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고질라>에서 <프릭스>까지, 인간을 습격한 변종괴물들(2)
2002-09-06

자연,성난 얼굴로 돌아보다

늑대, 개, 상어, 곰 - 인간을 습격한 생물들

론 채니 주니어가 주연한 <늑대인간> 이후 동물의 습격을 그린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새>는 60년대 이후 동물 공포영화의 전형을 만들어낸 걸작이다. <새>는 왜 새들이 갑자기 인간을 습격하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새들의 공격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인간은 자연에 대해 수많은 범죄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새들의 공격은 당연한 일이며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 믿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동물 공포영화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적의를 가진 존재로서 흔히 묘사된다. <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상어가 등장하여 평화롭게 수영을 즐기던 여인을 습격한다. 거대한 상어는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결코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존재다. 그러나 <죠스>의 원작자인 피터 벤츨리는 상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뒤에, “지금 상어에 대한 소설을 쓴다면 그렇게 적대적이고 포악한 존재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어는 사람들의 편견처럼 위협적이고 잔인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공포는 실제의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자책감에서 만들어진 죄의식이다. 동물 공포영화의 순수한 형태는 평범한 동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개를 훈련시켜 흑인을 공격하게 하는 <쿠조>, 가족을 잃은 범고래의 복수극을 그린 <올카>, 회색곰의 습격을 다룬 <그리즐리 곰> 등에는 자연상태 그대로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인간을 공격한다. 그건 아주 소박한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신비한 미지의 동물들은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화석으로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시일러칸스 같은 생물이다. 이미 멸종했다고 믿어지는 동물들이 나타나거나, 전혀 알지 못한 어떤 생물들이 등장하면 인간은 경외심과 공포를 함께 느낀다. 거대한 바다뱀이나 히말라야의 설인, 아마존의 공룡을 보았다는 목격담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의 생물들이 그것이다. 단순한 헛소리일 수도 있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도태된 ‘살아 있는 화석’의 발견이나 지금도 아마존에서는 새로운 동식물이 계속 발견된다는 것을 보면 미지의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코넌 도일 원작의 <잃어버린 세계>는 아마존 오지에 공룡들이 살아 있는 폐쇄된 공간이 있다는 설정이고, 1933년에 만든 <킹콩>에는 킹콩과 공룡들이 함께 거주하는 섬이 등장한다. 54년에 만들어진 <블랙 라군의 생명체>는 3억5천만년 전 사라진 인간과 물고기 사이의 기묘한 생명체가 아마존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설정 자체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여주인공인 줄리아 애덤스가 하얀 수영복을 입고 아마존을 헤엄쳐 다니는 장면이다. 괴물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드러낸 줄리아 애덤스의 몸매는, 당시 최고 인기이던 에스더 윌리엄스를 능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B급 공포영화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쓰는 이유 하나는, 이렇게 관음증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미지의 생물은 ‘알 수 없다’에 방점이 찍히는 만큼, 상상의 가지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케빈 베이컨 주연의 <불가사리>는 땅 밑을 기어다니는 거대한 미지의 생물이 사막의 주민들을 공격하는 영화다. <딥 식스> <레비아탄> <홀리데이 킬러> 등은 심해에 살고 있는 거대한 바다생물이 등장한다.

거대한 괴물들, 어쩌면 우리 마음속의 바벨탑?

기묘한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프릭스>처럼 변종생물들의 역습을 그린 영화는 대단히 강렬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 평소에 주변에서 익히 볼 수 있었던 곤충이나 벌레가 적의와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공격할 때 공포심은 배가된다. 변종생물이 영화에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미국은 승리했지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두려움을 불러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바벨탑처럼 신의 분노나 자연의 복수심을 일깨우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인간의 죄는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건 신화와 역사의 진리다. 55년에 만들어진 로버트 고든 감독의 <그것은 바다 밑에서 왔다>는 직접적으로 핵폭탄의 위협을 그려냈다. 방사능 때문에 거대해진 문어가 샌프란시스코를 습격해오는 이야기. 이후 <종말의 시작>(1957), <거대 게의 습격>(1956), <타란툴라>(1955), <블랙 스콜피온>(1959) 등 변종괴물영화가 대거 등장하면서 개미, 거미 등 곤충을 중심으로 갖가지 괴물이 출현한다. 일본의 <고지라> 역시 방사능 때문에 변형된 ‘몬스터’다. <고지라>는 핵폭탄에 맞은 일본인들의 심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54년작 <고지라>의 한 등장인물은 “나가사키, 이제는 도쿄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일본열도에 상륙하여 마구잡이로 도시를 때려부수는 고지라는 핵폭탄 같은 악마의 무기를 만들어낸 인간 자체에 대한 응징이다. 문명의 총화인 도시를 때려부수는 것은 고지라가 대행하는 천벌인 것이다. 가메라처럼 아이들의 친구도 아닌 고지라가 열렬한 사랑을 받은 것은 그런 이유다. 고지라는 무지몽매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 방종을 심판하는 절대자다.

동물과 곤충 대부분을 소진시킨 할리우드는 외계로 눈을 돌린다. 내부의 반역자를 고발하라는 매카시 선풍과 맞물려 할리우드는 SF공포영화들을 맹렬하게 만들어낸다. 50년대 공포영화의 외계인들은 뱀파이어,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의 기존 공포영화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외계에서 왔다> <바디 스내쳐> <저주받은 도시> 등은 변종생물들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보다 음산하고 비관적이다. 본능적으로 인간과 도시를 공격하는 변종생물과 달리, 외계인은 목적의식적으로 인간사회에 침입하고 내부로부터 괴멸시킨다. 외계인은 교활하고, 잔인하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인간은 더욱 교활해지고, 잔인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이 영화들이 주장하는 공통의 대응책이었다. 50년대 이후의 현대인들이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에 심각하게 시달리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