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4)
2002-10-11

우리는 코미디 특사,˝찍자, 웃자, 뜨자!˝

전주 OO모텔 OOO호

오늘 밤은 혼자 자야 할 것 같다. 정우 놈은 이번에 내려와선 같이 안 잔다고 선언한 뒤 잽싸게 방을 옮겼고, 조감독은 치과 예약해놨다며 오밤중에 서울에 다녀온다고 하고선 나가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소인원 3명을 확보했는데, 이젠 큰 방이 썰렁하다 못해 무지 크다. 감독방은 열린 사랑방이어야 한다는 내 지론이 오늘은 허물어지는구나 싶다. 아까 모텔 앞에서 (강)성진이를 만나 조금 있다 심심하면 놀러오라고 했는데, 올지는 모르겠다. 스탭들이랑 어울려 있는 걸 보니. 경구랑 승원이랑 윤아씨랑도 다 포스터 촬영한다고 촬영장 불 밝혀놓고 사진 찍고 있을 텐데 거기나 가볼까. 에이, 일단 콘티나 준비하고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정우, 이놈은 다 씻었으면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잠시 내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정우 __

촬영장에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네. 배우들 모여서 고생하는데 한번 들러야지.

김상진 __

작업한다면서 왜 내려오냐.

박정우 __

버전업이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김상진 __

그래도 어제 한 시간 분량 정도 되는 러시필름 보니까 느낌이 팍 오지?

박정우 __

모르겠는데.

김상진 __

너무 잘 찍어서 그런가. 웃기는 부분에서도 일부러 잘 안 웃더만. 그래도 작가더러 수정해달라는 건 다 배려 차원에서 하는 거야.

박정우 __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긴. 하여간 당신 이번엔 좀 이상해.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할 때는 슬렁슬렁 찍을 때도 있었는데. <광복절 특사>는 어찌된 건지 매일 라스트 장면 찍는 것처럼 하냐. 저 사람이 얼마나 크게 터트리려고 저 짓 하는지 싶다니까. 돈독 올랐다고 내게 그러지만, 당신 욕심도 만만찮다니까.

김상진 __

나도 과욕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다. 흥행은 무조건 1등 해보고 싶지만, 그거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모르는 거고. 이번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어렵네.

박정우 __그래서 처음에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아이템만으로 시작할 때는 다 잘될 것 같지. 근데 막상 풀기가 쉽나. 탈옥한 뒤 계속 도망다니는데, 나도 시나리오 고치다 보면 상상력에 한계가 온다니까. 어디로 이들을 보내야 할지 장소도 생각 안 나. 그런데 혼자 마구 흥분해서 들어갔으니. 거기에다 이번엔 조명에 카메라 앵글에 엑스트라 동선까지 꼼꼼히 따져서 가려니까 버겁지. 연출부들, 괜히 나만 봐도 인상쓴다니까. 오죽했으면 (설)경구 선배도 나한테 욕하더라. 만날 땅 속에 묻혀 있다 진흙투성이가 돼 나오니까.

김상진 __

오늘 장면부터가 고비인데 쉽게 갈 수 없잖아. 라스트로 몰고 가는 연결장면이고. 전반부에 툭툭 뱉어놨던 대사들이 뇌관처럼 여기저기서 하나씩 폭발해야 하니까. 나도 신경 예민해졌어. 배우들도 클로즈업이 많아지고 앵글이 타이트해지니까 힘들겠지. 조금만 움직여도 벗어나니까.

박정우 __

심오한 메시지까지 전달하려고 그러잖아. 주제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발언 같은 거. 어깨에 힘주지 말자고 할 때는 언제고.

김상진 __

할말 있으면, 그래 조금 하고 가자 정도지. 사회비판이니 그런 건 아니라니까. 다만 이 사람들도 세상 살 만한 놈들이다, 근데 너희들 우릴 색안경 끼고 본다, 우리도 세상에 같이 동참할 권리가 있는데 너무 쓰레기 취급하고 악으로 정리하는 거 너무하는 것 아니냐, 그런 거지.

박정우 __

입봉하면 난 부담이 없는데. 당신은 앞으로 어떡할지 참 부담돼. <주유소 습격사건>은 떼거지 난동으로 해먹었고, <신라의 달밤>은 캐릭터로 재미 좀 보고. 이제는 ‘볼거리’까지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다음엔 도대체 뭘 먹고 살려고 그러나?

김상진 __

찍어보니까 전작에 비해 시간이나 돈이나 많이 들어가. 이민호 PD가 자비로라도 프린트 떠서 칸에 가자고 그랬다니까. 교도소 외경은 전주 세트에서, 각종 사무실과 복도는 양수리에서, 정문은 군산교도소에서 찍는 것도 좀 그래. <주유소…>는 한 장소에서 쭉 가니까 그런데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찍는데도 옮겨서 찍어야 하니 컷 연결까지 신경써야 하고. 상황 자체가 디테일하게 갈 수밖에 없어. 내가 이명세 감독님은 아니지만, 세팅 자체가 단순한 벽과 철창이다보니 미장센 신경 안 쓰면 빈틈이 보인다고. 그러면 리듬도 죽고. 관객이 보면서 ‘에이 저거 말도 안 돼’ 그러기 시작하면 인물들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지는 거지. 미술부가 죽어나.

박정우 __

그래서 코미디가 어려운 거라니까. 어디 한두 군데서 눈살 찌푸릴 정도로 갸우뚱하면 치명적이거든. 그러면 나중에 나오는 장면은 재미가 반감돼. 한번 꺾이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거지. 외면하게 되는 거고.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토를 달게 되고. 배우의 힘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진 잘 왔으니까, 뭐.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