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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2)
2002-11-22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여섯가지 이유

광화문 네거리를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 ‘횡단’한다. ‘대륙횡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예를 들어 동화면세점쪽에서 교보문고쪽으로 건너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될지 모른다. 그가 지하도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리프트라곤 하나도 없는 지하도로 건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 그는 그냥 차 쌩쌩 다니는 지상도로를 목발에 의지해 걸어 건넌다. <대륙횡단>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의 장면이다.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장애인을 테마로 한 인권영화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가 우연히 나았다”는 여균동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다가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를 술에 취해 그냥 지상으로 건너던 선배의 이미지가 떠올라 어렵지 않게 이 주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처음엔 아무런 장치없이 실제로 횡단을 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애인에 관한 영상물을 찍어온 단체들에서 문제를 제기하더라. 사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종로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허가를 받고 반쯤만 실제상황으로 찍었다.

<대륙횡단>은 <대륙횡단>을 포함한 1분 정도의 짤막짤막한 원신 원컷 에피소드 13개와 주인공 배우인 김문주씨의 셀프카메라로 이루어지는 16분가량의 영화다. 지하철 자동사진촬영기에서 정상인 같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주인공이 한두방 뜻대로 되어서 기분이 좋아 웃는데 그 순간 가장 장애인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사진이 찍힌다는 에피소드 <이력서>를 비롯, 외출을 하기 위해 어렵사리 현관문을 잠그고는 열쇠를 떨어뜨린 주인공에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집에 들어가려는 것인 줄 알고 문을 따고 집안에 들여보낸다는

등 장애인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밀한 사건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단편 안에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붙어 있는 이 영화의 형식을 여균동 감독은 ‘엽편영화’라고 부른다. 이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서 어떤 방식을 취해 이 영화를 찍을 것인가 생각하던 끝에 나온 결과. “다큐를 할 것인가, 극을 할 것인가 얘기가 많았다. 결국 극은 극대로 찍되, 전체 촬영 과정을 6㎜카메라에 메이킹 다큐 형식으로 따로 기록하기로 했다. 또 이번 단편에 담길 극 안에도 일반시민을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 등 다큐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주인공 배우인 김문주(30)씨는 자신이 뇌성마비로 18년 동안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스물이 다 되어 사회에 나온 이다. 노들야학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노들야학 MT에서 “아 어쩌란 말이냐” 하는 <가슴앓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여균동 감독이 자료조사용으로 찍던 테이프에서 보고 캐스팅했다. 여균동 감독은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히 <대륙횡단>에는 그가 실제 겪은 일들이 많이 담겨 있다. <대륙횡단>은 인권영화 프로젝트 중 가장 빨리 진행돼 이미 셀프카메라를 제외한 촬영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공개여부는 모르겠지만 메이킹 다큐가 앞으로 주인공 배우의 일상까지 추가로 찍어 완성될 것이라고 여균동 감독은 밝혔다.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대륙횡단>은 어떤 영화내가 겪은 세상은

중증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 열세편이 모자이크된다. 황당하거나, 속상하거나, 때로는 행복한 일들. <이력서>에서는 자동사진촬영기에서 사진찍기, <횡재>에서는 힘들어서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아이가 동전을 주고 가는 일, <한 시간 동안 구라를 푼 후>에서는 어느 여자와의 대화, <친구>에서는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귀갓길, <인어공주>에서는 채팅을 하다 일어난 일, <내가 본 것>에서는 장애인이동권 보장시위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가족들과 함께 보는 장면, <누가 나를 볼 때>에서는 텅빈 집에 혼자 있는 한때, <음악감상시간-즐거운 우리집>은 지하철 리프트 타기, 에서는 현관문을 잠그다 일어난 일, <예행연습>에서는 2차선 도로 건너기, <약혼식>에서는 여동생의 결혼식날 혼자 집에 남던 일, <굳은 살>에서는 양말신기가 그려진다. 그 이야기들은,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에서 주인공이 광화문 네거리를 홀로 횡단하는 심리적인 이유를 은연중에 말해준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김문주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각 에피소드 사이에는 첼로로 연주한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가 한음씩 삽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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