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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2002 외화 비망록 [1]
2002-12-27

최고의 허풍쟁이부터 최악의 키스신까지

웃기는 대사 상에 <몬테크리스토>___“자네, 감방의 돌에 이름은 붙여봤나?”

하나 하면 어바웃 어 보이, 둘 하면 맨 인 블랙, 셋 하면 쓰리 그리고 파이(원주율 마크 넣어주세요), 넷은 크로스로드, 일곱은 007 그리고 아홉은 세션 나인, 열은 텐 미니츠, 열하나는 오션스 일레븐, 열셋은 13 고스트, 열아홉은 K-19, 서른은 트리플X, 마흔은 40데이즈 40나이트, 그리고 다시 51번째주. 영화와 함께 노래하고 훌쩍이고 깔깔대고 뒹굴며 흘러간 2002년 한해를 가지각색 이유로 말미암아 잊기 힘든 외국영화의 순간들을 빌려 끼적끼적 정리했다.

최고의 키스, 최악의 키스

<시네마천국> 마을의 신부님은 올해도 손목에 쥐가 나게 종을 흔들었으리라. 스크린에 찍힌 무수한 키스 마크 중 관객을 질투에 불타게 만든 최고의 입맞춤은 거미 남자의 키스였다. 비결은 발상의 180도 전환. 메리 제인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 맨의 마스크를 입가만 벗겨내려 한 짜릿한 키스의 순간에는 비까지 쏟아져 감전사고를 염려하게 했다. “마음에 드는 립스틱을 원하면 사지말고 섞자”는 생활의 지혜를 본인들의 입술로 실천하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의 동성 커플 제시카와 헬렌의 입맞춤도 부러움을 샀다. 반면 최악의 키스를 나눈 짝은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의 클론처럼 뻣뻣한 연인 아나킨과 아미달라. 역시 키스는 두 마음의 소통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트리플X>의 빈 디젤과 아시아 아르젠토도 좀더 정진해야 할 커플로 꼽혔다.

올해의 웃기는 대사

<몬테크리스토>에서 고참 죄수와 신참 죄수가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화. “제 감방엔 7만2500개의 돌이 있어요.” “자네 그 각각의 돌들에 이름은 붙여봤나” <프릭스>에서 거미를 발견한 두 친구의 대화. “저거 뭐지” “스파이더, 맨(거미야, 친구)” <스파이더 맨>에서 숙모가 피터 파커에게 하는 말. “얘야, 요즘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거 아니니 네가 슈퍼맨도 아니잖니” <소림축구>에서 주성치가 머리를 박박 밀고 대신 골키퍼를 하겠다고 나선 조미에게 하는 말. “잔말말고 어서 네 별로 돌아가!”

혼동되는 ‘타이틀 매치’

<모스맨>은 스파이더 맨의 사촌이 나오는 액션영화가 아니라 초자연 현상에 관한 스릴러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센과 치히로는 두 사람이 아니었고 관객이 보기엔 행방불명된 건 센이 아니라 엄마, 아빠였다. <레인 오브 파이어>에서는 불의 비가 내리지 않았고 <기쿠지로의 여름>의 기쿠지로는 여름방학을 맞은 꼬마가 아니라 인상 험한 기타노 다케시 아저씨였다. <썸 오브 올 피어스>는 피어싱투성이의 엄지손가락을 뜻함인지 공포의 일부인지 아니면 최고의 공포라는 소리인지 쓸데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자막만 나오면 난독증으로 허둥대는 영미권 관객과 달리 자막 읽으며 영화 보는 멀티태스킹에 단련된 한국 관객에게 외국어영화로 명함을 내밀려면 이쯤은 되어야 한다. <맨 인 블랙2>는 랩과 비트박스가 도무지 인간의 말로 들리지 않는 장년층의 푸념에 착안한 예. 우체국장으로 초야에 묻힌 전 파트너 토미 리 존스를 각성시키기 위해 윌 스미스는 랩송처럼 들리는 외계어를 구사해 위장취업()한 외계인들의 정체를 폭로했고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의 아라곤은 요정 여자친구를 둔 남자답게 엘프어 실력을 여전히 과시했다. 하지만 ‘이방 언어 영화상’ 메달은, 내레이터 맷 데이먼을 통역으로 부렸을 뿐 인간의 언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푸푸거리는 소리로 대화해 종족 자존심 회복을 선언한 말 없는 말들의 애니메이션 <스피릿>의 갈기 위에서 빛나게 됐다.

WHO.A.U상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올해 외화들 사이에 퍼진 바이러스는 정체성 혼란. <본 아이덴티티>의 첩보요원 맷 데이먼은 본인이 누구인지부터 수사해야 했고, <디 아더스>의 가련한 엄마 니콜 키드먼은 <식스 센스>의 의사보다 곱빼기로 고초를 겪었다. 올해의 가장 가증스런 특수분장을 보여준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기네스 팰트로, 딸의 육신에 아내의 영혼이 들락날락하며 완벽한 남성 판타지를 구현한 <비밀>의 히로스에 료코,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1인2역 복화술로 CG 캐릭터의 메소드 연기를 선보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의 골룸도 주제파악에 골치를 앓은 인물. 콩나물처럼 쑥쑥 자란 해리 포터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심혈을 기울였다는 뱀의 말보다 한 옥타브 떨어진 변성기 목소리로 더 큰 쇼크를 안겼다. 최종 수상자는 호그와트의 자격미달 교수 길데로이 록허트. 기억제거 마법의 역공을 당한 뒤 <나, 누구니>라는 책까지 저술한 재활 의지가 점수를 땄다.

변신과 불변

친절한 가정부 바이센테니얼맨이 소녀를 공격하고, 단란한 가정에 대한 애착을 집착으로 부풀린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스토킹을 시작한다면 <인썸니아>와 <스토커>의 로빈 윌리엄스는 ‘패밀리 맨’의 이미지를 보존한 채 소독약 냄새나는 공포를 자아내는 사나이로 변신에 성공했다. 반면 후배 코미디언 애덤 샌들러는 ‘애덤 샌들러 코미디’라는 유사 장르가 생긴 지금도 만족을 모르고 한결같은 눈빛과 말투, 의상과 조크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실리콘 밸리에는 그녀의 동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출연작의 제작연도를 고증하려면 탄소연대 측정법을 동원해야 할 배우로는 <와일드 클럽>의 언니 골디 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영화지 <무비라인>에 의해 “딸의 옷장을 제일 자주 넘볼 듯한 엄마”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최고, 최악의 액션

액션 애호가인 김봉석 평론가가 꼽는 올해 가장 흥분되는 액션은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의 헬름 협곡 대전투다. 우르크하이족 대군을 맞이한 아라곤, 김리, 레골라스는 그야말로 일당백의 조자룡과 장팔사모를 든 장비를 연상케 하는 무공으로 중간계판 삼국지 장판파 전투를 재현해내고야 말았다. <레지던트 이블>은 여성 전사 액션 연출에서 <툼레이더>의 겉멋을 제압했고 <트리플X>는 스포츠로서의 격투기를 보여주었다. 최악의 액션은 품 안의 구슬을 꿰지 못한 <더 원>. 달인 이연걸을 하나도 아니고 떼로 불러놓고도 밧줄과 특수효과에 의존하는 무례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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