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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 인터뷰
진행 임범(대중문화평론가) 정리 이영진 사진 정진환 2002-11-22

˝군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방적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보들의 영화 및 영상산업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좀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대선 후보 연쇄 인터뷰를 기획했다. 5년전 대선 때도 <씨네21>은 같은 기획 인터뷰를 실었다. 그후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스크린쿼터, 독립·저예산영화 상영공간 확보, 표현의 자유 신장 등 현안이 많다. 이 문제들이 정부 정책과 문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각 후보의 의사와 사정을 반영해,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후보마다 달리 인터뷰가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힌다.

여의도에서 농민시위가 있었던 11월13일 오후 6시,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노무현 후보를 만났다. 몇시간 전 시위현장에서 노 후보가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는 경미한 불상사가 있었지만, 노 후보는 편안한 얼굴로 인터뷰 장소에 들어왔다. 일정이 바빠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다는 말을 미리 들어, 정책적인 사안들은 질문지를 먼저 보냈다. 이날은 개인적인 영화 취향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을 중심으로 20분 남짓 인터뷰를 가졌다.

-얼마 전 장애인들과 함께 <오아시스>를 보러 가셨던데요. =눈가리고 가려니까 정말로 눈앞이 깜깜하더구먼. (웃음) 단지 시각적으로 앞이 안 보인다는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 깜깜해져요. 영화를 볼 때는 귀를 막았는데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결국, 그 체험은 성공을 못했습니다. 바깥에 마개 덮고, 안쪽 귀도 봉했는데 다 들리더라고.

-<오아시스>는 어땠는지요. =영화가 좀 무겁긴 했는데.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선입견과 무관심으로 스쳐넘어갔던 우리의 둔한 인식을 바꾸게 하는 데 도움이 됐죠. 물론 또 다르게 문제제기하는 분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영화를 봤던 많은 관객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장엔 자주 가시나요. =어쩌다 한번이죠.

-그래도 딸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잘하시나 보던데요. 극장에서 후보를 봤다는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봤습니다. =그때 내가 본 영화가 뭐더라. 맞아. <와이키키 브라더스> 봤구나.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였죠. 그죠 아이는 상당히 그 영화의 줄거리와 분위기, 뭐 이런 데 대해 아주 새롭게 생각하고 호기심 있게 받아들이는데 난 별로 재미없었어요. 영화가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우린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서. (웃음) 만날 보고, 듣던 것이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딸아이 반응 보면서 역시 세대 차라든지 생활의 체험 차이 때문에 같은 영화를 보는데도 느낌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네요.

-내 인생의 영화를 소개해주신다면. =묘하게도 제가 그런 게 잘 없습니다. 감명 깊은 책도 뽑으라고 하면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한권을 딱 뽑기가. 대신 이것저것을, 여기저기서 주워들어서 얽어모으는 식이죠. 존경하는 사람도 그래서 여러 명입니다.

-오래 전에 봤어도 꽤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영화가 있잖습니까. =그런 영화가 있긴 하죠. <라이언의 딸>이라고, 개봉할 땐 <라이언의 처녀>라고 번역되어 나온 영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가 73, 74년 쯤됐나요. 제가 군에서 제대하고 고시공부 하고 있을 때니까.

-30년이 다 되어가는데요. 기억에 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영화를 도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했거든요. <오발탄>도 그랬고. 아니면 <엘 시드>나 <왕중왕> 등 범인들이 따라갈 수 없는 영웅이나 초인들이 이뤄낸 행적을 그린 영화를 즐겨 봤어요. 그런 영화들 대하면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게 아니면 그냥 재밌을 것 같은 영화로 넘어가고 그랬는데. <라이언의 처녀>라는 영화를 보고 그런 것이 깨져버린 거예요. 평범한 한 여인이 자연스럽게 남자에 대한 사랑에 끌려 선생님을 사랑하고, 또 권태를 느끼자 영국군 주둔군을 사랑하고 그러면서 그 여인은 그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겪게 되고 반역자로 몰리는 내용인데. 그 여인의 선택을 보면 어떤 도덕적 기준에 억눌려 있지 않아요. 영화 보면서 제가 도덕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그 여성에 처지에 대해서 깊은, 아주 깊은 공감을 하는 거예요.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할까. 첫 번째 남편을 배반했으니 부도덕한 사랑이고, 주둔군을 사랑했으니 공동체에 대한 배반이고. 도덕적 규범과 충돌하는 한 인간의 감성이랄까 이런 것이 어쩐지 강하게 남아 있는 거죠.

-특히 어떤 장면이 잊혀지지 않나요. =그 여인이 밤에 말하자면 외간남자를 만나러 미친듯이 뛰어가거든요. 머릿속에 선해요. 역시 인간은 도덕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에요. 생은 또 한편에 욕구와 충동이라는 또 다른 축도 갖고 있는 거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예전엔 꽤 영화를 즐겨보신 듯한데요. =빠짐없이 챙겨보진 못했어요. 그 당시에 유명한 영화들은 뒤늦게나마 재개봉관에 가서라도 보려고 노력하는 정도였죠. 아내하고 데이트하면서 극장은 많이 갔어요. 처음 연애할 때 본 영화가 <러브스토리>인데, <라이언의 딸>도 아내와 같이 봐서 조금 더 인상적일지도 몰라요.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한석규씨 이야길 해야 하는데 영화는 많이 못 봐서 제가 재밌게 본 드라마 이야기로 대신 할게요. 김운경씨가 썼나요 왜 <서울의 달>이라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전체 극 분위기가 좋았고, 거기서 한석규씨가 맡은 캐릭터를 보면서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꼈어요. 우리도 왜, 규범을 일탈해서 좀 건들거리고 싶은 생각이 있잖아요 그런 잠재적인 충동 같은 것을 한석규씨를 통해서 대신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게 어느 정도냐면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그 인물은 즐기고 사는 것 같았으니까. 그로서는 벗어던질 수 없는 인생을 처절하게 살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그가 우리가 누려보지 못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이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때 분위기 때문에 한석규씨를 좋아해요. 근데 나는 좋아하는데 그분은 혹시 한나라당 지지하는 것 아닌가 (웃음)

