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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멜로 <천년호> 액션 로케이션 현장(2)
2002-11-14

80일간의 낯선 여행,˝매일매일이 새로워˝

중국 현지 로케이션이라면, 가용자본을 늘리기 위해서 중국과의 합작도 고려해볼 만한 일. 중국 현지 판권을 넘기는 식으로 일정한 자금이나 현물 형태의 투자를 받는 것이다. <비천무>가 이러한 케이스다. 하지만 이 경우 캐스팅에서부터 시나리오까지 일일이 중국쪽의 입김을 감내해야 한다. 심지어 후반작업을 위해서 네거필름을 반출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결국 <천년호>는 시에파이(중국쪽이 노동력과 장소만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라 불리는 협작을 택했다. 하지만 이 또한 <아나키스트>의 선례와는 다르다. 제편창(인력과 기자재, 그리고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중국의 영화제작소)을 일괄 창구로 정해서 제작을 추진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천년호>는 독자적으로 스탭을 구성한 것이다. 대개 제편창 소속 프로듀서가 나서서 촬영은 누구, 미술은 누구 하는 식이지만 <천년호>는 도성희 프로듀서를 비롯한 제작진이 직접 발로 뛰며 물색에 나섰다. 메인 스탭이 대부분 국내 인력이었던 <무사>와 달리 <천년호>에서 국내 스탭은 녹음팀이 유일하다. 중국 현지 스탭이 140여명인 것에 비해 한국쪽은 배우까지 더해서 3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제편창에 기대지 않고 현지 스탭을 구성한 것은 모험에 가깝다. 베이징전영제편창에선 현장에서 필요한 일부 기자재와 보조 인력만을 변통할 뿐이다.

일종의 변칙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천년호> 프로젝트는 이처럼 대륙이 보유한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되 비용은 최소화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도성희 프로듀서는 제편창 라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합작이 줄어들면서 중국 내 제편창 경영이 어려워졌는데 이럴 때일수록 손을 잡으면 누수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한때 국내에서 한·중 합작 사례에 대한 백서 작업에 참가했던 그에 따르면, <비천무> 촬영 당시 시중가격 10원이면 충분한 부채를 놓고 제편창 관리들은 개당 3천원을 요구했고, 이 일로 소품팀을 홍콩쪽 스탭으로 교체하면서 제작진이 이중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일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필요한 인력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다. 김형준 대표는 “제편창에 인력 운용을 의뢰할 경우에 보수를 지급하는 제작라인만 해도 창장, 부창장, 기획실장, 제작부장, 관리부장, 회계부장 등 상당히 많은 숫자가 스탭들에 포함된다”며 “한국쪽 스탭들이 어느 정도 꾸려진 상황에서 직무가 중복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렇다고 제외시킬 수도 없는 일이라 현장 스탭들의 수가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말한다. 촬영, 미술 등의 부문에서 제편창에 속한 개별 인력들의 기술적 숙련도는 만족스러운 수준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제편창 경영수지까지 걱정해서 호주머니를 털어줄 정도로 넉넉하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호>의 전략이 매번 현장에서 기대를 만족시키진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파업’ 사태처럼 또 다른 골칫거리를 낳기도 한다. 이는 현장에서 엑스트라를 포함한 현지인들을 통솔하고, 제작진과 입장이 다를 경우 조율에 나서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야무지게 마무리하는 이나 집단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규모 엑스트라들이 이탈한다 해도 추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 하루에 1명의 현지 엑스트라를 고용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4500원. 100명이라 해봤자 전체 예산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이지만,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재발했을 경우에는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세달여 남짓한 기간 동안 촬영횟수가 80회에, 빡빡하다 못해 무리한다 싶을 정도의 일정을 고려한다면 한나절을 허비한 것을 쉽게 넘길 수는 없다. 복안을 내놓았지만 결국엔 제로섬의 결과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천년호>의 현지 스탭들

뤼웨 (呂樂·촬영감독)

머리를 질끈 묶고서 현장에서 때론 직접 레일을 깔기도 하는 촬영감독 뤼웨(45)는 <인생> <트라이어드> 등 장이모 감독의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베이징전영학원 촬영과 82학번 동기다. 대학 재학 중에 누가 더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났느냐는 첫 질문에 “예술가라는 게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거라 잘 모르겠다”고 웃으며 답한다. 졸업한 뒤에 곧장 “여자친구가 미리 자리한” 파리로 날아간 그는 파리 8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다.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40달러 들고 비행기 탔겠느냐”는 그는 그 시절 <니키타> <레옹> 등에서 촬영부로 참여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시네마테크를 전전하며 시네마 베리테의 대부 장 로쉬의 영화에 심취했다고. 1983년부터 지금까지 15편의 촬영을 맡은 그는 1998년엔 <미스터 자오>를 연출, 그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천년호>는 많지 않지만 액션장면도 있는데다, 판타스틱하게 찍어나가야 할 부분도 많아 다소 고민이라고. “현장에서 보면 감독들은 미치광이”라는 그는 “촬영감독으로선 때론 엄한 경비원처럼, 때론 상냥한 간호사처럼 대해줘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인터뷰 도중 이광훈 감독과 무술감독, 두 사람이 로비에 들어서자 “정신병자 2명 들어온다”는 농담으로 촬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위엔더(元德·무술감독)

짧은 수건 양손에 잡고서 줄넘기 하기. 위엔더(45)는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 “저러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다들 힘빠지는 것 아니야”라고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리허설때도 무술팀을 몰아붙인다. 정작 본인은 홍콩 스탭들에 비해 몸이 둔한 남자 팀원들이 못마땅한 눈치. 한숨 돌리려고 해도 옆에 가서 장난을 건 다음 이것저것 잔소리를 해댄다. “설정한 액션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넘어서는 유일한 배우”라고 평하는 이연걸과 지금껏 작업한 작품만 10편에 이를 정도로 각별한 그는 지난해 <더 원> <키스 오브 드래곤> 등의 액션을 안무하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홍콩 반환 전에 캐나다로 이주했지만, 정작 본인은 매년 촬영장을 쫓아 해외를 돌아다니는 탓에 가족들과 달리 자신은 영주권을 얻지 못했다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도 무술 자문을 맡아 익숙한 얼굴. 중국에서 이주해온 부모 아래서 크다 6살 때 경극학원에 맡겨졌던 그는 이후 홍금보, 성룡, 원규, 원표 등과 함께 무예를 익히면서 컸고, 결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화계로 입문했다. 성으로 쓰는 원(元)은 사부로 모셨던 위잔원(于占元)의 마지막 자를 따서 붙였다고. 몸이 작아서 매염방, 관지림 등 여배우 대역을 주로 했던 그는 이후 액션배우를 하다 90년대 초반부터 무술감독 자리에 올랐다.

액션장면은 많지 않지만 시대극 액션은 처음이라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올해 5월 한국에서 이광훈 감독과 함께 콘티를 짜는 등 일찌감치 열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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