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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에서 <프릭스>까지, 인간을 습격한 변종괴물들(1)
2002-09-06

자연,성난 얼굴로 돌아보다

<프릭스>에서 거대한 거미가 습격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부의 음모설만 늘어놓던 사설 라디오 방송의 DJ가 하는 말 따위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 방송을 듣는다. 왜? 재미있으니까. 황당무계하지만, 아니 황당무계할수록 마을 사람들은 그 방송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변종생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새로운 <울트라맨> 시리즈를 계속 만들며 방영하고 있다. 형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3분 한도의 울트라맨으로 변신해서 망측스런 괴물들과 ‘싸움’을 벌인다. 가끔 광선을 내뿜기도 하지만 주된 기술은 여전히 수도와 던지기, 꺾기 등이다. 고난도의 레슬링 기술도 가끔 나온다. 고무옷을 뒤집어쓴 괴물들과 싸우는 울트라맨의 전장은 미니어처라는 것이 명백하게 보이는 도시 한복판이다. 이런 유치한 액션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인기도 높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하긴 <고질라>를 할리우드에서 만들었을 때, <고지라>의 오랜 팬들은 분노했다. 점프를 하며 공중을 붕붕 나는 할리우드의 고질라가, 뒤뚱거리며 짧은 앞발로 둔탁한 펀치를 날리는 고지라의 이미지를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가메라>처럼 완벽하게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이상, 변종괴물은 공포와 유머를 함께 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변종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이고, 마땅히 그건 조롱하고 비웃어야 할 일이니까.

태초의 변종들, 공포를 위한 공포

50년대 변종생물이 등장하던 공포영화는 공포 일변도였지만, 그땐 전쟁의 공포가 아직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쟁을 TV 속 이미지로 즐기는 시대다. 심각할수록 웃고 즐겨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환상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프릭스>도 끈질기게 유머를 견지한다. 거대거미가 난리치는 일은 끔찍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론 즐거운 일이다. 견고해 보이는 우리의 현실이 언제라도 거대거미에게 습격당하고 한순간에 몰락할 만큼 허술하고 나약함을 보여주는 <프릭스>는 유쾌하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거미떼가 거리 전체를 뒤덮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오랫동안 그런 장면을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서너 마리가 미니어처를 어슬렁거리는 정도였다. 거대거미의 ‘습격’이라면 당연히 거리, 도시 전체를 휩쓸어야 한다. 한 마리가 등장해서, 킹콩처럼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것은 너무 슬프다. 가슴도 아프다. 웃고 즐기기 위해서는, 도시 전체를 뒤덮어야 한다. 오만한 인간에게 복수하려면 그 정도로 과격하게 휩쓸어버려야 한다.

거대해진 곤충의 습격을 보면서 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놀라는 인간들이 더욱 웃긴다. 하지만 진짜 곤충이나 동물의 습격은 낯선 일도 아니고, 결코 무시할 것도 아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모기나 바퀴벌레와 씨름하는 정도지만, 산 속에서 조난을 당한다면 당장 동물과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현재의 지위에 이른 것이라고, 다윈은 말했다. 그 덕에 교과서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가르친다. 어쨌거나 현재 인간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영속적일 수 있을까? 인간은 동물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아니다.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모두 멸종한 것처럼, 인간 역시 순식간에 패퇴할 수도 있다. 인간은 동물들이 조직을 이루지 못하고 상징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실험에서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동물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개미나 벌의 조직은 인간사회 이상으로 효율적인 조직이다. 많은 SF영화에서 외계인의 사회를 개미나 벌의 조직 형태에서 유추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혹성탈출>이 보여주듯 동물들이 어떤 계기로 인간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혹은 인간이 퇴보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