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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투 퍼디션>과 샘 멘데스(2)
2002-09-06

이방인의 눈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해부하다

<아메리칸 뷰티> - 현세대의, 독창적인 이야기

그렇다면, 멘데스는 스필버그의 후광을 입고 할리우드에 무임승차한 ‘러키 가이’인가. 연극 시절부터 유난히 인복과 상복이 많이 따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순전히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보긴 힘들다. 10년 넘게 연극계에 머물면서 멘데스는 호시탐탐 스크린 진출의 기회를 노렸지만, 마땅한 ‘물건’을 만나지 못해 의기소침해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드림웍스가 <아메리칸 뷰티> 시나리오를 주기 전까지 나는 험난한 길을 걷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샘은 결코 영화를 만들지 못할 거야. 그 많은 프로젝트를 그저 집적대고만 있잖아’라고 수군대곤 했다.” 그가 집적댈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시대극뿐이었고, 그중에는 <도브> 같은 작품도 끼어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그는 “현 세대의 이야기, 독창적인 이야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아메리칸 뷰티>를 만났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미국사회에 대한, 미국적인 가치에 대한 영화에 선뜻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멘데스는 “모든 사물은 거리를 두고 볼 때 선명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차이나타운>이나 <트루먼 쇼> 같은 영화들이 모두 ‘미국인이 아닌 감독들이 만든 미국에 관한 영화’임을 숙지하고 있었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남아있는 나날들>처럼 영국에 관한 영화를 즐겨 만든다. 그런 그는 미국인이다.” 미국인이 아니라서, 좀더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 설 수 있었다는 그는, 그 덕에 할리우드의 ‘인사이더’가 됐다.

아이러니는 그뿐이 아니다. 멘데스는 두편의 영화에서 미국사회의 가정 붕괴를 통해 가족의 가치를 역설했지만, 그 자신은 ‘가족’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히스토리를 좀처럼 밝히지 않는 그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출판업에 종사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이혼한 부모는 그에게 ‘단란한 가정’의 기억을 선사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칼리스타 플록하트, 레이첼 와이즈를 거쳐 케이트 윈슬럿과 열애중인 그는 그들의 보금자리로 450만달러짜리 저택을 물색하고 다니면서도, “우린 약혼도 결혼도 하지 않는다. 지금 행복하고, 그걸로 족한다”고 못박는다. <선데이 익스프레스>에서 멘데스를 영국 최고의 신랑감 2위에 랭크시켰지만, 그가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일은 요원해 보인다.

영락없는 오슨 웰스

“잘할 수 없는 건 하지 않는다”는 신조는 멘데스의 영화세계, 그 안팎을 두루 아우른다. 그는 완벽주의자의 기질을 타고났다. 멘데스의 친지들은 그가 “학교에서도 언제나 톱 클라스였고, 뭐든지 수월하게 풀어가는 아이”였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뭐든 척척 잘해내는 수재 멘데스의 머리와 가슴속엔 늘 폭풍이 몰아친다. 그는 촬영현장에서 짐짓 태연을 가장한 얼굴로, 조바심을 친다고 한다. “연극 할 때는 ‘이 장면을 어떻게 가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 같이 얘기해 보자’고 말할 수 있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나 이거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건 자살행위다.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비주얼을 구상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메리칸 뷰티>는 단 한번의 수정작업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그런 사례는 스필버그가 지켜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유일무이했다. 암울한 시대, 비극적인 스토리를 빚어갈 <로드 투 퍼디션>의 배우들에게 “3개월 넘도록 빛을 멀리하라”고 주문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의 촬영을 맡았던 콘래드 홀은 그런 샘 멘데스를 오슨 웰스에 비견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남들에게서 뽑아내는 능력도 대단하다. 하는 짓이나 생김새나 영락없는 오슨 웰스다.”

