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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성일,십대영화의 어떤경향에 주목하다(3)
2002-11-14

˝청소년 영화제보다 친구들 시각이 더 냉담해요˝

정성일 <서편제>의 그 장면에서 조대완 학생은 힘들고 지친 가족을 본 건가요

조대완 아니요. 다만 <서편제>와는 느낌을 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음악에>에서 저는 많은 길을 걷다 지친 주인공의 힘든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서편제>를 찍은 장소가 굽이진 길이라 그 느낌을 표현하기 적당했구요. 그 장면에서 제가 쓴 음악은 제목도 <나그네>라는, 대금 연주곡이에요.

정성일 임권택 감독은, 만약 그 길이 아니었으면 그 장면을 안 찍었을 거라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만약에 그 끈덕진 길이 아니었다면 5분28초짜리 <진도아리랑>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 근데, <서편제>에서 그 장면이 굉장히 이상한 자리에 들어 있어요. ‘유사가족’이 불화에 차 있는 앞신과 이제 이별만이 남아 있는 뒷신 사이에 딱 들어가서 유봉, 송화, 동호 세명이 유일하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숏이잖아요. 유일하게 행복한 숏을 조대완 학생은 딱 끌고 들어왔는데, 조대완 학생의 그 숏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쓸쓸한 것이었어요.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되게 쓸쓸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었어요. 남의 영화의 가장 행복한 장면을 끌고 들어와서 자기 영화에서 가장 쓸쓸한 장면을 찍은 거거든요. 저는 여기에 이 연출자의 진정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

조대완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뭘까”

정성일 지금 쓰는 카메라 기종은 뭐예요

조대완 저는 삼성 8mm를 쓰거든요. SV … 생각이 안 나네요. 제가 그 카메라를 굉장히 하찮게 여겼거든요. 아우 저 고물딱지 그러면서… 근데 <음악에>를 찍고나서 그 카메라를 아끼게 됐어요. 8mm였기 때문에 화면이 더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정성일 <음악에>에 대해 가장 크게 느끼는 불만은 어떤 거예요

조대완 저는 국악에 대한 애착을 더 충분히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오히려 좋은 영화는 어떤 것일까, 하는 고민을 더 담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과연 뭘까, 하는 혼란이 생겨서….

정성일 왜 혼란이 생겼을까요

조대완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조건 지루한 영화 싫다고 노래를 하고 다녔는데, 만약에 제 친구들한테 <서편제>를 재밌게 봤다 그러면 이상하게 볼 거예요. 그 아이들이 보기엔 <서편제>가 지루할 수 있거든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데, 괜히 남들이 어려워하고 지루해하는 영화를 내가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곤 해요. 친구들 시각이 더 냉담하거든요.

정성일 왜 그런 것 같아요

조대완 청소년영화를 하는 모든 친구들의 책임이에요. 청소년영화를 하는 사람 중에는 상을 받아서 그 상으로 대학을 가려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심사위원들 비위 맞춰주는 영화를 다들 만들다보니까 점점 친구들이랑 멀어져요. 우리와 상관없는 얘기가 돼버리고, 그냥 ‘니들끼리 잘난 척해라’ 하는 식이죠.

정성일 정작 의사소통해야 할 커뮤니티 안에서 일종의 게토가 되는 거군요

조대완 네. 그렇다고 그냥 오락적인 영화를 만들면, 애들은 그걸 또 블록버스터랑 비교할 생각을 해요.

정성일 (웃음) 이중의 함정에 빠지는 거군요.

정성일 <음악에>를 처음 시작했던 아이디어를 저는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 아이디어를 테마까지 밀어붙여 보면 어땠을까, 너무 쉽게 결론을 낸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물론 저는 이 영화 전체가 주는 정서에 충분히 공감했고, 광주에서 본 70편의 영화 중 제가 <음악에>의 손을 들어준 셈인데, 말하자면 그렇게 제가 조대완 학생 편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말할 때, 또 하나, 편집이 너무 서툴러요. 물론 공부와 훈련을 계속 해야겠지만, 그런 것에 한편으로는 관심없는 건 아닌가요 영화적 언어보다는 어떤 다른 언어에 더 기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조대완 처음에는 <음악에>를 뮤직비디오로 기획했어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너무 내용없는 영상물이 될 것 같아 스토리를 붙인 거예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적인 것보다는 음악에 더 치우친 것 같아요.

정성일 겨울방학에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요

조대완 지난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옌볜에 있는 자매학교에 갔는데, 거길 따라가서 찍어온 게 있어요. 그걸 겨울방학 때 편집할 거예요. 그리고 시나리오 단계에 있는 다른 작품이 또 하나 있어요. 액션영화구요, 미래를 배경으로, 정치적인 어떤 문제에 대해서 반항하는 학생들을 정부가 억누르는 이야기예요.

정성일 겨울에 아주 바쁘겠네요. (웃음) 끝으로 이런 얘기를 할게요. <음악에>는 아무리 까탈스러운 영화감식자들이라도, 혹은 제 동료들이라도, 또는 영화감독들이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보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근데 끝내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조대완 학생의 다음 작품에서는 이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로 우리를 깜짝놀라게 하는 것은 본인의 장점이니까 끌어안아야겠지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조대완 학생이 예술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봐요. 제가 기대해도 좋은 거죠인터뷰 정리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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