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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스키와 그의 여인들
2003-01-04

사랑만한 욕망은 없다

“나의 영화들은 순간적 욕망의 표현이다. 나는 훈육받지 않은 방식으로 나의 본능을 따른다”는 로만 폴란스키의 말은 그의 영화세계뿐만 아니라, 영화 바깥의 삶까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때로는 거침없는 성애의 표현으로, 때로는 극한의 폭력으로, 때로는 악마의 심장 속으로 관객을 몰고 가는 폴란스키의 영화방식은 결코 순탄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그의 인생 역정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충동과 충돌을 거듭해온 그의 삶을 함께해온 인생 반려자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과, 폴란스키와, 폴란스키의 영화는 어떻게 얽혀 있는가

로만 폴란스키는 모두 세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독일 태생의 여배우 바버라 래스였다.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 시기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바버라 래스가 폴란스키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에바로 등장하는 데뷔작 <이브는 잠들고 싶어한다>(1958)의 촬영 도중이었다. 종종 바버라 래스가 아닌, 바버라 크비아트코브스카로 크레딧에 오르기도 하는 이 배우는 1950년대 후반 폴란스키의 단편영화에 주로 출연했으며, 1960년대에는 르네 클레망과 로저 바딤의 영화를 거쳐 이후에는 독일 뉴저먼시네마의 기수들인 마가레타 폰 트레타의 <로자 룩셈부르크>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에피브리스트>에도 출연했다.

폴란스키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아픈 상흔을 남긴 것은 그의 두 번째 부인 샤론 테이트였다. 샤론 테이트는 <악마의 눈>이라는 영화촬영 도중 로만 폴란스키에게 소개되었다. 처음에 폴란스키는 그녀가 그의 새로운 영화 <용감한 뱀파이어 킬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결국 프로듀서의 설득으로 오디션을 보고 의상을 입은 그녀를 본 뒤 배역을 주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마크 롭슨 감독의 <인형의 계곡> 출연 이후(그러나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감독이 자신의 배우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 마침내 그들은 1968년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폴란스키의 바쁜 일정 탓에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항상 전화로 사랑을 확인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폴란스키가 <로즈마리의 아기>(국내 출시작 <악마의 씨>)를 찍은 다음해인 1969년, 악명 높은 살인광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는 집단들에 의해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는 로스앤젤레스 저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살해 당시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폴란스키는 유럽으로 돌아갔고, 1974년이 되어서야 <차이나타운>으로 할리우드에 재입성했다. 1971년 만들어진 <멕베스>에는 아내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듯한 폭력장면들이 내재되어 있고, 1973년의 블랙코미디 <무엇>에는 그에 대한 비극성이 얼룩져 있다. 그 충격의 폭풍이 오래 남아 있었던 것일까 폴란스키는 1977년 13살 미성년 모델과의 섹스 스캔들(당국이 적용한 혐의는 강간)에 휘말려 돌아올 수 없는 유럽 도피길에 오르게 된다.

그 이후 1989년 결혼, 두명의 자녀를 두고 현재까지도 삶을 같이하는 에마뉘엘 세이그너가 그녀의 세 번째 부인이다. 다른 두명의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에마뉘엘 세이그너도 폴란스키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장 뤽 고다르의 <탐정>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혐오>와 <비터 문> <나인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폴란스키의 대표작들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아마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굳이 로만 폴란스키의 애정사까지 소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그렇다면, “나의 영화들은 순간적 욕망의 표현이다”라는 그의 말을 다시 한번 훔쳐 듣자. 사랑만한 욕망은 없다. 폴란스키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에게만 애정을 느껴왔다. 그리고 그 애정의 궤도는 폴란스키의 영화제작 궤도의 단층과 맞물린다. 영화를 시작했던 50년대, 격변의 70년대, 그리고 80년대 후반 이후. 이 소개는 영화를 다루는 그의 심리적 내면에 대한 희미한 암사지도일 수도 있다.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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