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저예산 독립영화 <뽀삐> 제작일지(2)
2002-10-05

짖어라 강아지!찍어라 카메라?

2001년 12월

우리 연출부와 제작부는 세상에 희귀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운전면허가 없다. 캐스팅과 헌팅을 갈 때 나의 주요 임무는 운전이다. 동물구조관리협회, 야생동물보호협회, 각종 훈련소, 애견농장 등 서울 근교를 하루에 다섯 시간씩 운전한다.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여! 꿈꾸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라!”

제작실장이 협찬받은 물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한킴벌리 뽀삐 화장지가 100박스, 네슬레 퓨리나에서 사료, 개껌, 개집 등 각종 애견용품 박스들이 사무실 한켠을 채웠다. 캐스팅은 물론 장소 헌팅에 돈을 안 주고, 저 물품들로 때울 걸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촬영장소들이 애견센터, 동물병원 등이 대개인데다 캐스팅 역시 강아지가 수십 마리 출연하기 때문에 이 물품들이면 상당부분 제작비를 대신할 수 있다.

독립영화는 돈이 없기 때문에 무척 고단한 현실이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몸으로 때우는 것. 게다가 ‘조건없이’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2002년 1월

며칠 전부터 팔다리가 가렵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몸 전체가 근지러워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되었다. 회의 중에 이런 증상을 호소하자, 김지현은 자신은 평생을 긁으며 살아왔다며 병원에 가도 별 소용이 없을 거라 한다. 그 말을 믿고 며칠을 버텼지만 더이상 가려움증을 참지 못하고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가 대뜸 묻는다. “집에 애완동물 키우나요?” “네, 강아지 네 마리 있는데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애완동물과 떨어져 살아야 해요.”

그냥 평생을 긁으면서 살기로 했다.

연출부가 ‘아프리카 동물병원’에서 섭외한 뽀삐 후보 ‘짱아’는 사람을 너무 물어 주인이 안락사시키려고 병원에 데려온 강아지다. 차마 죽일 수 없어 병원에서 미용모델로 쓰고 있는 강아지인데, 그 미모가 정말이지 출중하다. 게다가 잘 짖고, 잘 무는 강아지로 여러모로 주연 캐릭터에 ‘딱’이다. 그러나 백현진과 리허설을 하기로 한 날, 김지현 감독은 단칼에 자른다. ‘짱아를 안고 있는 백현진이 너무 게이 같다’는 것이 이유이다. 어이없지만…. 내일부터 또다시 주연 강아지를 찾아 서울, 경기 전역의 애견카페, 애견센터 등을 전전해야 한다.

스탭들 대개는 독립영화, 혹은 디지털영화는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작업이 나에게는 정작 ‘일’인데 말이다.(김지현 왈)

순수하게 남을 돕는다는 건 3일 이상 가기 어렵다. 독립영화라는 명분으로 스탭에게 개런티 안 주고 한달 이상 일 시키는 것은 죄악이다.(임필성 왈)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