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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2002 엔딩 크레딧 <10>
2002-11-29

부산의 발견3 - <연안에서 온 딸>의 이케야 가오루"역사의 빙하를 녹이는 이 여자를 보라"

그들은 낙오자들이다. 문화혁명의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어 낯선 땅에 나동그라진 그들은 연인과 친구와 딸을 버려야 했다. 베이징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던 아버지에게 어느 날 딸의 소식이 전해진다. 장성한 딸의 얼굴에서 잃어버린 과거를, 잊혀진 상처를, 치욕스런 패배를 확인하는 순간, 아버지는 복받치는 울음을 참을 수 없다. <연안에서 온 딸>은 그 눈물의 기원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비극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마침내 도달하는 종착역은 ‘역사’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올해 부산의 다큐멘터리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이 작품은 일본 감독 이케야 가오루(44)의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다. 대학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하고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해온 그는 “89년 천안문 사태 때 TV에서 본 한 남자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중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탱크에 당당히 맞서 꿈쩍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중국인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로 중국인의 당당한 모습을 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연안: 황토와 새로운 진실>이라는 TV다큐멘터리 작품으로 몬테카를로국제TV페스티벌에서 황금님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앞으로도 중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다.

<연안에서 온 딸>을 만들게 된 배경은.

→ 1960년대 말 문화대혁명 당시 시골로 ‘하방’됐던 1600만 ‘홍위병’들의 삶은 끔찍했고, 탈출구는 사랑밖에 없었다. 그러나 혁명 지휘부는 연애와 출산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처벌을 두려워한 젊은이들은 아이를 내버렸다. 9년 전 연안에서 TV용 다큐를 만들 때, 한 80대 노인으로부터 이 영화의 주인공 하이시아처럼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뒤로 이 작품을 죽 생각해왔다.

하이시아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그리고 왜 그녀를 주인공으로 세웠나.

→ 애초 하이시아 같은 인물을 10명 정도 추천받았는데, 하이시아의 경우 처음 만나던 당시 이미 5년 동안이나 아버지를 찾는 상태였다. 하이시아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황유링의 존재도 그녀를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그 역시 문화혁명 때 하방해 한 여성과 사랑을 나눴지만, 끝내 아이를 낙태해야 했던 인물이었기에 하이시아를 자신의 딸처럼 아끼며 그녀가 아버지를 찾는 일을 무척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이시아가 아버지를 찾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작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1999년 여름부터 기획을 시작해 꼬박 3년이 걸렸다. 결국 부녀가 상봉한 시기는 2001년 11월이었다. 2시간짜리 작품이지만 총촬영분량은 150시간이었다. 에서 제작비를 받았기 때문에 비용문제는 없었던 편이다.

<연안에서 온 딸>은 상처만을 보여주려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 그렇다. 오히려 역사의 파랑에도 굴하지 않고 9년 동안이나 아버지를 찾으려 했던 한 여성의 용기와 꿋꿋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는 그 마음까지도 말이다.

예민한 문제를 다룬 것 같은데 중국 당국과의 마찰은 없었나.

→ 담당하는 관리에게 이 영화를 찍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고 일일이 설명하는 과정이 번거롭긴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떨어져 지내던 부녀가 상봉하는 이야기였으므로, 그들도 허가를 내줬다.

부녀의 상봉 에피소드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화혁명에 다가가는 것 같다.

→ 왕웨이라고 문화혁명 당시 강간 누명을 쓴 사람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는 이 사건의 희생자였지만, 그동안 동네에서도 따돌림받는 생활을 해왔다. 나는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그 사람을 만나자마자 “당신을 만나기 위해 30년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중국을 소재로 한 다음 작품은.

= 천안문 사건 15주년을 맞아 2004년쯤 다큐를 완성할 것이다. 이 작품처럼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이다.글 문석 ssoony@hani.co.kr 사진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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