샘 멘데스를 겪은 배우들도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배우들을 아주 잘 다룰 줄 아는 흔치 않은 감독이라는 사실. “함께 일하는 배우들의 가치와 중요성, 배우들의 기를 살려주는 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폴 뉴먼은 그것이 연극을 통해 잔뼈가 굵은 감독다운 어떤 통찰력과 노련함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더욱이 샘 멘데스는 특정 이미지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의 욕구를 잘 읽어낸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성취욕에 달뜬 중산층 여성의 이물스러움을 표현해낸 아네트 베닝이나 <로드 투 퍼디션>에서 살인과 협박을 일삼는 갱단원의 암울한 숙명을 체현한 톰 행크스나 파괴의 충동과 에너지로 똘똘 뭉친 똘아이 킬러 주드 로는, 분명 이전에 우리가 알던 그들이 아니었다. “누구도 이 역할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어한다. 기존의 타입에 상반되는 캐스팅이 훨씬 더 재밌으니까.” 관객이 특정 배우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미지를 캐릭터에서 비워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시도. 샘 멘데스는 그 방면에서, 이미 일가를 이뤘다.

<아메리칸 뷰티>와 <로드 투 퍼디션>, 겨우 두편의 영화로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샘 멘데스. 웨스트엔드에서 할리우드로, 연극에서 영화로 거점을 옮기는 와중에, 그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미국인의 이상과 가치,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외부자적’ 통찰력, 공간을 시각적으로 활용하고 침묵을 내러티브로 끌어안는 ‘무대인’의 여문 손끝, 그 낯설고도 친숙한 매력으로 관객을 도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톰 행크스도 샘 멘데스를 이렇게 말한다. “<로드 투 퍼디션>은 애초 값비싼, 메인스트림 스튜디오 테두리 안에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샘은 그러지 않았다. 가볍게 그 테두리를 넘나들었다. 그 속에 아나키스트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출에 평범함이란 없다.” 낯선 것은 대중적이지 않고, 대중적인 것은 낯설지 않다는 믿음은 빨리 수정해야 한다. 샘 멘데스가 휘두르는 양날에 언제 또 크게 한번 당하기 전에. 박은영 cinepark@hani.co.kr

샘 멘데스의 조력자들 - 콘래드 홀과 토머스 뉴먼 내년 오스카를 점친다

스필버그가 샘 멘데스에게 아버지 같다면, 그의 ‘전속’ 촬영감독 콘래드 홀은 푸근한 어머니 같은 존재다. 올해 나이 일흔여섯, 50년의 경력을 지닌 베테랑 촬영감독 콘래드 홀은 손자뻘인 신예 샘 멘데스와 궁합이 꽤 잘 맞는 편이다. <푸른 방>을 보러 온 톰 크루즈가 샘 멘데스에게서 <아메리칸 뷰티>의 시나리오를 받아 보고, 촬영의 적임자가 있다며 콘래드 홀을 추천한 것을 계기로,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콘래드 홀은 첫 만남에서 샘 멘데스가 꺼내 보인 엄청난 양의 스토리보드를 보고, 그의 비주얼에 대한 감각이 만만치 않음을 알아봤다. 샘 멘데스가 원하는 그림이 어떤 것이든, 만들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던 것도 바로 그때. 콘래드 홀에 대한 샘 멘데스의 애정과 신뢰도 대단하다. “그가 영화를 더이상 찍을 수 없게 되면 나는 그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 콘래드 홀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 이어 <아메리칸 뷰티>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샘 멘데스와 함께한 두 번째 영화 <로드 투 퍼디션>으로는 평단으로부터 더욱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케네스 튜란은 그의 촬영을, 밤의 레스토랑, 인적 끊긴 거리, 텅 빈 극장 등을 즐겨 그린 30년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비유하고, 로저 에버트는 올해 최고의 촬영이라며 내년도 오스카 수상을 장담하고 나섰다. 눈비 내리는 겨울밤의 한기까지 고스란히 전하는 촬영이라는 것. 샘 멘데스의 또 다른 조력자로 ‘전속’ 음악가 토머스 뉴먼을 빠뜨릴 수 없다. 영화음악가인 앨프리드 뉴먼을 아버지로, 70년대 가수 랜디 뉴먼을 사촌으로 둔, 음악가 집안 출신. <쇼생크 탈출> <언스트롱 히어로>에 이어 <아메리칸 뷰티>로도 오스카 작곡상 부문에 노미네이션됐다. 관객의 심리에 어필하는 곡들을 적재적소에 삽입한 <아메리칸 뷰티>에 이어, <로드 투 퍼디션>에서는 비극의 정조를 자아내는, 다소 장중하고 감상적인 곡들을 포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