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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각본,주연 겸한 졸업작품 <쉬브스키> 찍은 김인권의 영화 만들기(2)
2002-08-31

젊음의 패기로 슛!청춘의 혈기로 OK!

시간, 배우, 스탭... 장애물을 넘어서

여기서 다시 두 번째 장애물. 열여섯 시간을 맞붙었던 악몽의 합기도장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전날 쉰밥을 먹은 감독이자 주연 김인권이 식중독에 걸렸는지 화장실을 쉴새없이 들락거렸다. 약국가서 지사제 먹고, 합기도 찍고, 다시 지사제 먹고, 합기도 촬영. 결국 김인권은 고모 충고에 따라 다음날 개고기를 먹고서야 기운내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어서 하고 많은 조그만 장애물들이 몰아쳤지만, 관장 역을 맡은 배우의 캐스팅 실패는 영화가 초반에 방향을 잡는 데 단서가 됐다. 시나리오에선 두명을 멋지게 제압하는 관장이, 실제 배우를 데려다놓으니 무술이 엉망이었던 것. 김인권은 “원래 니들이 보는 무술 시합은 다 짜고 하는 거야.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떠벌리는 식으로 관장의 캐릭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변두리 동네 관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사기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많은 인물들과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액션은 기본적인 동작만 맞췄을 뿐 실제로 치고받는 동네 싸움이 돼, 거의 맞기만 하는 김인권은 온몸에 파릇파릇한 멍자국을 달고 다녔다. 팔을 너무 심하게 꺾여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을 정도. 부모와 함께 TV를 보며 좋아하는 지블리언 아이들은, 배우로 데려온 김영아 PD 친구 아이들이 덥다며 짜증내는 바람에 설정과 달리 울고 떼쓰는 장면을 연출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단골로 가는 KFC 매장을 촬영 며칠 전에야 간신히 빌리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얼굴 팔아가면서 촬영 허락을 받고.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확실하게 펑크난 적도 한번도 없었다. <쉬브스키>는 신기할 정도로 만드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영화였다.

♣ 동국대학교 스튜디오 안에 위치한 <쉬브스키> 세트. 촬영이 없는 배우들까지 모두 나와 잡일을 거들고 있다.♣ 외계인 `지블리언`이 사는 집. 교수님 쓰시는 세트벽을 세워놓고 동국대 불교미술과 학생들이 일일이 손으로 채색한 천을 덧씌웠다.

솔직한 혈기로, 패싸움하듯

김인권은 <쉬브스키>를 만들면서 삼촌들이 입던 광택나는 의상을 가져왔다. “친삼촌은 아니구요. 그 왜 있잖아요.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드나들던 삼촌들. 나는 삼촌이 ‘장비’들고 다녀서 형사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에게 <쉬브스키>는 이렇게 옛날 옷을 다시 입은 것 같은 영화다. 활개치고 돌아다니던 기억과 자세히 관찰해보니 영역을 두고 다투는 짐승들 비슷했던 주위의 남자들과 일찍 어머니를 여읜 외아들인 탓에 아직도 미지의 존재인 여자들. 김인권이 알았던, 지금도 알고 있는 세계가 <쉬브스키>다. “촌스럽게 생긴 애들 다 모이라”는 말을 듣고 타고난 얼굴 그대로 응모했던 <송어>의 오디션, 거기서 따낸 산골소년 태주의 이름을 다시 한번 쓴 것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에 속한다. 한때는 트림할 때마다 콜라 요정이 나타나는 이상한 이야기나 고문받던 남자가 쓰레기통에 볼일을 보며 황홀해하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한 시기를 마감하는 졸업영화만큼은 그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편을 만들겠다는 김인권의 말을 듣고 “지레 겁먹어서 일일이 설득해야 했던” 스탭들이 두달 넘는 한여름의 강행군을 견뎌낸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가 아닐까. <쉬브스키>를 촬영하면서 엄청나게 뻔뻔해졌다는 프로듀서, 찌개 10그릇에 밥은 14공기를 놓고 먹으면서도 기운넘치는 어린 스탭들, 오다가다 간식비를 건네주는 스탭들의 사회인 친구들, 교수님 세트를 몰래 쓰도록 눈감아준 학교 선배, 외계인의 트림 소리와 괴성과 교성을 열심히 조합해 사운드트랙을 만든 음악감독. 알고보면 조금씩 비슷한 시절을 거쳤을 이들 때문에 <쉬브스키>는 <송어> <아나키스트> <조폭 마누라>의 배우 김인권의 영화라고만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한 혈기로, 패싸움하듯 정신없고 충동적으로 만든 영화 <쉬브스키>. 이 영화 제목의 어원 씹**를 거센 발음으로 눈치보지 않고 소리칠 수 있는 젊음이 <쉬브스키>를 1천만원 그 이상의 가치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쉬브스키> 촬영장에서 생긴 일야구장 2만원에 빌리기

촬영 막바지에 이른 8월 초, <쉬브스키>팀은 청구역 KFC 매장에서 태주와 장원이 치킨 먹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이때 카메라 사이로 불쑥 끼어든 할머니 한분. 스탭과 배우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떡을 팔기 시작했는데, 김인권이 갑자기 연기를 시작했다. “이건 얼마예요? 이거는요? 그럼 이거랑 이거 하나씩 주세요.” 할머니가 카메라를 흘끗거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태주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기 때문에 옆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거라는 것이 이 즉흥 연출의 변. 반면 희택과 태주의 싸움장면은 김인권의 의도와 관계없이 “연기에 탄력을 받은” 희택 역 배우가 혼자 끌고 나간 신이다.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김인권이 기절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두들겨팬 것. 놀란 배우와 스탭들이 말렸지만, 깨어나고 보니 그 당황한 모습이 더욱 리얼해 그대로 OK 사인을 내렸다. NG가 따로 없고, 컷을 외친 다음 제각기 할 일을 하는 모습도 최종 편집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김인권의 신조가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것은 내부의 상황뿐이 아니다. 가장 먼저 섭외를 끝낸 장소 중 하나인 야구연습장. 안심하고 야구장을 찾았는데, 야구장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대여료 30만원을 내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했다. 30만원이면 일주일치 간식비에 해당하는 금액. 그대로 물러설 수 없어 음료수를 들고 아저씨를 설득하기 시작, 결국 2만원에 합의를 봤다. 대신 영화 찍는 내내 “겨우 2만원 받고 내가 이걸 빌려줬어”라며 주민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참아야 했다. 정오까지만 매장을 쓸 수 있다는 KFC 본사의 허락을 외면하고 손님이 붐빌 즈음인 오후에 촬영을 감행한 것은 비교적 쉬운 경우였던 셈이다. 아프다고 촬영에 빠진 배우와 감정 싸움을 벌이는 마음고생까지 있었지만, 강촌 MT를 시작으로 출발한 <쉬브스키>는 결국 8월 중순 수많은 사고를 극복하고 촬영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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