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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정치·역사 영화(1)
2002-11-08

신의 뜻,혹은 인간의 오만

9·11 이후가 그 이전과 다른 점은 전세계가 확연히 둘로 나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정의의 카우보이 대 악의 축의 대립이건, 신의 뜻을 수행하는 자들과 이를 거부하는 자의 대립이건, 이 대립은 자본과 힘의 일방적인 집중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 초강자와 절대 약자의 대립에서 눈물 흘리는 건 약자 쪽일 수밖에 없다. 예술은 이 지점에서 개입한다. 9·11 이후 정치와 역사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영화예술의 정세를 살펴본다.남동철 / 김혜리 / 문석 / 박은영 / 김현정

고향의 노래 A Marooned in Iraq

▶ 아시아영화의 창/ 이란/ 바흐만 고바디/ 103분

▶ 11월19일 오후 5시 부산2, 11월21일 메가박스5 오후 5시

쿠르드족 버전의 <집시의 시간> 또는 <서편제>. 쿠르드족의 서글픈 삶을 에밀 쿠스트리차 풍의 유쾌한 분위기로 녹여내는 영화. 미르자는 쿠르드족의 정서를 담는 음악을 연주하기로 유명한 노인. 그는 전처 하나레로부터 전갈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그녀가 살고 있다는 이라크 국경지대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소재를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산적떼를 만나 가진 것을 다 털리거나, 남의 사랑싸움에 끼여 난데없는 소동을 겪기도 한다. 3부자가 하나레를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이라크의 폭격으로 주민을 거의 잃은 한 마을에서 미르자는 하나레의 딸을 만나게 된다. 그저 3부자의 시끌벅적한 여행담으로 보였던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표정을 바꾸는 순간은 산 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를 만날 때다. 그는 아이들에게 비행기 관해 설명하면서 ‘비행기의 목적 중 하나는 운송이지만, 다른 하나는 폭격’이라고 설명한다.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일상이 돼버린 이곳에서 비행기나 폭탄의 개념도 우리들의 그것과 다른, 절박한 것이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3부자는 이 아이들을 상대로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고 그것은 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고향의 노래>는 분노나 증오를 설파하지 않는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에 배척받으며, 폭격과 학살을 피해 타의에 의한 유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쿠르드인들의 운명을 아련한 멜로디에 담아 전할 뿐이다. 우리라면 그것을 한(恨)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됐고 시카고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3세계 영웅 3rd World Hero

▶ 아시아영화의 창/ 필리핀/ 마이크 드 레온/ 93분

▶ 11월20일 오전 11시 부산3, 11월22일 오후 2시 부산3

필리핀의 김구, 그는 정말 영웅이었을까. 필리핀의 건국영웅 호세 리잘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는 두명의 제작자가 있다. 막상 제작 결정은 했지만, 그에 관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가 고민이다. 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리잘은 누구/무엇인가’ 둘은 리잘의 삶을 꼼꼼히 반추하며 그의 영웅성을 조롱하기도 하고,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두 제작자는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리잘 본인과 가족, 정부 등과 대화를 나누며 진실을 파헤친다. 은 변종 전기영화가 아니다. 주인공들은 리잘의 정체를 밝힌다는 ‘미명’ 아래 필리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정체성을 되묻는다.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룬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필리핀의 괴짜 감독이라는 마이크 드 레온은 우디 앨런을 연상케 하는 수법으로 즐거움을 준다. 리잘의 정부가 갑자기 나타나 “어떻게 내 캐릭터를 그렇게 망가뜨릴 수 있나”라며 항의하거나,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윽박지르는 제작자에게 리잘은 “난 너희 영화 밖에선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뿐인데 어떻게 답을 줄 수 있냐”고 말하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한 역사학자의 역사관을 ‘진짜’ 대변하는 영화.

