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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1)
2002-10-11

우리는 코미디 특사,˝찍자, 웃자, 뜨자!˝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는 ‘공생’관계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지만, 정작 촬영에 돌입하면 ‘동거’에 들어갈 정도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에 이어 <광복절 특사> 역시 마찬가지. 한때 각자 갈 길 가자며, 이번엔 다른 사람, 다른 프로젝트를 물색하는 척하더니, 또 뭉쳤다.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두 탈옥수의 고군분투를 그릴 <광복절 특사>의 촬영은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개봉이 늦춰졌고, 남은 일정 또한 소화하기 만만치 않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배터리의 못 말리는 아웅다웅은 극중 무석(차승원)과 재필(설경구)의 설전 못지않았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세치 혀를 라켓 삼아 인정사정 없이 주고받는 핑퐁게임만으로도 <광복절 특사>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을 터. 두달 넘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전주를 급습, 그 숨막히는 게임의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모았다. 편집자

김상진 vs 박정우

1967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입문. <돈을 갖고 튀어라>로 데뷔했으며, 그 밖에 <깡패수업> <투캅스3> 등을 연출했다. 이후 <주유소 습격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으로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환갑이 될 때까지 코미디영화에 매진할 생각이며, 칸영화제는 그 다음 목표라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쌈마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면서도, 곧잘 ‘넘버원은 자신’이라고 호언해서 주위의 눈총을 사기도. 현재 <광복절 특사>를 찍고 있다. 체인점으로 김상진 베이커리를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는 그는 실제 요리에도 능통하다.

1969년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정지영 감독 아래 연출부를 시작으로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감독이 되기 위한 초고속 방편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택했다. 딱 3편만 하고 데뷔한다는 것이 당시 계획. <마지막 방위> <키스할까요> <산책>의 각본을 썼다. 다른 감독에게 주려고 썼던 <주유소 습격사건>이 엉뚱하게 좋은영화에서 영화화되고, 그해 대박 행렬을 만들어내면서 스타 작가로 급부상.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를 집필하면서 감독 데뷔 시기는 늦춰졌다. 올해 필름매니아라는 영화사를 차렸지만, 얼마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린 데다 뒤이어 <광복절 특사>에 합류하는 바람에 정작 연출 데뷔작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새 사무실 의자에 앉아본 기억조차 많지 않다.

전주공업고등학교 안 오수교도소 세트

“자, 수고하셨습니다.” 하루 촬영을 갈무리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 나온다. 등나무에 엉덩이를 붙이곤 신발부터 벗었다. 발을 나무 테이블에 걸쳐놓았는데 별 효과가 없다. 종일 지열(地熱)과 심열(心熱)로 달궈서 그런가. 얼굴까지, 온몸이 발갛다. 벌써 전주 세트에 ‘입소’한 지도 한달이 넘었다. 개학하기 전에 촬영을 마치겠다고 약속했는데, 일정은 한참 어긋나 있다. 수업이 끝났는지, 교복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삐죽댄다. “학교 안에 웬 교도소냐”는 학부모들의 항의도 심심찮다. 전엔 현장에서 목소리 높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간간이 짜증도 내뱉는다. 부담이 늘어선지 ‘활력지수’가 떨어진 것 같다.

2년 전 겨울. <신라의 달밤> 찍을 땐 천년 고도 경주의 지형 덕에 눈 한번 안 와서 촬영이 순조로웠는데. 올해는 하늘도 안 도와준다. 장마와 태풍으로 촬영이 지연됐다, 개봉은 11월22일로 연기됐다. ‘천하태평, 만사긍정’이 신조지만 느긋하지만은 않다. “광복절 특사? 개봉일을 추석에도 못 맞추고, 개천절도 넘기게 생겼는데 무슨 광복절” 지미향 대표가 일갈한다. 딴청밖에는 수가 없다. “오늘 많이 찍었어?” 필터까지 타들어간 손끝의 담배를 처리할 무렵, 정우가 현장에 떴다. 여전히 졸린 듯한 눈에 얼굴은 희멀겋다. “넌, 얼마나 많이 썼냐?” “오늘 세 장면이나 썼다.” 얄미운 것이 영락없는 <톰과 제리>의 제리다.

김상진 __

어이, 존경하는 작가 양반.

박정우 __

닭살 돋게 하지마, 날로 먹는 감독.

김상진 __

캐스팅해줄 테니까, 그럼 니가 해봐.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어줬더니.

박정우 __

됐어. 벌써 9월이 다 가는구만. 전주 내려올 때가 8월이었는데.

김상진 __

도대체 그동안 넌 뭐했냐?

박정우 __

내 말이 그 말. 아직도 라스트 장면 고치고 있으니.

김상진 __

정작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한 건 오늘부터면서.

박정우 __

말하는 것 하곤. 자기가 설정을 계속 바꿔대니까 그렇지.

김상진 __

내가 문제냐, 꿈이 문제지. 꿈에 ‘떡’ 하고 나오는데 그냥 버릴 수 있나. 하늘이 점지해준 장면인데. 물대포 진압 장면, 죽이지 않냐.

박정우 __

그것만 들어가면 되는 줄 알어? 앞뒤 장면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데.

김상진 __

유별나게스리. 네 임무가 뭐냐? 그걸 대본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이번엔 중간에 힘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장면마다 좀 임팩트 있게 가자는 발상을 하던 차에 그런 꿈을 꾼 거 아냐. 내가 촬영 들어가면 노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연구한다고. 주야불문하고. 사실 <주유소 습격사건>의 라스트 장면도 꿈에서 본 거잖아. 이쪽 팀하고, 저쪽 팀하고 오해하게 되는 설정.

박정우 __

그건 원래 시나리오에도 있었어.

김상진 __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설정 바꾸자고, 성남여관으로 불렀잖아.

박정우 __

어쭈 큰소리는. 콘티까지 그려다준 거 내가 까먹을까봐. 내가 이런 중노동에 시달리는 시나리오 작가라니까.

김상진 __

관객 반응 좋았으면 됐지.

박정우 __

오히려 그게 문제야. 전날 만들어서 잘되니까 재미 들려가지고는. 촬영장 가는 버스 안에서 시나리오를 바꾸질 않나. 당신이 무슨 홍상수야? 이번에 내가 된통 걸렸지. 그 변덕에.

김상진 __

나라고 그러고 싶냐? 너도 현장 가봐라. 시나리오 때보다는 ‘더 세게, 더 폭력적으로, 더 코믹하게’ 뭐 이렇게 가게 된다고. 나야 순서대로 찍는 스타일이다보니 나중에 가면 라스트를 대폭 수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박정우 __

시나리오대로 찍는 영화 없다는 거 누가 모르나. 그래도 나같이 불쌍한 작가가 다신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야.

김상진 __

투덜거리긴.

박정우 __

그냥 해주면 약오르잖아. 빨리 쓰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늑장 부리고 그래야 작가 고마운지 알지. 그래야 나도 고소하고. 물론 당신은 이제 이력이 나서 잘 보채지도 않지만.

김상진 __

너도 어차피 내가 또 변덕부려서 엎을 걸 아니까 요즘은 잘 쓰지도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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