작가. 그도 남자아이를 목격했던 것이다.

임유진씨는 미술 스탭 중 한명과도 같은 유령을 본 적이 있다. 남해의 한 허름한 여관. 피곤했던 그녀는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두 여자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키가 작은 아줌마였고, 다른 한 사람은 흰옷을 입은 긴 머리의 예쁜 처녀였다. 임유진씨가 “당신들 누구야”라고 외치자 슬며시 사라진 두 여자. 그중 나이 많은 여자가 문을 잠그고 잠을 자던 미술 스탭의 방에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 미술 스탭은 같은 날, 오래 전 그 여관 옥상에서 자살했다는 남녀의 유령도 목격했다고 한다.

몰더: 전형적인 귀신 이야기입니다. 귀신, 유령은 여관에 자주 나타납니다. 유령들도 어딘가 머물고 싶어하지만, 오랫동안 사람과 살 수 없으니 떠돌이들이 스쳐가는 여관에 많이 깃든다는 거죠. 여관 자체에 상주하는 유령도 있겠지만, 지나가는 유령까지 끌어들인다는 게 임유진씨의 이야기입니다.

스쿨리: 글쎄요. 믿을 수 없네요. 다음 파일입니다.

FILE NO .10 ┃카메라에 들러붙은 공동묘지의 귀신┃

“Fuck!” 곽경택 감독은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롱테이크라지만 별로 어렵지 않은 장면, 그런데 테이크가 벌써 열다섯 번째다. 이날 <챔피언>의 미국 현지 촬영분은 극중 김현치 코치 역할을 맡은 윤상원이 김득구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비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데까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매번 시선을 돌리려는 마지막 찰나에 꼭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엑스트라가 카메라에 걸려들었고, 스탭이 카메라에 잡혔다. 심지어 제작부를 총출동시켜 어수선한 현장 상황을 통제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유오성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 불쑥 끼어들었다. “이거 괜찮아요?” 속이 탈 일이었다. 로케이션 마지막 날,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결국, 따로 찍기로 하고서 겨우 20번 만에 오케이 사인을 내린 순간, 이번에는 현장편집기와 모니터를 올려놓은 테이블이 털썩 주저앉았다. 새파랗게 질린 편집기사뿐만 아니라 다들 사색이 됐다. 그나마 모니터만 고장난 게 다행이었다. 그때서야 촬영부로 함께하던 현지 스탭이 촬영장으로 사용한 할리우드 포에버라는 공동묘지에 떠도는 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생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유명 배우를 이곳 저승에서야 만나게 됐다는 한 광적인 팬의 넋이 떠돈다는 것이었다. “이거, 우리 생각만 하느라 들썩거렸으니 그 귀신이 달라붙었을 법도 하다”는 곽경택 감독은 억세게 안 풀리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행복한 장의사>도 공동묘지에서 낭패를 겪었다. 이 영화의 첫 촬영은 공동묘지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이곳에서 촬영을 할 때면 어찌된 일인지 한 신을 찍으려면 꼭 네번씩 해야 했다. 잘 찍었다 싶어서 모니터로 촬영분을 확인해보면 문제가 한 가지씩은 생겨 재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엔 장면마다 4번 만에 촬영을 끝내며 스탭들은 덜덜 떨어야 했다. 공동묘지에선 ‘4’라는 숫자가 ‘死’자로 다가올 것 아닌가.

스쿨리: 이것 역시 공동묘지라는 공간에서 비롯되는 음습함이 스탭과 배우들의 긴장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음 영화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영화잡지사 이야기입니다.

FILE NO .11 ┃잡지사에 터잡은 마감 귀신들┃

월간지 <키노>가 이사한 지난해, 사무실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뒤숭숭했다. 특히 마감 때마다 회사에서 잠을 청하던 J모 기자가 이상한 꿈을 반복적으로 꾼 뒤로부터는 더욱 그랬다. 그는 주로 사무실 한 구석의 긴 의자에서 잠깐씩 잠이 들었는데, 하얀 옷을 입은 아줌마가 자신을 잡아 끄는 내용의 꿈을 꾸곤 했다. 마감 때가 다가오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무실에서 철야를 해야 하는 입장인 다른 기자들도 등골이 오싹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 모두를 놀라게 한 일은 한 기자의 생일날, 동료 기자들이 모두 모여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면서 일어났다. 모두 한쪽으로 모여서 사진을 찍었는데, 뽑혀 나온 사진을 보니 아무도 없었던 사무실 한켠에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 비스무레한 형상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발머리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자가 틀림없는 듯했다. 기자들 모두가 함께 있었던 자리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자,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결국 간부진이 결단을 내렸다. 귀신을 달래기 위해 고사를 지내기로 한 것. 사무실에서 한번, 어떤 절에서 한번 고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악몽을 꾸는 사람도, 귀신을 만났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씨네21>의 디자인을 책임진 회사 ‘디자인 이즈’의 J모 디자이너도 사내 숙직실에서 잠을 자면 항상 가위에 눌렸다. 형체가 어렴풋한 바가지 머리의 꼬마 아이가 그를 보며 웃고 있는 것. 희한한 일은 머리를 창가쪽으로 두면 가위에 눌리지만, 반대편을 향하면 아무 일이 없다고 한다.

몰더: 결국 충무로 귀신이 영화잡지로도 전이되는 건가.

스쿨리: 월간지건 주간지건 마감 때면 극도의 스트레스와 피로 속에 시달리는 헛것을 본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진실은 저 너머에….

국장: 음, 오늘 보고 잘 들었네. 종합을 한다면, 몰더 자네 의견은 어떤가.

몰더: 저는 귀신이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충무로에서 이런 일이 유난히 많은 것은 귀신이 필름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현시하려는 귀신이 자신의 존재를 증거하자면, 기록장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연극무대에서도 배역의 귀신들이 배우에게 씐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어쨌건 영화계 같은 곳이 원래 귀신이 많다니깐요. 일본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여우령>이란 영화를 봐도 한 여배우의 악령이 20년 뒤 다른 필름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스쿨리: 저는 반대입니다. 김성수 감독은 이런 해석을 내리더군요. “보통 괴담이 나오는 곳은 MT나 캠핑처럼 단체로 숙식하는 공간이다. 공포스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퍼져나간다. 한데 성인이 몇달씩 합숙생활을 하는 곳은 운동선수들과 영화계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화현장이 피로와 격무의 나날이다보니 종사자들의 체력과 정신력도 많이 약화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오는 일시적인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이들이 본 게 유령이나 귀신이라 해도 사람들에게 해코지한 적은 없다는 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죠.

국장: 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스쿨리: 그런데요, 평소부터 드리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귀신은 정말 존재하는 건가요? 우리 기관이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몰더: 사실 저도 좀 궁금….

국장: 하하, 진실을 알고 싶단 말인가. 그렇다면 누구도 듣지 못한 사실을 알려주지. 진실은 말이지….

(앞서 말한 대로 이 문서의 뒷부분은 의도적으로 잘려져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글 문석 ssoony@hani.co.kr·이영진 anti@hani.co.kr·김현정 parady@hani.co.kr▶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 충무로 영계 연구가 이광훈 감독

▶ 괴담의 해외 사례들

▶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 영상원의 유령 목격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