구름 아래 Beneath Clouds

▶ 월드시네마/ 호주/ 아이반 센/ 87분

▶ 11월20일 오후 5시 부산1, 11월22일 오후 2시 메가박스7

변방의 소녀, 아웃사이더 소년을 만나다. 백호주의를 포기했다고 하지만, 호주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여전히 백인들이다. 흔히 애보리진(Aborigin)이라고 불리는 호주의 원주민은 영국 등에서 건너온 백인들에게 밀려 마이너리티로 살아가고 있다. 감독 스스로가 애보리진인 탓인지 한 소녀와 소녀의 여행을 그리는 <구름 아래>의 시선은 독특하다.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애보리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탓에 스스로를 다른 애보리진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레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시드니로 발길을 옮기고, 감옥에서 탈출한 ‘순수’ 애보리진 본이 그녀와 함께한다. 애보리진과 백인의 관계를 보는 데서부터 호주의 풍광을 담아내는 시선까지 왠지 낯선, 그래서 신선한 느낌이 드는 영화.

신의 간섭 Divine Intervention

▶ 월드시네마- 비평가 주간/ 프랑스·모로코·독일/ 엘리아 슐레이만/ 92분

▶ 11월17일 오후 5시 부산1, 11월18일 오전 11시 부산2

작가주의 영화에 CG를 입히면? 인간의 삶을 궁극적으로 관장하는 것이 신이라면, 그래서 인간들의 환경이나 행동이 신에 의해 간섭받는다고 한다면, 그 신은 도대체 어떤 신인가.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이슬람의 알라인가, 힌두신인가, 부처님인가. 그리고 인간의 영역이란 도대체 어디인가. 팔레스타인 출신 엘리아 슐레이만 감독의 <신의 간섭>은 이스라엘의 가공할 폭력이 난무하는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인 ES(슐레이만 자신)의 삶은 사랑하는 여인과 죽어가는 아버지라는 두개의 관계를 오가지만 둘 다 만만치는 않다. 우선 예루살렘에 사는 ES로선 이스라엘군 검문소 너머의 도시 라말라에 사는 여인을 만나는 게 너무 어렵다. 정치투사인 그녀가 검문을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둘의 사랑은 검문초소 인근 공터의 중립지역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한편으론 어느 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지만 인간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혀 없다. 이 영화의 부제 ‘사랑과 고통의 연대기’는 이 두 관계를 반영한다. ES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는 신의 개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개입인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 자리한 이스라엘군의 잠재적 폭력성은 두 관계를 험난하게 만든다. 이럴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판타지다. ES가 무심코 던진 과일씨를 맞은 이스라엘 탱크가 폭발한다거나, 아라파트의 얼굴이 새겨진 풍선, 여인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매트릭스>에서처럼 제압하는 등의 대목은 통쾌함뿐 아니라 묘한 비장미를 안고 있다. ‘명상적 유머’라는 말을 감히 붙일 수 있는 영화.

비밀경찰 El Bonaerense

▶ 월드시네마/ 프랑스/ 파블로 트라페로/ 97분

▶ 11.15 오후 5시 MB5 / 11.18 오후 2시 MB6

잡범이 경찰, 경찰이 흉악범. 아르헨티나 시골의 열쇠공 자파는 가게 주인의 지시로 금고 절도에 가담한다. 혼자 붙들린 그는 경찰 간부인 친척의 도움으로 풀려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경찰로 일하게 된다. 경찰 학교의 여성 교관과 사랑을 나누고, 일선 경찰서에도 빨리 적응하는 등 자파의 삶은 안정을 찾은 듯 보인다. 하지만 경찰서 간부들은 순진한 자파를 이용하려 하며, 자파 자신도 서서히 변한다. <비밀경찰>은 한 남자가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과정을 꽤 촘촘하고 힘있게 담아내는 영화다. 자파가 겪는 일이 비단 남미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원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이라는 뜻.

해안선

▶ 개막작/ 한국/ 김기덕/ 95분▶ 11.14 6:30 시민회관 / 7:00 부산1·2·3 ▶ 11.18 2:00 시민회관

김기덕 최고의 하드보일드. 해안선 초소를 지키던 강 상병은 미영와 정사를 벌이던 마을 청년 영길을 간첩으로 착각한다. 두려운 나머지 총을 발사한 그는 영길을 살해하고 만다. 그럼에도 상부는 강 상병에게 포상휴가를 준다. 민간인을 살해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강 상병은 갈수록 난폭해지고, 정신 이상으로 의가사 제대 명령을 받지만 그의 발길은 부대 주위를 맴돈다. 영길의 죽음에 충격받은 미영 또한 미쳐버리고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된다. 해병으로 근무했던 김기덕 감독 자신의 체취가 묻어나는 <해안선>은 우리 사회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폭력성을 고발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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