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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감각의 전환기 맞은 김상진 감독(2)
2002-11-23

똑바로 선 코미디,다시 유행을 창조한다

11월13일 첫 기자시사회를 연 <광복절특사> 제작진은 이튿날 프라자호텔 18층에 방 하나를 빌려놓고 감독, 배우 인터뷰를 릴레이로 진행했다. 김상진 감독에게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많이 달라진 이유를 들어봤다.

Q 원안은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의 것이었고, 작가도 처음엔 박정우 작가가 아니었는데 <광복절특사>는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 아이디어는 내가 데뷔하기 전에 있던 것이다. 한맥영화사 김형준 사장이 무슨 영화 하고 싶냐고 묻기에 <빠삐용>이나 <아리조나 유괴사건> 같은 영화, 교도소가 나오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에게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했다. 탈옥하는 이야기는 많으니까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야 되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지 않겠냐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당시 상황에선 무조건 못 만드는 영화였다. 교도소에서 촬영 협조를 할 리 만무했고 그렇다고 세트를 지을 만한 능력도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조금씩 아이템을 발전시켰는데 <주유소 습격사건> 하기 전에 얘기를 꺼냈더니 주위 반응이 썰렁해서 접었다. <신라의 달밤> 하기 전에도 <광복절특사> 얘기를 했더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신라의 달밤> 끝내고 다시 얘기를 하니까 그때서야 다들 정말 ‘죽이는’ 아이템이라며 환호했다. 그걸 보면 확실히 영화도 때가 있는 거 같다.

Q 박정우 작가와 대담할 때도 나왔던 얘기지만 탈옥까진 좋은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풀어갈지 난감했던 것 같다.

→ 막상 뚜껑을 열고 쓰기 시작하니까 무지 어려운 이야기였다. 말도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가자고 했을 텐데 교도소 이야기라는 특성 때문에 그러기도 어려웠다. 영화를 찍으면서 모토로 생각한 것은 계속되는 아이러니로 끌고가자는 것이었다. 탈옥했다 다시 들어가고, 죄수 대신 교도관이 갇히고, 죄수들이 교도관을 가두고 하는 식으로.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연결된 일종의 역할 바꾸기인데 <주유소 습격사건>과 달리 이번엔 논리가 중요했다. 말이 안 되는 부분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를 놓고 많이 고심했다. 라스트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사태를 해결하는 장치로서 용문신의 인질극이 나오게 됐다. 주인공들이 감옥에 다시 들어갔다 다음날 특사를 받아 나오자면 감옥 안의 상황이 달라져야 했으니까. 사회풍자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태 해결의 장치였던 셈이다.

Q <주유소 습격사건>과 많이 다른 점이 그런 데서 발견된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논리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진행되는데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주유소 습격사건>에선 “어려운 말 하는 새끼들 다 죽여야 돼” 하는 식의 과격함이 있는 반면 <광복절특사>는 “우리가 정말 인간 쓰레기냐”는 호소로 폭동을 진정시킨다.

→ <주유소 습격사건>은 시침 뚝 떼고 가는 코미디였지만 <광복절특사>는 그렇게 하면 해프닝성 드라마밖에 안 될 것 같았다. 초고를 쓸 때는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해프닝과 에피소드가 죽 나열되는 구조였는데 이렇게 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겠구나 싶더라. 아이템 자체가 노출된 상태로 개봉할 텐데 관객이 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와야 될 거 아닌가.

Q 흥미로운 점은 전작에 비해 덜 폭력적이고 사회풍자가 전면에 드러나며 점잖은 코미디라는사실이다. 예전에 <투캅스3> 하고 나서 이런 유의 코미디로는 강우석 감독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과격하고 막 나가는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부정적인 의미든 긍정적인 의미든 다시 강우석 감독의 코미디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 강우석 감독의 코미디가 사회의 틀 안에서 비꼬고 꼬집는 코미디라면 <주유소 습격사건>은 아예 그런 틀을 없애버리거나 틀을 깨고 뛰쳐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여전히 그런 게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광복절특사>에선 교도소라는 한계 때문에 그 틀을 맘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후반부에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들을 꾸짖고 비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보안과장의 말에 담겨 있다. 줄줄이 딸린 자식과 부모 때문에 난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소시민, 그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 그동안 우리 영화에서 그런 소시민이 너무 안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주인공이 감옥에서 나가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면 보안과장처럼 자기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소시민일 거 같았다.

Q 많은 사람들이 <주유소 습격사건>을 조폭코미디의 원조로 평가하고 있다. 장르로서 어떤 전형을 만들었다는 의미라기보다 유행의 시발점으로서. 하지만 <광복절특사>를 보면 김상진 감독 스스로는 조폭코미디의 유행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더이상 쌈마이로 불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인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주유소 습격사건>을 조폭코미디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견해에 일부 수긍하는 부분이 있다. 만화적인 코드라든지 캐릭터의 단순화 같은 지점이다.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모두 조폭코미디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영화로 어떤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어나 폭력을 순화했다. 요즘 영화에선 욕이 너무 많아지니까 나도 듣기가 좀 싫더라. <광복절특사>는 교도소영화고 조폭코미디와 똑같은 지점으로 보여지지 않았으면 했다. 쌈마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좋아한다. 박정우 작가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일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 하지만 쌈마이 짓도 늘 똑같이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쌈마이도 변해야 된다. 그렇다고 일류가 되지는 않겠지만 쌈마이가 유행이 되면서 더이상 쌈마이로 보여지지 않는 코드가 생겨버렸다. 거기서 탈피하고 싶었다. 또 비슷한 느낌이라면 곤란하다고 봤고 조금씩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주유소 습격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약간이라도 달라지고자 했다.

