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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수 PD-노희경 작가가 말하는 <고독>(2)
2002-11-01

˝무모한 젊음에의 청/춘/예/찬˝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등의 드라마를 보면 강한 대사들이 많고 유난히 선언하는 듯한 대사가 많았는데요. <고독>은 어떤가요.

노희경: 난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말들은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사랑이나 인생에 대해 단정짓거나 정의내리기를 좋아했고 대사 중에 일부러 그런 정의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면 이젠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영우가 “내가 싫어요”라고 물으면 경민이 “싫다 그러면 갈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말은 싫다고 하면 뭐 해요. 내 눈빛이 기면 긴 거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턴 대본쓰는 게 힘들어졌어. 대본은 결국 말인데 말이 중요하지 않아졌으니…. 원 참.

표민수: 안 그래도 이번에 노 작가 대본을 받아보면서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딱히 어떤 어떤 부분이 변했다기보다는… 음, 예전 대본이 무사들이 휘두르는 검술 같았다면, 각으로 밀어붙였다면, <고독>은 사뿐사뿐한 느낌이 들어요. 뭐랄까 방패랄까. 정의하지 않고 주장을 펴지도 않아요. 사실 저는 이런 게 더 좋아요. 일상적인 말들만 죽 늘어놓아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뜻이 생기더라구요.

노희경: 우리가 늙어서 그래요. (웃음) 나 자신도 경민의 나이와 엇비슷해지다 보니 내가 해답을 주고 판단해줘야 하는데 주춤주춤하게 되니까 사실은, 글쓰기가 힘들어요.

표민수: <거짓말>을 좋아했던 시청자들이 보면 혹 달라졌다거나 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전 우리가 새로운 길을 봤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독한 대사를 못 써서 안 쓰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우리나이 같이… 마흔같이 쓰고 찍는 거죠. 뭐.

순수는 때론 삶의 시간보다 힘이 있어요

설명을 듣고 있으면 오히려 경민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찍혀지는 경민의 드라마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노희경: 극 자체는 경민이 중심이지만 결국 이 드라마는 무모할 수 있는 젊음에 대한 ‘청춘예찬’이에요. 영우는 젊기 때문에 오히려 경민을 관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의 지쳐 있음이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왜 지쳐 있지 누가 저 여자를 지치게 했지’를 고민해줄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경민 속에 깊이 뿌리박힌 고독을 밀어내는 거죠. 순수는 때론 삶의 시간보다 힘이 있어요. 삶의 깊이나 관조보다 강한 거예요. 맞바꿀 수 있다면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다버리고 돌아갈 수도 있을 만큼 매력적인 것이 젊음이죠.

표민수: 경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먼저 늙어버린 여자예요. 이미숙씨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나이의 허함들을 표현해달라고. 그냥 서 있는 나무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그에 비하면 류승범은, 영우는 그 나무를 방망이로 계속해서 통통 쳐대는 소년 같은 느낌이었어요.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노희경: 2부에서 경민이 자기 버리고 떠난 남자를 몇십년 만에 만나도 담담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여자예요. 상처준 남자를 만나도 상처처럼 안 느껴지는 무뎌질 대로 무뎌진 여자. 사랑도 귀찮아지는 나이. 그러니 어린아이들 사랑놀음에 내가 왜 끼나. 저질러논 일들 처리하기도 바쁜 인생에 무슨 사치스럽게 사랑이야. 그런 거죠.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사랑이 귀찮다고 말하는 그 말이 거짓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걸 영우가 일깨워주는 거죠.

경민의 죽음이 너무 일찍 예고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노희경: 뭐 숨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민이 극 초반에 전이성난소암 판정을 받는데 그저 40대에 죽음이 찾아오면 그 죽음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죽음이 두려운것은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 세상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원없이 해봤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구요.

