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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용 감독에 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2002-10-11

영화계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박기용 감독은 영화감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기 전 프로듀서로 활동을 했고, 해외 세일즈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또 현재 그는 영화아카데미의 주임교수로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의 배경에는 꽤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영화이력이 자리한다. 애초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했지만, 영화에 그리 큰 뜻이 없었던 그는 막연히 군대에 들어간다. 제대 말년 불현듯 영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영화아카데미에 3기로 입학한 그는 이민용, 정병각, 이영재, 안재석 감독 등과 함께 열정을 불태운다. 1년 동안 광고업체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뒤,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던 그는 김태균 감독 등이 주도한 ‘영화공장’에 참여한다. 빡빡한 도제시스템에 몸을 내맡길 것을 거부하는 영화아카데미 출신 젊은 영화인들은 이곳에 모여 대안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혈기만으로 충무로에 입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회로로 선택한 길은 비디오용 영화였다. 비디오용 영화로 수익을 낸 뒤, 이를 바탕으로 본격 영화에 도전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공장의 첫 작품인 16mm영화 <광, 1990>에서 박기용은 연출을 맡았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현남섭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김형구 기사가 촬영을 맡았던 이 작품은 사실상 그의 데뷔작인 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은 뒤 박기용은 탈진상태에 빠진다. 영화를 마구잡이로 찍을 수밖에 없게 한 열악한 여건보다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밤마다 영화 만드는 꿈을 꿨다. 편집실에서 사고를 치거나 촬영이 망가지는 등등.”

좌절한 그를 재기할 수 있게 한 발판은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마련됐다. 이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살아났다. 그가 갑자기 이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게 된 단순치 않은 사정을 파악하려면 88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졸업한 다음해 그는 남산 영화아카데미의 한 방을 빌려 동기생들과 함께 영화에 관한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4기생인 김형구 기사가 한 덩치 큰 외국인을 그 방으로 데려왔다.

그는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였다. 레인즈는 그해 베를린영화제 포럼을 통해 소개된 한국 독립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한국을 찾은 길이었다. 애초 레인즈는 김윤태 감독과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마침 김 감독이 외국에 있는 상황이라 김형구 기사를 소개받았고, 영어에 큰 재주가 없었던 김 기사는 어릴 적 외국에서 생활한 적 있어 영어가 능숙한 박기용에게 무작정 레인즈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감독들을 소개시켜주면서 레인즈와 교분을 맺었고, 훗날엔 레인즈의 소개로 한국을 찾는 외국 평론가나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됐다. 박광수 감독과의 만남은 토니 레인즈의 초청으로 91년 밴쿠버영화제를 찾으면서 이뤄졌다. 그는 그곳에서 영국 <채널4>와 박 감독이 추진 중이던 방북 다큐멘터리의 프로듀서를 제안받는다. 얼떨결에 수락하고 10개월 동안 준비했지만, 북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프로젝트는 무산된다. 그뒤 박기용은 자연스럽게 <그 섬에 가고 싶다>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된다.

해외 마케팅과 세일즈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당시,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 프리마켓인 시네마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완성된 뒤에는 유럽에서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일을 끝낸 뒤 95년에는 영화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의 한국편인 장선우 감독의 <한국영화 씻김>에서 프로듀서를 맡게 됐고, 이 연장선에서 장선우 감독에 관한 토니 레인즈의 다큐멘터리 <장선우 변주곡>에서도 프로듀서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현재 황규덕 감독에 이어 1년 남짓 영화아카데미의 주임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내가 영화아카데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상당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역할을 맡았다”고 그는 말한다. 하긴 그와 가까운 대부분의 영화인이 아카데미 출신이고, <모텔 선인장>의 조감독이었던 봉준호(11기) 감독, 연출부 세컨드였던 장준환(11기) 감독 등 두 영화의 스탭 중 상당수도 아카데미 후배였다는 점을 따져보면 그의 아카데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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