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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궁금하다2 - 기타노 다케시의 <인형들>
2002-09-19

비장미로 빚어진 절·대·사·랑

인형놀이가 기타노 다케시에게 새로운 취미는 아니다. <소나티네>와 <기쿠지로의 여름>의 물가에서 우리는, 부하들을 종이 스모 선수, 복어, 외계인 인형으로 둔갑시켜 즐겁게 노는 그의 모습을 구경한 적이 있다. 스스로 최초의 본격 애정영화로 예고한 <인형들>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처럼 인형극 무대와 객석에서 서막을 올리는 <인형들>(ド-ルズ)은 언제나 죽음으로 종결되는 비극적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본 전통인형극 분라쿠를,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을 빌려 필름에 옮긴 영화다.

'일본인의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아도 좋을 <인형들>을 구성하는 세 가지 러브스토리는 인공적 비장미로 빚어진 절애, 절대사랑의 사연들이다. 마츠모토는 부모님의 강권으로 언약식까지 치른 오랜 애인 사와코를 등지고 사장 딸과 결혼하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식 직전 사와코의 자살 기도 소식을 접한 마츠모토는, 목숨은 건졌지만 넋이 나가버린 사와코를 데리고 길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아기가 되어버린 사와코를 보호하기 위해 마츠모토는 선홍색 매듭으로 서로의 허리를 묶고, 두 연인은 '새끼줄 거지'라는 놀림을 받으며 하염없이 떠돈다. 마츠모토와 사와코의 끝없는 산책에 다른 두 사랑 이야기가 끼어든다. 노쇠해가는 야쿠자 보스 히로는, 30년 전 가난을 벗기 위해 암흑가에 투신하며 떠난 애인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녀가 주말마다 도시락을 들고 기다리던 공원을 다시 찾는다. 옛날의 그 벤치에는 도시락을 든 한 부인이 있다. 하루나 야마구치는 사고로 얼굴의 반이 흉터로 덮인 예전의 아이돌 스타. 하루나의 충실한 팬 누쿠이는 세상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하루나에게 극단적 방법으로 사랑을 입증한다. 그러나 꼭두각시의 줄을 쥔 마스터는 잔혹하다. <인형들>의 남녀는 겨우 사랑에 손이 닿는 순간 가루처럼 부서져간다. 이 감정의 '사무라이'들은 옥쇄하는 것 외의 길을 알지 못한다. 야쿠자 조직의 규율과 제의를, 미국의 갱들과 대비시켜 전시했던 전작 <브라더>에 이어 일본적 풍경과 정서를 스펙터클로 만든 <인형들>은 이국 취미에 대한 호소가 엿보인다(기타노 다케시는 차기작이 사무라이영화가 될 거라고 암시했다).

<인형들>은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징표 가운데 단가의 리듬과 유머, 폭발하는 에너지를 제거하고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또 다른 징표인 센티멘털리즘을 고도로 양식화한 영화다. 감독의 말마따나 보통 그의 영화를 추진해온 "침묵 다음의 폭발" 대신 "침묵 다음의 더 긴 침묵"이 이어지는데도, 미동이 없던 베니스의 객석은 기타노 다케시가 유럽에서 확보한 인기를 짐작게 했다. 기자회견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인형들>이 감상적일 뿐 아니라 매우 폭력적인 영화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관자놀이에 총탄을 박으며 미소지었던 기타노 다케시. 언제나 죽음에 대한 우리의 노이로제를 두고 웃음을 금치 못했던 그는, 사랑이라는 유혹적인 장식물로 죽음을 윤색한 <인형들>에 이르러, 죽음에 대한 오랜 페티시를 가장 높은 벼랑 끝까지 밀어올렸다.베니스=김혜리 vermeer@hani.co.kr

기타노 다케시 인터뷰"칼싸움 영화의 일반적인 도상학을 깨는 무협을 해볼까"

전작 <브라더>와 <인형들>은 일본적 문화, 정서를 이국적인 것으로 앞세우고 있는 점에서 과거 영화들과 달라 보인다.

그렇게 보면 위험할 수도 있다. <인형들>은 먼저 폭력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그것을 사랑 이야기와 혼합해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싶었다. <인형들>의 다양한 죽음은 매우 갑작스럽고 돌연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보다 폭력적이다. 이 영화는 내게 일본 문화를 보여주려는 시도라기보다 하나의 도전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처럼, 일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충격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거론되다니 영광이다.

분라쿠 연극과의 관련은.

분라쿠는 가부키, 노와 더불어 일본의 전통적 3대 연극의 하나다. 한 부류의 배우는 꼭두각시를 움직이고 다른 부류의 배우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내 할머니도 분라쿠에서 노래를 했다. 이 영화는 살아 있는 배우를 인형으로 쓴 분라쿠다. 그러므로 영화 내용도 현실이 아니다.

영화의 색채가 무척 화려하다.

지금까지 내 영화는 청색과 회색을 주로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팔레트의 모든 색을 쓰려고 했다. 예컨대 노랑색은 어렸을 때 본 정신병원 앰뷸런스의 노랑색이 남긴 인상 때문에 썼다. 앞으로 영화에서는 예전의 색채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의상을 담당한 유명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됐나.

오랫동안 교분이 있었고 <브라더>에서도 작업했다. 토론할 시간이 없어 분라쿠에 맞는 의상을 요구했는데 촬영당일 의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는 "이 영화를 하나의 패션쇼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웃음)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건 그 요란한 의상을 입기가 창피해서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계절은.

여자가 있을 때는 가을이고 없으면 여름이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면 분명 내가 이 영화를 자신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믿는 여자가 스무명쯤 있을 것이다.

다음 영화는.

칼싸움영화의 일반적인 도상학을 깨는 무협영화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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