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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2)
2002-10-11

우리는 코미디 특사,˝찍자, 웃자, 뜨자!˝

전주 남부시장 입구

그냥 숙소에서 시나리오나 좀더 만지는 건데 괜히 나왔나 싶다. 아니, 김 감독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해서 낭패를 보고 있는 중이다. 별 대응없이 미적거렸더니, 역시 마수를 뻗쳤다. 지금 시내 한복판에서 퇴근 차량 대열에 치여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감독, 아무거나 잘 먹게 생겼는데, 자칭타칭 미식가다. 배 채우면 그만, 이라는 내 소신하곤 반대다. 밥 한번 먹으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전주 시내에 널린 게 소바집인데, 기어코 남부시장에 위치한 그 집에 가서 먹어야 한단다. 말이 되는가. 3천원짜리 소바를 먹겠다고, 비싼 기름과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다니. 빡빡한 촬영 스케줄 때문에 몸보신해야 한다면서 전주를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도착하는 데까지 무려 1시간이나 걸린 것은 맘에 안 든다. 들어서자마자 미리 와서 ‘후루룩’, 벌써 반 이상 먹은 김 감독이 “너 오면서 계속 툴툴거렸지”라고 묻는다. 답하기도 전에 “왜 안 그랬겠어”라면서 다시 코박고 차가운 면 다발을 식도로 넘기는 김 감독. 사실 목이 아니라 속이 탈 것이다. 요즘 보면 그가 여간 ‘짠’한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고생 좀 해보라, 며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니.

김상진 __

내일 찍을 것은 다 했지?

박정우 __

그거야 해놨지.

김상진 __

나도 들어가서 빨리 콘티해야 하는데.

박정우 __

그러니까 누가 이 먼곳까지 오래.

김상진 __

어차피 숙소 가는 길 아냐?

박정우 __

딴 길도 있어.

김상진 __

파트너하고 함께 해야지.

박정우 __

에이. 파트너가 아니라 고용인이지. 특히 이번엔 제작까지 직접 하니까. 고용인 덕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에 대해 매사 감사하라고 해놓고선.

김상진 __

그건 그렇지.

박정우 __

웃기지 마. 취향이 안 맞았으면, ‘한편 잘했으니, 이제 찢어지자’고 했을 거야.

김상진 __

그런데 왜 지금까지 남았냐?

박정우 __

당신이 잡았지. 내가 그랬나. 물론 편한 건 있지. 좀 하다보니 ‘이 사람이 뭔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대충 알게 됐으니까. 그냥 툭 내뱉은 말인지, 아니면 장고 끝에 내놓는 건지 판단이 서니까 나도 편해. 구구절절 ‘썰’을 안 들어도 ‘이 장면을 어떻게 만들어줬으면 하는구나’ 다 아니까. ‘박정우는 뻔하다’고 그러지만, 딴 사람하고 해봐, 어디 나만한 사람 만나기가 쉽나.

김상진 __

내 그래서 다른 작가 데려다 준비시키려고 하잖아. 그거 몰랐냐?

박정우 __누구든 고생 좀 할 거야. 우리가 잘 맞는다고 하면, 당신은 술로 스트레스 풀고, 난 일로 푼다는 차이점 때문이야. 만약 그것까지 당신하고 같았으면 영화 3편 같이 못했지. 감독이라는 사람이 만날 술만 먹고 다니니까. 부산 기억하지? 시나리오 작업하고 있는데 오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술 먹으러 갔잖아. 그때 ‘아, 난 이 사람이랑 정말 일 못하겠다’ 그랬지. 얼마 안 돼 서울에서 프로듀서가 온다기에, 이제는 좀 나아지겠군 싶었는데, 이번엔 술친구 생겼다고 데리고 나갔으니까. 그때 나 하나 배웠어. 이 X같은 세상, 내가 참고 살 수밖에 없구나.

김상진 __집중하라고 그런 거지.

박정우 __감독이 시나리오 쓸 때마다 옆에서 같이 진을 뺄 필요는 없다고 봐. 현장에서 발휘를 해야 하니까. 그래도 그때 그 나쁜 습성을 바로잡아줬어야 하는 건데.

김상진 __초반에 아이템 뚝 던져놓긴 하는데. 확실한 감을 잡기까지는 헤매.

박정우 __

그 피해가 나한테 오잖아. 다 써놓으면, 이건 아닌데라고 나중에 뒤집고. 더 골때리는 건 한번에 다 고칠 수 있는데 매번 찔끔찔끔. 그러다 오늘 작업은 여기서 끝내자고 그러니 라스트 장면만 대여섯번씩 쓰게 만들잖아.

김상진 __

그래도 첫눈에 ‘이거다’ 하는 건 안 건드리잖아. 내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느낌 좋은 건 메모 안 해도 안 까먹어. 시나리오를 빨리 읽는 편인데도, ‘어, 이거다’ 하고 순간적으로 웃기는 장면들은 손 안 대지. 사실 시나리오 수정이 계속되면, 나중엔 재밌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른다고. 그래서 난 각 버전에서 재밌는 거 하나씩만을 기억해. 나머진 그냥 잊어버리지. 찍어놓은 것만 쏙 빼다가 담아가도 충분하니까. 작가야 힘들겠지.

박정우 __

나니까 버틴 거지. 대부분 편지쓰고 도망가.

김상진 __

너도 <광복절 특사> 쓰면서 그랬잖아.

박정우 __

처음이야. 그런 건. 작가 없는 방에 홀로 가서 가슴 한번 미어져봐라. 뭐 그런 심정이었는데.

김상진 __

나중엔 이빨 갈면서 지가 왔으면서. 끝장보자고. 그때 그 편지 내용 기억하냐.

박정우 __

별거 있나. 나 더이상 힘들어서 못 쓰겠다, 그랬지. 그리고 밑에다 쌈마이 작가라고 적었지. 웃긴 건 폼 잡고 집엘 갔는데 내 달링이 ‘왜 이렇게 빨리 왔어?’라고 걱정스레 묻는 게 아니라, ‘오빠, 내일 어디 놀러가자’는 것 있지.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놀러갈 계획을 짜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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