Q 조폭코미디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느낌이 든다.

→ 그건 아니다. 조폭코미디라는 장르는 계속 있을 거고 관객은 여전히 재미있어 할 것이다. 다만 그 유행이 나로부터 시작됐다면 이젠 유행을 다시 앞서 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기왕 영화라는 매체로 뭔가 만든다면 관객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해야 하는데 나부터 조폭코미디가 좀 지겨워졌고 새로운 걸 계속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Q 오래 전부터 <광복절특사>의 주연배우는 차승원과 설경구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에서 함께했지만 설경구는 처음이다. 어떤 면에서 설경구를 최적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나.

→ 연기를 잘하는 배우고 관객도 좋아할 거라 생각해서 캐스팅했다.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같은 사회의 아픔을 다루는 영화 이미지가 강하지만 대학 때부터 봤던 내겐 코믹한 면도 많이 보였고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Q 설경구가 연기한 사기꾼 재필의 캐릭터를 보면 극중반부터는 사기꾼이라는 설정이 모호해진다. 극의 마지막에서야 다시 사기꾼의 캐릭터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 그렇게 느꼈다면 연출의 문제다. 사기꾼이라는 사실로부터 동기를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교도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에 매달리게 된다. 목표가 중요하다보니 캐릭터를 묘사하는 에피소드는 줄어들었고 힘을 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쌈마이 짓도 늘 똑같이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쌈마이도 변해야 된다.그렇다고 일류가 되지는 않겠지만 쌈마이가 유행이 되면서더이상 쌈마이로 보여지지 않는 코드가 생겨버렸다. 거기서 탈피하고 싶었다.또 비슷한 느낌이라면 곤란하다고 봤고 조금씩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어쩔 수 없이 <주유소 습격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약간이라도 달라지고자 했다.˝

Q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유소 주인 박영규나 <신라의 달밤>에서 마천수로 나온 이원종은 매력적인 조연이었다. 이번 영화에선 경찰인 유해진이나 보안과장인 강신일 같은 인물이 그럴 수 있었는데 아쉽다.

→ 전작들은 조연 캐릭터를 만들기 쉬운 영화였지만 <광복절특사>는 애를 먹었다. 조연들이 매력적이려면 주인공과 부딪쳐야 되는데 이 영화에선 주인공과 계속 어긋나게 된다. 주인공이 계속 도망을 다니니까 어쩔 수가 없다. 주인공을 추적하는 교도관이나 강성진이 연기한 용문신도 그래서 아쉽다. 감독의 책임이 큰데 다음엔 주인공이랑 부딪치지 않아도 매력적인 조연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든다.

Q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은 거대한 패싸움으로 마무리된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흥행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발한 엔딩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신라의 달밤>의 엔딩도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엔딩은 조금 다르다. 등장인물이 전부 한자리에 모이는 대치국면이라는 사실은 같지만 패싸움이 아니라 말에 의해 설득되고 정리된다.

→ 또 각목들고 휘두르는 건 못 보겠더라. 게다가 이건 총이 나오는 영화라 총격전이 벌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여러 명 죽어야 하고 거기까지 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사람들 심리가 묘해서 비슷한 패싸움을 찍었다면 또 저런 식이군 하며 욕할 테고, 다르게 찍으면 왜 전처럼 안 하냐고 되묻는다. 두번이나 했던 걸 다시 그대로 쓰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Q 전작들에 비해 촬영이 매끄럽고 깔끔하다. 농담 반 진담 반 말하자면 김상진 감독답지 않게 화면에 성의를 보였는데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나.

→ 교도소라는 공간을 보여주다보니 앵글이며 소품이며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광복절특사>는 정광석 촬영감독이 조명까지 통제하는 DP시스템으로 찍어서 다른 점이 있다. 여전히 디테일을 무시하고 간 장면이 있지만 전보다 신경써서 찍은 건 사실이다.

Q 지금까지 5편의 서울 관객만 314만명이 넘는다.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또 다른 야심을 가져 볼 만한 흥행성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나.

→ 숫자놀음일 뿐 별 의미가 없다. 제작자로서 욕심을 갖는 것도 그렇다. <광복절특사>는 감독의 집이라는 제작사로 독립해 만든 첫 작품이지만 다음 작품부터는 시네마서비스 내부에서 하기로 했다. 내년 1월1일부로 다시 시네마서비스 직원이 된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감독으로 돈도 꽤 벌었고 그냥 감독을 오래 하고 싶을 뿐이다.

Q <광복절특사> 보도자료에서 나중에는 임권택 감독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칸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밝혔던데 어떤 의미인가.

→ 그 말 그대로다. 나이 60이 돼서도 감독을 하고 싶고 코미디를 잘 만들어서 칸영화제에 초청받고 싶다. 기회가 되면 할리우드에 가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안 되면 할리우드에 놀러라도 가야지. (웃음) 쑥스러운 얘기지만 작품할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라의 달밤>보다는 <광복절특사>가 잘 만든 것 같고 김상진 스타일, 김상진 브랜드가 생기는 것 같다. 그게 감독으로서 큰 기쁨이고 열심히 한우물을 파면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 장소협찬 서울 프라자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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