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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이 회상하는 영화제에서 생긴 일 [2]
정리 임범(대중문화평론가) 2002-10-04

영화제의 상부상조

재정기반이 안 좋아도, 영화제가 좋으면 사람이 몰리고 돕는 이가 생긴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는 세계의 다른 국제영화제들이 십시일반하고 있다. 몇년 전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갔다. 재정사정이 안 좋은 탓에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싼 비행기표를 보내와서 가는 데 30시간 걸렸다. 영화제 가서도 심사 대상영화가 20편이라며 아침 먹고나면 영화보고, 점심먹고 영화보고 하루 세편씩 일주일 내내 보다가 왔다. 그래도 영화들이 좋고, 영화 조감독들이 직접 자원봉사자로 나서 게스트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 영화제는 올해 재정사정으로 열리지 못할 뻔했으나 베를린과 로테르담영화제가 지원을 해줘 지난 4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 영화제가, 경제난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남미 독립영화의 열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제들도 이 영화제에 초청돼 갈 때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부산국제영화제)도 올해 한상준 (전)프로그래머를 비행기 값을 줘서 심사위원으로 보냈다.

칸, 베를린 힘겨루기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가 도빌국제영화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게 프랑스 신문에 보도가 됐을 거다. 얼마 뒤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질 자콥 당시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서울 가기 전에 칸에 들러달라고 했다. 칸에 초청할 한국영화 때문에 그러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도빌영화제는 칸영화제보다 두달 전에 열리는데, 한국이나 아시아영화 신작이 도빌에 가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빌과 칸은 규모가 전혀 다르니까 걱정 안 해도…, 뭐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

지금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모리츠 데 하델른이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칸영화제가 영화학교 졸업생 작품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을 신설하면서 우리에게, 한국 및 아시아 영화학교 학생들의 작품 중 좋은 게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좋다고 했고, 얼마 뒤 베를린영화제에서 하델른을 만났더니 그가 묻더라. 부산국제영화제와 칸영화제의 유착관계가 뭐냐고. 그만큼 신경전을 벌인다.

민병훈 감독의 <울지마, 괜찮아>가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통해 카를로비 바리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이 결정됐을 때, 칸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다. 미리 봤어야 하는데 놓친 것이다. 뒤늦게 보고서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양쪽이 그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자기쪽에 끌어오려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사이에 두고 담판을 벌인 일도 있었다. 결국은 카를로비 바리 경쟁부문으로 갔다.

영화제 심사

국제영화제 심사는 대부분의 경우 심사위원들간에 합의가 이뤄진다. 그런데 그 시간이 한참 걸릴 때가 드물게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에서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다 개성이 강했다. 심사위원장을 호선으로 뽑아달라고 영화제쪽에서 요청하는데, 심사위원장이 왜 필요하냐며 거부했다. 심사위원장 없이 두 시간 동안 난상토론 끝에 수상작들을 뽑았다.

또 한번은 인도영화제 때 심사위원 넷 가운데 나를 포함한 셋은 그럭저럭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심사위원장을 맡은 헝가리 감독이 결정을 안 내리고 다음날 다시 회의하자고 했다. 그 심사위원장은 다음날도 결정을 못했다. 결국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넷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했다.

영화제에서 맺은 주점결의

영화제는 사람 사귀기 좋은 곳이다. 해외영화제에 가서야 술 한잔 하게 된 한국 감독들도 많다. 특히 칸과 로테르담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올해 로테르담에선 사이먼 필드 집행위원장, 이 영화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네덜란드의 평론가 피터 반 뷰렌, 그리고 심사위원장으로 온 허우샤오시엔 셋 다 술을 좋아했다. 나랑 넷이서 술을 자주 먹었다. 로테르담영화제 로고가 타이거이고, 내 이름엔 호랑이 호(虎)가 들어간다. 그래서 넷이 ‘타이거 클럽’을 만들었다. 제일 나이 많은 내가 ‘빅브러더’하고, 허우샤오시엔이 막내하고, 넷이서 영화제 같이 다니자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차 회합이 있겠지.

며칠 전 산세바스찬영화제에서는 빔 벤더스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오고 해서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 같은 호텔에 묶게 돼 몇번 만났다. 함께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던 <수리요타이>의 MC 차트리찰레름 유콘 감독과 셋이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놀러갔다. 그 건물 4층의 4개홀 중 세곳에서 빔 벤더스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34점쯤을 출품했는데, 완전히 사진작가였다. 참 재주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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