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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6)
2002-11-22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섯가지 이유

누구보다 임순례 감독의 캐릭터들은 서로 친연성(親緣性)이 있어 보인다. 출구없이 방황하는 <세친구>의 아이들과 출구 찾아 방랑하는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청년들은 꼭 닮았다. 어디에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데 없이 고개 숙인 채 음지와 골방을 찾아 묵묵히 떠도는 이들. 유대라고 불러도 좋을 이들의 유사성은 실상 사회에 의해 일찌감치 발언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는 공통점에서 기인한다. 그의 영화가 굳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진 않지만.

<무제>의 여고생은 어떨까 처한 상황은 앞선 이들 못지않다. 상업고등학교 졸업반인 열여덟살 그녀. 취직이 코앞에 닥쳤지만, 취업은 그림의 떡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못생겼다. 면접관의 평가 항목에는 슬그머니 빠져 있지만, 가장 높은 점수가 배당된 외모라는 항목을 그녀는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번번이 미역국을 먹는다. <무제>는 사회가 던져놓은 외모지상주의라는 그물에 포획되어 허우적거리는 그녀의 선택을 뒤따른다.

임 감독은 박진표 감독과 함께 뒤늦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가세했다. 애초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기획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남규선씨가 적극적으로 섭외에 나섰으나 박경희 감독의 영화 <미소>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어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러다 프로젝트 촬영 완료 시점이 올해 연말에서 다소 미뤄지면서 여균동 감독이 재차 섭외에 나섰고, <미소> 또한 12월 초면 촬영이 끝나는 터라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여 감독님 연출부 출신이라 자리에 나갔는데 농담으로 그러시더라. 넌 살아온 역사가 차별의 역사 아니냐. 네가 빠지면 되냐. 그냥 편하게 네 이야기 하면 된다.”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발을 담근 임 감독의 말.

후발주자이지만 막상 스타트라인에 서고 보니 남은 레인을 선택할 수 없는 게 그로서는 다소 아쉽다. 이주노동자에 관해 평소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이미 박찬욱 감독이 택한 소재. 그래서 외모콤플렉스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는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소재를 대할 때 페미니즘적인 시선만으로 쉽게 재단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의 악순환이나 차별을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의 보편적인 심리까지 중층적인 접근이 됐으면 좋겠다”고 임 감독은 설명한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탓에 한국의 사회적 차별이 유별난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파리에선 알코올 중독자, 정신이상자라 할지라도 적어도 겉으론 아무런 내색을 않는다. 대학 도서관에 냄새나는 노숙자들이 자리를 차지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는 영화과 수업에 불쑥 끼어들어 불을 켜서 방해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합석해서 이상한 질문을 해도 교수는 끌어내는 대신 대답해준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다.”

아직 임 감독의 머릿속엔 못생긴 여고생 1명만이 어른거릴 뿐이다. <미소>가 마무리되면, ‘무방비 상태’의 여고생을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속에 밀어넣고, 동시에 그녀를 연기할 개성적인 외모의 배우 지망생을 비롯해 캐스팅도 진행할 계획. “이진숙 프로듀서가 빨리 좀 진행하라는 뜻인지, 나보고 한 매니지먼트사에서 스타급 배우를 내줄 수 있다는 말을 전하더라. 그래서 그랬다. 장편영화 찍을 때도 스타 안 썼는데, 단편에서 왜 쓰겠냐고.” 10분 안에 계몽영화의 포멀한 형식이 아닌 자신의 스타일을 함께 녹여넣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미리 털어놓는 그는 “재밌게 찍고 싶지만, 그렇다고 인물을 희화화하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

어떤 영화?면접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그대

여상 졸업식을 얼마 앞둔 B. 취업반이지만 아직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없다.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취직 시험에 응시할 때마다 떨어진다. 이젠 이력서 쓰는 것조차 지겹다. 걸림돌은 외모다. 그녀는 서류와 필기를 통과할지라도 남은 것은 면접관 앞에서의 수모일 뿐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쓴잔을 마시고 거리를 헤맬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성형수술 전단뿐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짐이 되는 실수를 저질러서라도 어떻게든 이 고통을 벗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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