표민수: <거짓말>에서는 ‘유부남을 만나선 안 되는 3가지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이번엔 ‘죽음을 이기는 3가지 방법’을 이야기해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웃음)

<거짓말>에서는 유부남과의 사랑이었고, <슬픈 유혹>은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웠고 <바보같은 사랑>은 기혼자들간의 사랑을 다루었고 이번엔 15살의 나이차이를 가진 연하의 남자와 연상의 여자라는 설정이에요. 너무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지적도 있고, 소재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표민수: 세상에 극단이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생각과 맞지 않으면 극단이고 나의 생과 맞지 않으면 극단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편견이거든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이런저런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잖아요. 그게 전부 보통의 정서와 맞을 순 없다구요. 그런데 그런 보통 정서에 어긋나면 편견이 되고 극단이 되는 거죠. 아마 딴 사람들이 모두 극단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우린 이런 이야기를 안 할 것 같아요. 인간들의 여가시간을 갉아먹으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순 없잖아요. 뭔가 다양한 삶을,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희경: 지금 대본을 쓰는 작업조차도 나 자신 속에 있는 편견과의 싸움이에요. 40대와 20대의 사랑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걸 매개로 해서 우리가 얼마나 편견덩어리이고 모순덩어리인가를 직시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한 드라마를 통해서 극단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위안을 주고, 평범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겐 자유를,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에겐 세상의 고민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체력이 되는 한 극단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것 같은데요. 누군가는 또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린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백은하 lucie@hani.co.kr

류승범 인터뷰“나이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은 뭘까”

아직도 우리 머릿속엔 <화려한 시절>의 반항아 철진이 남아 있는데, 류승범의 머릿속엔 오로지 다시 못 올 사랑에 빠져버린 영우만이 맴돌고 있는 듯했다. 편안하고 진지해진 태도에서는 이제 소년이 아닌 ‘사내’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왔다.

그간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선 비교적 본인의 실제 캐릭터와 유사한 역할들을 맡아왔던 데 비하면 영우는 연기의 폭을 한뼘쯤 넓히는 인물인 것 같다. 처음에 제안받았을 때 망설여지지 않았나.

→ 캐릭터 때문에 망설여지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른 역할이라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데 오히려 <고독>에서의 연기가 지금한 것 중 제일 편안하다. 배우들에게는 오히려 캐릭터를 계속해서 드러내줘야 하는 연기가 힘들다. 그간 연기했던 인물들을 실제 내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 역시 나의 일부분이겠지만(웃음), 나에겐 개구쟁이 같고 재미있는 캐릭터가 오히려 힘들었다. <고독> 같은 드라마는 큰소리로 외치거나 빽빽되지 않아도, 껄껄대고 웃지 않아도 되고, 힘을 빼서 대사를 해도 상관없이 편하다. 그저 대본에 충실하고 느낌만 가지고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핵심적인 드라마의 메시지를 찾아낸다면 연기하기 편한 드라마다.

어떤 메시지를 찾아냈나.

→ 글쎄. 작가, PD선생님은 세상에 대한 편견에 대해 집고 넘어가려는 부분이 큰 것같다. 물론 나 역시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하고. 하지만 이 드라마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은 나이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은 뭔가, 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분명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 안에서 이끌어냈다.

이런 사랑에 빠졌다면, 하는 가정을 수없이 해보았을 것 같다.

→ 당연하다. 해야 할 숙제였고, 해보기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보다 15년 연하의 여자가 나를 좋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일반적인 멜로는 아니라는 거다.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건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는,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몇살 너는 몇살이라는, 너는 남자 나는 여자라는 전제를 두면 불가능한 거라고. 그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거라고.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대본에 웃으라는 지문이 엄청나게 많다. 작게 웃으며, 크게 웃으며, 서글프게 웃으며… 등등. 담담하게 말하는 것 아니면 웃는 거, 둘 중 하나다. (웃음) 일단 영우라는 인물이 누구보다 밝은 캐릭터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 웃음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현재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 없다. 초반에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푼 게 다행인것 같다. 그렇게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고민을 끝내논 상태라 솔직하게 힘든 게 하나도 없다. 연출이나 대본이나 스탭들이나 상대연기자나 그 어떤 것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 평가받기 이전에 가장 편안하게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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