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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두가지 시선(1)
2002-09-19

영화평론가 이효인과 정성일의 문제제기,혹은 딴지걸기

제작과정부터 말이 많았던 만큼, 기대도 많고 벼르는 이도 많았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9월13일 개봉했다. 게임의 틀을 씌우고, 액션에서 시작해 금강경까지 들이미는 전무후무한 형식과 내용의 이 영화를 두고 어떤 이는 ‘100억원짜리 고예산 컬트영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그렇듯, 이번에도 반응이 극에서 극으로 갈린다.

장선우 감독이 박광수 감독과 함께 코리안 뉴웨이브를 열어젖히던 80년대 후반 정성일씨는 영화평론을 쓰고 있었고, 이효인씨는 영화운동집단에 몸담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이씨가 영화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94년 장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나왔을 때 이씨는 지지의, 정씨는 반대의 양 극단에 섰다. 이후로도 이 둘은 장선우 영화에 관한 한 ‘친장선우’와 ‘반장선우’의 대표 평자처럼 여겨져왔다. 이제 막 본모습을 드러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해, 이 둘로부터 리뷰를 받아 싣는다. 편집자

이효인, 슬픈 시선을 지닌 액션게임영화를 발견하다세상을 향한 그 측은지심이여!

이효인/ 영화평론가

법도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상하게도, <화엄경>에서 휘었던 법도의 길은 <거짓말>이라는 저자거리로 나오자 오히려 똑바른 길이 되었다. <화엄경>을 볼 때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이런 방식으로 뻥을 치다니….” 그런데 <거짓말>을 볼 때는 다른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돌려 말하다니, 이런 방식으로 연막을 치다니….” 물론 <거짓말>은 아나키스틱한 세계관이 뱉어낸 포스트모던한 가래침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 속에는 법도의 길을 가고자 애쓰는 발버둥의 흔적도 있었다. 그래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더 낮은 저자거리로 내려서는 영화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원안인 독립영화 감독 김정구의 시는 얼마나 가슴을 저미는지….

똑바른 길로 가자. 게임방 카운터 희미를 중국집 배달부 ‘주’는 사랑한다. 희미를 닮은 ‘성소’를 만난 ‘주’는 라이터를 사고, 이후 게임에 빠져든다. 이러저런 사연을 거쳐서 ‘주’는 ‘성소’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죽는다. 현실과 가상 현실의 혼동, 많이 들은 얘기 아닌가? 나에게 궁금한 것은 혼동하게 되는 계기가 아니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에 시공간을 초월해서 훼까닥하는, 그 엑스터시의 순간, 그 순간을 결정짓는 진정한 계기, 그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장선우는 그것을 보여주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 대신 장자의 나비 꿈처럼 이야기를 엮고, 마지막엔 금강경에 나온다는 구절 하나를 읊어주었다. 보이는 상은 허상이다,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 때 진정한 상을 보게 된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보기에, 똑바른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별심을 없애자. 우선, 현실과 가상 현실을 구분말자. 희미는 성소이며, 성소는 게임 속의 성소다. 중국 음식 배달 갔더니 주문 한 적 없다고 딱딱거리는 년놈들을 기관총으로 모조리 갈겨버리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 안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안죽여도 죽인 것처럼 후련해지고, 죽이더라도 안죽인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법도의 길로 들어선 ‘주’에게 희미나 성소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동일하다.(분별하지 말라고 했다.) 밤늦게 희미를 차에 태우고 가는 놈이나 성소의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기생 오래비같은 가수나 같은 놈이었다. 못가진 측에 속하는 ‘주’에게 그놈들은 가진 놈들이었다. 이 분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 혹은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랑 혹은 측은지심의 대상 또한 성소이자 <꽃잎>의 소녀였다. 하지만 그 연약함을 짓밟는 폭력과 영화 <성소>의 날아다니는 폭력 스펙터클은 분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 장선우는 분별하지 말자고 제안하면서 분별하게 만드는가.

하지만 돌아가도 길은 나온다.장선우가 액션으로 가득찬 이 난처한 영화를 만든 것은 놀랍지 않은가, 정말? 젊어야, 생명이 있어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톰 크루즈를 타고 다니는 라라가, 미끼없는 낚시를 던지는 추풍낙엽이, 액션 감독 정두홍과 수많은 와이어 액션들이 멋있던가? 아무리 장선우라는 이름을 지우고 보더라도 액션게임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멋있지는 않다. 그것은 도처에 숨어있는 장선우의 슬픈 시선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장선우의 이야기는 버전 1인데, 버전 2에서 열반의 세계를 그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슬프지만 희망을 갖자는 얘기다, 세상을 향한 그 측은지심! 이것이, 꽁꽁 얼어붙은 밤거리를 떠돌다 쓰러진 성냥팔이 소녀가 나오는 첫 시퀀스과 합쳐지는 순간 진정한 장선우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그 캐릭터들과 액션들이 멋있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장선우 감독은 먼길을 구태여 돌아간 셈이다. 갖은 논란 속에서 <나쁜 영화>와 <거짓말>을 치르느라, 성정이 어려지는 대신 정신은 지친 것처럼 보인다. 그 반대였다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액션게임영화를 통해서도 진지한 슬픔을 표할 수 있고 세상을 향해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장선우라면, 돌아가도 길은 나온다는 말이다. 장선우는 지금 ‘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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