-문성근, 명계남 등 곁에서 후보를 돕는 이들말고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등 노 후보를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많은데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권력이란 게 우리 생활에 대한 간섭과 규제를 많이 하죠. 유력하다고 하는 두 분(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를 지칭하는 듯)은 지시명령형 인생을 살았습니다. 지배형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는 지시명령형이 아니라 항상 권력의 억압에 대해 제도적으로 저항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김대중대통령과도 또 다른 점은 오랫동안 총재로 군림하지 않았거든요. 군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훨씬 더 개방적일 거다, 저를 지지하는 문화인들이 그런 판단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지지에 대해서 보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70대 노부부의 성과 사랑을 다뤄 화제를 모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을 받아 표현의 자유 침해에 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혹시 보셨나요. =아직 못 봤습니다. (부대변인에게) 언제쯤 보러 갑니까 한번 시간을 내본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인터넷에 자신의 부인과 함께 누드 사진을 찍어 올린 미술교사의 경우, 검찰이 구속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요. =사회적 논쟁이 있는 부분은 사전 구속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만의 반론이 아니고 사회적 반론이 있는 사안을 구속부터 먼저해서 처벌하는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보여집니다.

(이하 서면 답변)

-표현의 자유에 관해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시는지요. =김지하 시인이 <오적> 써서 감옥 가고 많은 예술가들이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불행한 과거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와 독재권력이 득세하는 사회일수록 예술의 자유는 억압받게 마련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민주화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근래 와서 문화쪽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분위기와 제도가 풀리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론 표현의 자유를 거의 제한없이 인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공중파 방송 등 안방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은 무차별적인 침투이기 때문에 사전 장치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후규제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창작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잖습니까. 제한하기 전에 수용되어야 할 권리입니다.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국가간에 자유롭고 호혜로운 문화교류를 막아선 안 됩니다. 장벽이 있어서도 안 되고, 서로 자극과 충격을 줘야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전제가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문화가 휩쓸리도록 맡겨 둬선 안 됩니다. 지금 미국 할리우드영화가 전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스크린쿼터는 문화정체성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최소 안전판이라 봅니다.

-현 정부는 영화부문을 포함한 WTO 양허안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정부지원도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연합이나 캐나다 등 여러 나라들이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예 협상테이블에서 영화나 방송 등 시청각 서비스 분야는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단계입니다. 제가 당선되면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국익과 문화적 정체성 보호를 기본 입장으로 해서 양허요청안을 재조정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완성도 높은 저예산영화들이 극장으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저예산영화, 예술영화들이 극장을 잡기 힘든 상황입니다. 독립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작은 영화들을 살려야 합니다.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문화는 죽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적 이익이 아니라 예술성과 현장성으로 무장한 실험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영상문화 전체가 살찔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 전용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화진흥금고 중에서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지원 비율을 5∼10%까지 확대하여 독립제작 여건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비단 영화쪽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더그라운드 밴드 등 음악쪽도 마찬가지이고. 문화예술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봅니다.

영상 산업 진흥 정책 공약

1) 시청각서비스 협상 적극 대처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2) 안정적인 예산 확보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전체 예산 중 문화예산 비율 2%까지 확대, 영화진흥금고 출연금 부족분에 대한 국고 출연 등 대안 마련, 영상부문에 대한 민간 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3) 실질적인 지원 위해 제도, 기구, 정책 재편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 문화예술 전문인 임명,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승인권을 갖는 것과 관련해 영화계 의견 수렴하여 개선, 영화진흥금고 중 독립·예술영화 지원 비율 10%까지 확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확대 설치 및 운영 지원 강화.

4)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제도 완비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문화, 노동, 여성, 교육, 가정 등 시민사회 다양한 주체들이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인선 및 추천 범위 확대, 회의록 공개 등 심의 과정의 투명화 강화, 제한상영관 설치를 위한 까다로운 규제 완화.

5) 문화분권화 시대를 개막하기 위한 지역 문화기반시설 확충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부산국제영화제, 세계 5대 영화제로 육성하기 대책 마련, 서울 이외 대도시에 영상미디어센터 설치.

6) 문화기반시설의 지속적 확충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영상자료원을 확대 개편하여 국립영상아카이브 설립, 문화기반시설의 프로그램 운영 및 콘텐츠 확보 예산 지원 강화.

7) 남북문화교류 강화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영화, 애니메이션 등 영상산업 분야 남북 합작 활성화 방안 마련, 북한영상물에 대한 단계적 해금 조치 실시, 남북 영화인 교류 정례화

8) 문화콘텐츠산업 강국 구현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전문인력 양성 확대, 영상산업에 대한 금융 및 세제 지원 확대, 애니메이션 방송총량제 실시

9) 문화예술 외교활동 강화 문화적 예외 주장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국제적 연대 강화,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주도적 참여,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 적극 지원. 현재 4곳에 불과한 해외문화원 확대 건립. 민간의 우리 영화 해외 소개 활동 적극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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