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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PIFF 집행위원장이 회상하는 영화제에서 생긴 일 [1]
정리 임범(대중문화평론가) 2002-10-04

오스카 뒤의 큰손들만 모이는 영화제가 있다구?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가장 많이 가본 사람은? 단연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일 것이다. 1988년부터 92년까지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할 때 한국영화를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국제영화제에 다니기 시작해, 9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뒤부터는 1년에 2∼4개월을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보낸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가는 영화제만 1년에 4∼6개에 이른다. 매년 초청장이 오는 영화제가 30여곳. 다 가지는 못하고 비행기 값을 대주는(보통 한 국제영화제가 다른 국제영화제 관계자를 초청할 때는 비행기 삯은 빼고 숙박비만 제공한다) 곳만 다녔다.

올해는 유달리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영화제도 많고, 스스로 가보고 싶은 영화제도 있어서 13곳의 영화제를 다녀왔다. 처음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다른 영화제쪽의 대접이 그저 그랬지만, 이제는 부산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져 올해 베니스영화제 같으면 모든 영화를 보고 기자회견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배지를 받았다. 또 영화제에서 잡아주는 호텔의 별수도 갈수록 높아진다. 김 위원장이 들려주는, 국제영화제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엮어 정리했다.

인상깊은 영화제들

미국의 오스카상 후보가 지명되기 직전에, 거론이 되는 영화들을 모아서 트는 팜스프링스영화제가 있다. 팜스프링스는 일종의 실버타운으로, 은퇴한 영화인들이 많이 산다. 그중에는 아카데미 회원이 많아 오스카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노인들이 자기 차를 몰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영화보러 몰려오고, 독특한 영화제였다.

일본 후쿠오카에는 두개의 후쿠오카영화제가 열린다. 둘 다 아시아영화들을 모아 튼다. 하나는 마에다 부부가 사재를 털다시피하면서 10여편을 모아 튼다. 또 하나는 후쿠오카시가 주최하고 평론가 사토 다다오가 집행위원장을 맡아 운영한다. 80년대 말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할 때부터 한국영화를 고르러 오기 시작해 지금도 부산영화제를 꼬박꼬박 찾는 마에다 부부도 인상깊지만, 시가 운영하는 영화제에는 무척 부러운 것이 있다. 40여편 되는 초청작의 필름프린트를 하나씩 모두 구입해서 후쿠오카 시립도서관에 보관한다. 이제 15회를 맞아 상당히 쌓인 그 프린트들을 가지고 시네마테크 형태로 운영한다.

규모가 큰 영화제 중에는 로테르담영화제가 가장 서민적으로 느껴진다. 서민적이라는 건, 영화보기가 쉽고 관료적인 냄새가 덜 난다는 뜻이다. 원래 작은 영화제였는데, 95년 사이먼 필드가 집행위원장이 된 뒤 경쟁영화제로 바꾸고 상영작도 다큐멘터리, 단편 합해서 800편 가까이 되는 큰 영화제다. 일반 관객의 호응도도 높다.

고군분투하는 영화제들

생긴 지 얼마 안 된 필리핀 마닐라의 시네마닐라영화제가 있다. 지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갔다. 이 영화제는 정부의 지원없이 스폰서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해 후원사정이 좋지 않았고, 마침 검열 등등 복잡한 문제까지 얽혀 출품작의 상당수가 공항 세관에 묶였다. 그래서 상영을 취소하거나 필름 아닌 비디오로 틀었다. 나는 원래 넷팩부문 심사위원으로 초청됐으나, 넷팩부문 영화들 거의가 세관에 묶여서 보지도 못했다. 또 본선 경쟁부문의 심사위원 중 상당수가 오지를 않았다. 영화제쪽은 나더러 본선 경쟁부문 심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본상 심사하다가 왔다. 초청할 때는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 타고 오면 환불해준다고 했는데, 환불도 못 받았다.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올해 다른 영화제에서 만났다. 올해는 스폰서가 나타나 사정이 좋아졌다고 말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역시 지지난해 2회쯤 된 시네베거스 영화제가 있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그해 다른 국제영화제 상영작을 대표할 만한 그 나라 영화를 집행위원장과 함께 초청해 트는 색다른 형식이었다. 그런데 카지노가 많은 곳에서 열려, 사람들이 도박에만 열중한 탓인지 관객이 아주 적었다. 나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송어>를 가지고 갔다. 카지노가 딸린 호텔의 극장에서 <송어> 상영 직전에 영화를 소개하는데 관객이 7∼8명이었다. 모든 영화가 다 그랬다. 20∼30명 수준이었다. 한 일본영화 감독이 무대인사하러 올라왔는데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무대를 내려와서 영화제쪽에 항의하는 걸 봤다. 이 영화제는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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