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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4)
2002-11-22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섯가지 이유

성범죄 사범의 인터넷 신상공개 제도를 두고 얼마 전까지 찬반논란이 격렬했고 지금도 불씨가 살아 있다. 성범죄 사범도 인간인데 한번 형사처벌 받은 걸 다시 공개하는 건 일사부재리나 사생활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말이 가능한 반면, 한국 사회에 유달리 성범죄가 많고 가부장적 질서가 그런 현실을 자꾸 감추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찬반이 맞선다. 절차와 방식의 민주성을 중시하느냐, 문제의 해결을 중시하느냐는 태도의 차이로 인해 평행선을 달릴 수도 있다. 겁많은 남자 같으면 입닫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같으면 어느 쪽일까. <그 남자의 사정(事情)>은 신상이 공개된 채로 사는 성범죄 사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정 감독이 신상공개 제도에 대해 비판은 아니어도 최소한 회의를 가진 쪽일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인권 하면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범죄인이나 가해자, 특히 성범죄 관련자들은 인권을 보장받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인권할 때 흔히 떠올리는 그림으로는 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정 감독은 지난 9월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기 전부터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범죄자라고 할 때 처벌 외에 범죄사실이 공개되는 걸 어떻게 봐야 할지 답이 잘 안 찾아져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논쟁하는 글들을 읽었다. 그러던 차에 인권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러닝타임 15분 안팎을 상정하고 시나리오도 완성했다. 그러나 막상 이 제도에 대한 언급은 신중했다. “사이트의 글들을 보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내가 신상공개 제도가 옳다, 그르다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계기를 줄 수 있으면 한다.”

시나리오는 뜻밖에도 꼬마 여자애가, 성범죄 사범과 같은 비중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야기는 그 애를 쫓아간다. 자꾸 오줌을 싸서 엄마가 내복 윗도리만 입힌 채 소금 얻어오라고 문 밖으로 쫓아낸다. 이 아이에게 가해진, 발가벗고 소금 얻어오기 벌칙과 신상공개제도가 유사하다는 데에 주목한 설정이다. 이 설정으로 인해 이야기가 가볍고 우화적인 분위기를 띤다. “메시지가 강한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이건 단편이다. 우화나 동화처럼 가려고 한다. 기존의 우화는 교훈을 압축적으로 전달하지만, 이건 짧으면서 냉정하고 결론이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랬듯 정 감독은 화면 구도를 중시한다. 이번에는 중앙에서 모두를 감시하는 원형 감옥처럼, 가운데가 텅 빈 ‘ㅁ’자 형태의 주상복합아파트 경관을 충분히 활용할 계획이다. “일산이나 분당에 새로 지은 주상복합아파트가 모두 ‘ㅁ’자 형태다. 거기서 조지 오웰의 같은 느낌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촬영은 정 감독의 영상원 1년 후배로, 박광수 감독의 신작 <방아쇠>로 데뷔하는 김병서씨가, 음악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별이 맡았다.

떨치기 힘든 궁금증 하나. 왜 정 감독은 인권이라고 할 때 강자와 약자, 메이저와 마이너 사이에 전선이 상존하는 문제가 아니라 마이너 사회 안에서도 논쟁적인 소재를 택했을까. “누가 봐도 (옳고 그른 편이)정해진 영역보다 그런 걸 다시 보게 하는 게 재밌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것, 옳지 않은 것, 가해자, 피해자의 경계가 뚜렷하다. 뚜렷하게 나누고 싶은 게 사람들의 바람이겠지만 실제로는 O, X를 나누기 힘든 게 더 많은 것 같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런데 주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여성감독이기 때문에 특히 이번 소재에 잘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글 임범 isman@hani.co.kr

<그 남자의 사정(事情)>은 어떤영화아저씨, 소금주세요∼

주상복합아파트에 중년남자 A씨가 혼자 산다. 그는 성범죄를 저질러 인터넷에 신상과 범죄내역이 공개된 사람이다. 사각형 모양의 아파트 가운데 마당에 그의 사진과 범죄사실을 밝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A씨 아파트 문에는 ‘A’자가 낙인처럼 찍혀 있다. A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표정은 경멸에 가깝다. A씨 아파트 몇집 건너에 사는 여자 꼬마애는 엄마로부터 “A씨를 만나면 무조건 못 본 채하고 도망가라”는 행동지침을 수차례 들어 숙지한 상태다. A씨를 만나면 그 지침을 익숙하게 실천한다. 이 꼬마애는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싼다. 어느 날 화가 난 엄마가 내복 윗도리만 입혀서 이웃 사람들에게 소금을 얻어오라고 내쫓는다. 꼬마가 방문하는 집마다 냉대하거나 놀리기만 할 뿐 소금을 주지 않는다. 꼬마는 하는 수 없이 A씨의 아파트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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