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제3회 서울유럽영화-메가필름페스티벌 <3>
2002-11-23

96시간 영화파티!

◈ 장교의 병실 La Chambre Des Officiers핫 브레이커즈/ 프랑수아 뒤페이롱/ 프랑스/ 2001년/ 135분

1차대전 초반, 엔지니어 출신인 젊은 장교 아드리앙은 폭격으로 얼굴의 절반이 날아가다시피하는 부상을 입는다. 말을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파리의 장교들의 병실로 옮겨진 아드리앙. 하지만 육체적인 통증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괴물같이 흉측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위안이라곤 어머니처럼 돌봐주는 간호사 아나이스와 자신처럼 얼굴에 전쟁의 흉포한 낙인이 찍힌 동료 장교들, 그리고 부상 전에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여인 클레망스에 대한 환상뿐. 가족들에게조차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단편영화로 세자르영화상을 수상하며 90년대부터 장편영화를 만들어온 프랑수아 뒤페이롱은 프랑스의 차세대 감독.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별로 없지만, 기괴하게 일그러진 육체, 외부와 유리된 채 노란톤의 병실 공간에서 심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데이비드 린치를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색채와 함께 전쟁과 편견의 잔혹한 폭력성에 경고를 던진다.

◈ 만날 수 없는 세상 Paralelni svety핫 브레이커즈/ 페트르 바클라프/ 체코/ 2001년/ 100분

아주 오래된 연인들, 함께 나눈 시간과 체온만큼 가깝고도 권태와 불완전한 소통의 거리만큼 먼 그들 사이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 대한 영화. 건축가인 크리스토프는 영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하지만, 국적 때문에 체코에 발이 묶여 있다. 그의 연인인 테레자는 프랑스 소설 번역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그들이지만, 인생을 즐기자는 크리스토프와 조심스럽게 그 이상을 바라는 테레자가 그리는 미래의 그림은 점점 어긋난다. 크리스토프는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와의 관계에 불안을 느끼는 테레자는 혼자 임신 중절을 한 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이야기는 전혀 새로울 것 없지만, 세련된 색감과 명암 연출, 매끄러운 촬영은 특별한 이유없이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며 유럽 예술영화의 유산을 감지하게 한다.

◈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 This Is Not a Love Song라이징 디렉터스/ 빌 엘트링검/ 영국/ 2002년/ 94분

이건 정말 사랑영화가 아니다. 사랑영화는커녕, 사랑노래 비슷한 것도 안 나온다. 원제와 같은 가사의 테크노 음악이 흐르긴 하지만, 가사의 의미보다는 잘게 쪼개진 비트처럼 이리저리 튀는 청춘들에 대한 우울한 낙서에 더 가깝다고 할까. 자동차털이인 히튼은 마약 때문에 수감됐던 단짝 스파이크가 출소하던 날 차를 훔쳐 마중을 간다. 기분전환 삼아 런던의 교외로 여행을 떠난 두 사람. 스파이크는 왜 소식 한 장 없었냐는 말부터 끊임없이 떠들어대지만, 과묵한 히튼은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떠올리며 웃을 뿐이다. 하지만 휘발유가 떨어져 우연히 들른 농가에서, 스파이크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복수를 결의한 주민들은 무장한 채 추격해오고, 설상가상으로 히튼이 다치면서 이들의 우정은 시험대에 오른다. <풀 몬티>의 사이먼 보포이가 각본을 쓰고, 그와 2편의 영화를 공동연출했던 동료 빌 엘트링검이 감독한 작품. 디지털카메라로 12일 만에 찍었다는 왜곡된 화면과 잦은 흔들림은 환각 혹은 의식의 흐름을 드러낸다. 출구없는 영국 젊은이들의 삶을 담는 드라마의 뒷받침도 만만치 않다.

◈ 크리스마스 캐롤 Christmas Carol:The Movie라이징 디렉터스/ 지미 테루 무라카미/ 영국, 독일/ 2001년/ 81분

“여러분, 이야기의 대가 찰스 디킨스를 소개합니다!” 1857년 보스턴, 사회자의 소개에 이어 디킨스가 자신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려주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때마침 나타난 쥐 때문에 작은 소동이 일자, 디킨스는 재치있게 바로 그 ‘쥐’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디킨스와 청중들의 실사영상에서 ‘가브리엘’이란 이름의 쥐가 혹한의 런던, 빈부의 표정이 교차하는 거리를 누비는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면서 너무나 유명한 구두쇠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악몽>이 펼쳐진다. 얼어붙은 런던의 잿빛 풍경화와 캐릭터는 디킨스 시대 영국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살려내는 한편, 유령들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는 스크루지의 시간여행은 차츰 가슴의 온기를 되찾아가는 그의 변화와 함께 부드럽고 화사한 색의 유희와 판타지를 선보인다.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바람이 불 때>의 애니메이션 감독 지미 테루 무라카미, <스노우맨>을 제작한 프로듀서 이언 하비와 일루미네이티드 필름의 전력이 조화롭게 녹아든 장편애니메이션.

◈ 나폴리의 열정 Cuore napoletano라이징 디렉터스/ 파올로 산토니/ 이탈리아/ 2002년/ 94분

오 솔레 미오! <나폴리의 열정>은 나폴리 민요에 바치는 헌사와 같은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뮤지션들을 찾아 나폴리와 북미 여러 주를 넘나들며, “아랍의 애가(哀歌)와 스페인 민요에서 유래했다”는 나폴리 전통음악의 역사를 되짚어간다. 이탈리아어와 다른 나폴리 방언을 살린 민요는, 명테너였던 카루소의 목소리와 <푸니쿨리 푸니쿨라> <오 솔레 미오> 같은 히트곡 등으로 폭넓은 인기를 누려왔다. 라디오밖에 없던 시절부터 연주해왔다는 바이올리니스트, 결혼을 앞둔 커플을 축하하며 창 아래에서 연가를 부르는 풍경, 베수비오산의 시정을 해친다며 신설된 케이블카를 꺼리던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만들었다는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탄생 비화, 전통을 이어가는 작곡가가 사라져간다는 우려와 새로운 세대의 가수들에 의해 끊임없이 불린다는 희망이 교차하면서,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애환과 낭만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 동창회 Klassfesten라이징 디렉터스/ 멘스 헤른그렌/ 스웨덴/ 2002년/ 103분

자신이 서른다섯인지, 서른여섯인지도 모를 정도로 일상에 찌들어 사는 보험회사 직원 마그누스는 어릴 적 여자친구 힐레비를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다.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날아들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이끄는 대로 마그누스는 동창회를 찾아간다. 억지스럽고 형식적이며 어색한 동창회의 행사들이 이어지지만, 마그누스 앞에 나타난 힐레비는 그의 과거의 충만함과 열정을 되살려낸다. 그러나 현재의 삶은 버릴 만한 것이 아니라 버티고 가꾸어야 할 만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동창회를 찾은 마그누스가 얻어오는 교훈이다. 각양각색으로 변화되어 있는 동창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속에서 노스탤지어의 섬을 찾은 마그누스는, 그러나 진정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변화의 의지를 갖게 된다. 글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황혜림 blauex@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