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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몸부림칠 때>(가제)의 이수인(2)
2002-09-14

쿨한 농촌,쿨한 유머

"노인이다라고 객체화하는 게 아니라, 일단 나하고 같다고 보는 거다. 나도 나이들었지만 옛날에 비해 변한 게 없는데, 내가 60살 되면 철들까. 나이들어도 유아이고, 아이들은 좀더 기다려야 하는 어른인 거고. 그런 점에서 다 똑같은 것 아닌가. TV드라마 보면 노인을 대상화하거나,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것보다 '나이든 청년'들, 하지만 몸이 못 따라갈 때가 있을 거고, 그들의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주인공들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쓰고 나서, 그뒤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육체적, 정신적 디테일들을 보충하려 한다. 아이러니를 어느 정도 넣을 수 있을지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전혀 색다른 재미, 그게 내 목표다. 그 때문에 영화 전체에서 아이러니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곧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마치고, 이르면 9월 말 촬영에 들어갈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신중을 기하는 건 촬영감독을 누구로 하느냐이다. 이씨가 카메라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중히 섭외 중이다. 나와 소통이 잘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테크닉은 없다. 내가 테크닉 구사한다고 하면 사람들 얼마나 웃을까. 장면의 성격을 장악하고 있으면, 기본적인 구도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고. 다음은 정직하게, 멋부리지 않고 찍으려 한다. 영화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위치가 큰데, 그건 어느 정도 자신있고. 노인, 농촌하지만 쿨할 것이다. 쿨한 유머가 많을 거다."

연극 연출가 이 수 인

이씨는 연극판에서 배우가 주업이었고, 연출할 생각은 특별히 없었다. 80년대 말 그가 창단멤버로 들어간 극단 한강의 선배 연출가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져 연출의 공백이 생겼다. 할 수 없이 직접 연출에 나선 게 90년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대의 버스>였다. 제목에서 풍기듯 운동적 메시지가 강했던 이 작품은 전국 대학교, 공장 등 여러 곳을 순회상영했고 대중적 인기도 좋아 돈도 벌었다. 한강에서 <한겨울 밤의 꿈> 한 작품을 더 연출한 뒤 "90년도 넘었는데 사회주의 연극, 당에 복무하는 연극 주장하는 후배들이 너무 과격해서" 한강을 나왔다. 94년 극단 '오늘'을 차리고 대표를 맡으면서 <절망 세일> <탈렌트> 등을 연출했다. 한강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사회참여적 메시지가 있고, 이야기 중심의 연극이었다. 98년쯤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 중간, 끝, 그런 단절된 형식이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세상과도 거리가 있고. 이야기는 끝을 맺어야 하는데 그게 허구이고,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연극이 꼭 그런 걸 해야 하나."

그리고는 이오네스크의, 부조리 계열의 대표작 <대머리 여가수>를, 무대를 영국 가정에서 일본으로 바꿔 부조리한 느낌을 더 얹어 연출했다. 이어 소설의 자동기술, 자유연상 기법을 이용해 특별한 줄거리 없이 기억과 향수, 그리움 등에 대한 단상을 두 여배우가 독백처럼 내뱉는 <아누크 에메의 기억>, 체호프 원작을 과감히 생략하고 반복시키면서 변화를 꾀한 <갈매기> 등 실험적 연극을 연출했다.

문화운동패, 혹은 딴따라 이 수 인

이씨는 자신이 "젊어서부터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는 로마 주재 외교관을 할까, 그러면서 <김찬삼의 세계여행> 같은 책을 쓸까 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들어갔다가 1학년 때 학점 사정으로 2학년 과 배정에서 외교학과 아닌 지리학과로 갔다. "외교학과 갔다고 외교관이 됐겠어?" 그는 이미 학과 공부보다 연극반 활동에 빠져들어 있었다. 연극반에 간 건, "저기 가면 술먹기 좋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인데, 선배들이 연기를 시켜보고는 "서울대 연극반 사상 보기 드문 배우가 나왔다"고 격찬했다. 그 칭찬에 혹해 연극과 인연이 시작됐다. 그러나 대학 시절 그가 맡은 역은 주연 아닌 악역, 고문경찰이나 포주, 몽고군 앞잡이, 사이비종교 교주 등이었다. 졸업 뒤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동자문화운동연합 등 문화운동단체의 연극분과에서 일했다. 그때 문화운동판, 세칭 '딴따라'판에서 장선우, 유인택, 여균동, 이은, 오기민 등 훗날의 영화인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때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재미도 없고." 임범 isman@hani.co.kr

연극 연출

1990년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대의 버스>

1991년 <한겨울 밤의 꿈>

1995년 <절망 세일>

1997년 <탈렌트>

1998년 <왕은 죽어가다>

1999년 <어머니>

1999년 <삼자외면>

1999년 <비밀>

2000년 <봄날의 재즈 딸기>

2001년 <대머리 여가수>

2001년 <아누크 에메의 기억>

2002년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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