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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멜로 <천년호> 액션 로케이션 현장(1)
2002-11-14

80일간의 낯선 여행,˝매일매일이 새로워˝

소란스런 촌부(村夫)들이 촬영장을 뒤로 하고 떼지어 계단을 오른다. 대규모 행군 장면에 출연키로 한 현지 엑스트라들이다. “오케이 난 건가” “잘 모르겠는데.” 오후 촬영을 위해 촬영장 위쪽에 마련된 파라솔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국쪽 일부 스탭들과 배우들이 웅성거린다. 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예기치 않은 행렬은 계속 이어진다. 개중엔 두툼한 갑옷을 이미 벗어젖힌 뒤 새까만 상체를 드러낸 치들도 상당수다. 소품용 창에는 가죽 의상을 꿰어맸다. 걸으면서도 쉬지 않고 툴툴거리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우악스런 표정이나 행동만으론 불만을 한 토막씩 베어 문 눈치다. 갑작스런 더위 때문인가. 선두에 섰던 이들은 이미 입고, 들고, 썼던 모든 장구들을 놓아버리고서 삼삼오오 흩어진 상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엑스트라들의 반란(?), "집에 갈래"

10월15일,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지윈(縉元). 8일 동안 <천년호>의 전투신 촬영이 진행될 이곳은 베이스캠프인 헝디엔(橫店)에서 차량으로 3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극중 비하랑(정준호) 장군이 진성여왕(김혜리)의 부름을 받고 전투에 나섰다 매복한 적군에게 습격을 받고 일대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을 찍을 예정. 이곳은 갈대밭을 평상으로 삼고 절벽을 병풍처럼 휘두른 얕은 강이 볼것의 전부라 기념품을 파는 장사치들이 있긴 하지만 관광지치곤 인적은 드물다. 대신 촬영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촬영부 등 일부 스탭들이 전날부터 이곳에 진을 치고, 헝디엔의 스탭들 역시 꼭두새벽부터 결합한 이날도 드라마 촬영을 위해 오전에 이곳을 찾았던 중국 방송사 촬영팀이 허탕을 쳤다. 10월10일 촬영을 시작한 지 엿새째, <천년호> 스탭들은 전날보단 한층 긴장한 눈치였다. 본격적인 전투장면에 돌입하기 전에 워밍업 하는 격으로 첫날에는 간단히 신라군의 행군장면부터 찍기로 했지만 현지에서 동원된 엑스트라들이 250여명이나 되는데다 이들의 통솔 책임자인 촌장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시 제작진을 도울 만한 여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돌발사태가 <천년호>를 덮친 건 촬영에 들어간 지 2시간도 채 안 되었다. 극중 신라군으로 분장한 100여명의 엑스트라 무리가 갑자기 “물을 달라”며 대열을 허물었고, 급기야 “다 필요없다. 집에 가겠다”고서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갑작스런 땡볕 더위가 촉발하고, 몇겹의 가죽 의상이 자극한 파업은 말뿐인 허풍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었다. 건너편 절벽 중턱에 카메라를 드리우고 있던 감독과 스탭들로선 얼크러진 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양 속수무책이었다. 무전기에선 “제작부는 다 어디 간 거야”라는 고성이 터져나왔지만, 서너명의 제작부원만으로 강 건너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요와 분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실상 엑스트라들을 뒤쫓아 일일이 설득하고 회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걸음 느린 이들이나마 퇴로를 막고 서서 “갑옷이나 벗어놓고 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결국 오전에 찍기로 했던 장면은 오후에 남은 130여 인원만으로 소화한 뒤 이를 소스 삼아 CG작업으로 보충하기로 했다. 메인 스탭들이 모여 이같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잔류자들은 주린 패잔병마냥 광천수 주위로 몰려들어 서로 먼저 먹기 위해서 승강이를 벌였다. 뿌리 뜯긴 해초마냥 자갈들 틈에서 여기저기 흩날리는 모조 수염들은 일일이 엑스트라들의 코밑과 턱에 심어주느라 새벽부터 잠을 설친 분장팀이 보았다면 분이 치솟을 일이었다. 베이징전영학원에서 유학한 터라 다른 이들보다 중국인들의 기질과 성향에 대해 잘 아는 도성희 프로듀서도 정작 촬영에 들어가자 “한 장면만 더 찍으면 물과 음식이 있다고 엑스트라들을 독려했어야 하는 건데 설마설마하다 타이밍을 놓쳤다”면서 씁쓸해한다. 그나마 이광훈 감독이 “첸카이거 같은 거장도 도시락 때문에 엑스트라한테 멱살잡힐 뻔한 적 있다고 들었다”면서 “우린 그나마 다행”이라고 주위를 다독인다.

합작이라 하기엔 너무나...

<천년호>는 <아나키스트> <비천무> <무사>에 이어 중국과의 도킹을 시도한 네 번째 작품. 하지만 설정만 놓고보면 굳이 중국행을 택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신라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진성여왕과 그가 신하 이상으로 총애하는 장수 비하랑, 그리고 그의 목숨을 구해준 연인 자운비(김효진)의 삼각멜로 구도 위에 1천년 전 신라에 의해 멸망한 부족의 한이 깃든 천년호의 악령이 출몰하면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선뜻 중국행을 택한 이유는 국내에 궁궐을 비롯해서 신라시대 건축물을 재현하기에 세트 비용이 감당할 수 없어서다. 전체 순제작비의 마지노선을 50억원으로 정하고서 제작사인 한맥영화 김형준 대표는 촬영지를 물색하기 위해 몽골까지 뒤졌다. 결국 찾은 곳이 상하이 아래 항저우 근처의 대형 스튜디오. 당(唐)식 건축물을 재현한 스튜디오를 마주하고서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를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촬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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