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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서플먼트의 은밀한 매력(5)
2002-11-14

코멘터리

서플먼트의 매력 4 <점원들>과 코멘터리 : 폭로!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뉴저지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두 점원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린 케빈 스미스 감독의 <점원들>(스펙트럼 출시)은 미국 독립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로 꼽힌다. 21일 만에 단돈 2만6800달러를 들여 만들어낸 이 영화는 94년 선댄스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각각 상을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고, 훗날 케빈 스미스는 독립영화계의 기린아로 떠올랐기 때문. 이 영화는 밴쿠버의 영화학교를 중퇴한 경력이 전부였던 스미스와 그의 아마추어 친구들이 스탭과 배우로 참여해 제작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때의 스탭과 배우 대부분은 이후 스미스가 만든 <몰래츠> <체이싱 아미> <도그마> 등에 계속 참여해왔다.

이 DVD 버전의 오디오 코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바로 이들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독이자 사일런트 밥으로 출연했던 스미스를 비롯해 프로듀서이자 편집, 사운드를 담당한 스코트 모시어, 단테 역의 브라이언 오할러런, 제이 역의 제이슨 뮤즈, 촬영감독 데이비드 클라인, 촬영조수 빈센트 퍼라이라, 초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월터 플래너건 등. 이 떠들썩한 오디오 코멘터리의 녹음은 95년작인 <몰래츠>의 촬영세트에서 이뤄졌다. DVD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무슨 코멘터리, 라고 의심할 필요는 없다. 당시의 녹음은 레이저디스크(LD)를 위한 것이었으니.

이 코멘터리를 듣고 있으면 90분이 넘는 장편영화를 2만6800달러로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산에 비해 워낙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탓에 현장 캐스팅은 필수적이었다. 제작진은 촬영장인 편의점 주인을 비롯해 오디션 장소를 제공했던 한 클럽 주인 부부, 촬영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백수까지 긁어모아야 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모시어, 클라인 등 스탭까지 여러 장면에 등장해 중요한 연기를 펼쳤다. 퍼라이라는 본인은 물론 형수와 조카까지 등장시켰고, 플래너건은 출연하기로 약속했던 배우가 펑크를 낼 때마다 등장했다(영화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4번이나 등장한다). 또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촬영을 뉴저지의 편의점 안팎에서 찍었으며, 할로겐 조명 대신 형광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카드깡’까지 해가며 제작비를 조달한 스미스와 친구들이 고약한 상황에서 분투하면서 영화를 찍었던 이유 또한 이 코멘터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스미스의 영화학교 친구이거나 스미스의 고향인 뉴저지의 동네 친구들이었다. 또 이들이 영화를 찍은 것은 뭔가 거창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제이 역의 제이슨 뮤즈는 캐릭터와 실제의 삶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촬영 중에도 걸핏하면 술이나 마약에 절어 촬영장에 엎어져 있었는데(이 코멘터리를 녹음할 때도 그는 술에 취해 뻗어 있었다), 스탭들은 이를 즐거운 일로만 추억하고 있다. 점원이 포르노영화를 보는 장면에서 ‘효과음’을 스미스와 동료가 직접 ‘연기’한 것은 단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화를 하고는 싶지만, 배운 게 없고 돈이 없어서’라고 체념하고 있는 분이라면, <점원들>을 코멘터리와 함께 보면서 도저한 유희정신과 아마추어리즘의 승리를 확인하시라. 문석 ssoony@hani.co.kr

추천작 베스트 3

▣ <부기 나이트>_ 시넥서스

두 가지 버전의 코멘터리를 갖고 있다.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영화장면을 해설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배우들과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버전은 후자쪽이다. 정교하게 편집돼 있어 이들이 한데 모여 얘기를 나눈 것처럼 들리지만, 앤더슨은 마크 월버그, 줄리언 무어, 돈 치들, 윌리엄 H. 메이시, 헤더 그레이엄 등 배우들의 집을 찾거나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때때로 이들은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하는데, 영화장면보다 이들이 떠드는 모습이 더 궁금해질 정도다.

▣ <블러드 심플>_ CINE KOREA

이 코멘터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포에버 영’이란 회사의 케네스 로링이라고 소개하는데, 그가 소개하는 이 영화의 제작과정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예컨대, 남녀주인공이 차 안에 앉아 있는 첫 장면을 해설하면서 그는 “상대편 차 불빛을 연출하기 위해 모두 거꾸로 찍었고, 거꾸로 찍으려면 화면이 뒤집히므로, 자동차를 천장에 매달아 찍었다. 배우들 머리는 무스로 고정시켰고, 피가 머리로 쏠리는 바람에 고생했다”고 설명한다. 이때부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배꼽을 잡게 된다.

▣ <소름>_ 아틀란타

이 영화의 코멘터리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등장해 윤종찬 감독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꾸며져 있다 (<소름>은 정성일의 2001년 베스트 한국영화다). 이 코멘터리를 듣고 있다보면, 우리가 영화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느끼게 된다. “이 장면에서 저는… 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이 장면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는지요”라는 정씨 특유의 말투와 윤종찬 감독의 느긋하면서 유머있는 대답이 어우러져, 영화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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