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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렉터를 해부한다(1)
2002-11-08

우아하고 아름다운 악의 화신

신화가 된 악당, 한니발 렉터는 누구인가 한니발 렉터가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를 영화화한 <레드 드래곤>으로 돌아왔다. 렉터를 체포한 FBI 수사관 윌 그래엄과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다루는 <레드 드래건>,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이 렉터와 교감하면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양들의 침묵>, 2편에서 탈출한 렉터가 플로렌스에서 위기를 겪은 뒤 스탈링과 재회하는 <한니발>. 18년에 걸쳐 완성된 이 삼부작의 생명은 다른 누구도 아닌, 광기어린 살인마이자 뛰어난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다. 심장을 먹어치우는 살인마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의 심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렉터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한니발 렉터’ 시리즈가 원작인 영화 <맨헌터>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은 모두 소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다를 때는 소설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맨헌터>와 <레드 드래곤>의 원작은 국내에 <레드 드래건>으로 출판됐다.편집자

한니발 렉터는 첫번째 소설 <레드 드래건>에 단 열 한 페이지 등장했다. 그는 지하감방에 갇힌 채로도 누군가의 영혼을 조종할 수 있는 인상적인 악역이었지만, <레드 드래건>을 한니발 렉터의 소설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7년뒤 <양들의 침묵>이 출판됐을 때, <뉴욕 타임즈>는 ‘식인마 한니발의 귀환’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렉터를 환대했다. 렉터가 쉽게 잊혀지는 조연에 불과했다면, 단순히 렉터의 비중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제목을 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맨헌터> <한니발>을 제작한 디노 드 로렌티스가 초자연적 존재에 가까운 렉터의 위력을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 기사 이후로도 13년이 지난 뒤였다. <한니발> 프로모션 투어 도중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디노, 정말 알고 싶어요. 처음에 누가,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한니발 렉터를 체포한 거죠” 드 로렌티스는 그를 파산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맨헌터>를 <레드 드래곤>으로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번엔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렉터의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어둡고 사악한 눈동자 유럽인들은 근대의 문턱에 이르러서도 ‘사악한 눈동자’가 있다고 믿었다. 렉터는 바라보기만 해도 한 생명을 꺼뜨리고 만다는 바로 그 눈동자에 가까운 기운을 지닌 인물이다. 클라리스 스탈링과 렉터의 첫만남, 스탈링은 렉터가 신체적으로 연약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눈길에 붙잡혀 움직이지를 못한다. 어두운 갈색으로 그늘진 렉터의 눈동자. 흔들리는 전등 그림자가 비칠 때마다 붉은 빛을 내쏘는 그의 눈은 깊은 상처를 견디며 FBI 연수원까지 달려온 스탈링을 무력하게 포박해버린다. 비슷한 장면은 <한니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집시 여인은 렉터의 눈이 사탄과 같은 붉은색이라며 겁에 질리고, 산 사람을 물어뜯도록 훈련된 돼지떼도 렉터의 눈길 앞에선 털을 눕히며 물러선다. 렉터는 정말 악(惡)의 결정 자체인 것일까 <한니발>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을 렉터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조용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니발 렉터의 사건 파일그리고, 모두가 살해되었다

한니발 렉터는 그레엄에게 체포되기 전까지 아홉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비교적 중요하게 등장하는 희생자는 볼티모어 필하모니의 수석 플루트 주자 라스페일이다. 하얀 넥타이와 연미복 차림으로 발견된 그의 시체는 흉선과 췌장, 송아지였다면 ‘스위트브레드’라는 고급 요리 재료로 불릴 만한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그 즈음 렉터는 자신이 후원하고 있던 볼티모어 필하모니 단원들과의 만찬 도중 재료를 알 수 없는 메인요리를 제공했다. 여섯 번째 희생자는 렉터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온몸이 찢긴 채 화살이 박혀 있던 그 남자는 해부교과서 <부상자>의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고, 우연히 렉터 박사의 책꽂이에서 그 책을 발견한 그레엄은 범인의 정체를 직감했다.

<양들의 침묵>의 탈출 이후 렉터의 살인 행각은 좀더 상세하게 묘사된다. 렉터는 두 경찰관의 얼굴을 물어뜯어 너덜너덜한 살덩어리처럼 만들어놓고 달아났는데, 그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았다.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너선 드미는 여기에 시각적 상상력을 덧붙여 마치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매달린 희생자의 최후를 연출하기도 했다.

역사적인 지식과 미적 감수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가장 렉터다운 살인은 <한니발>의 플로렌스에서 일어났다. 불운한 희생자는 렉터를 생포해 현상금을 받으려던 형사반장 파치. 렉터는 500년 전 그의 조상 프란체스코 파치가 창자를 쏟으며 목매달렸던 바로 그 창문에, 파치를 똑같은 모습으로 내던졌다. 플로렌스에서는 서툰 연주로 렉터의 신경을 건드린 비올라 주자와 렉터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전임 박물관장, 렉터를 납치하려던 납치전문가도 살해당했다. 그러나 스탈링에게 정액을 뿌렸던 <양들의 침묵>의 정신병자 믹스는 오직 렉터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해당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렉터와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혀를 물어뜯어 자살했다. 이것도 살인은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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