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로만 폴란스키와 그의 영화세계 [2]
2003-01-04

섹스와 폭력의 명장,내밀한 기억 속으로

폭력과 섹스, 그리고 감춰진 유머

많은 경우 폴란스키의 영화에 관한 언급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폭력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것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독특한 유머감각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단편들은 바로 폴란스키 영화의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가 유머에 놓여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 유머는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한 뿌리깊은 부조리를 응시한 자가, 거기서 통렬한 슬픔을 맛본 뒤에 취할 수 있는 거부의 몸짓에 다름 아니다. 혹은 그것은 구원의 가능성을 잃은 세상을 향한 존재의 자기증명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 그 유머는 기묘하게 이완된 서스펜스의 순간에 느닷없이 돌출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물 속의 칼>). 그래서 폴란스키가 지나치게 웃을 때면 우리는 되레 그 서늘함과 날카로움에 상처를 입고 마는 것이다. 그의 1960년대 걸작 가운데 하나인 <궁지>가 바로 그러한 영화이다. 차에 탄 한 남자와 그 차를 밀고 가는 한 남자. 이 두명의 갱이 갓 결혼한 부부가 살고 있는 성에 도착한다. 갱들 가운데 하나는 죽어가는 중이고 팔을 다친 다른 이는 무단으로 부부의 처소에 침입, 두목에게 전화 연락을 취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두목은 오지 않고 엉뚱한 방문객들이 찾아와 그는 부부의 하인 노릇까지 해야 할 형편이다. 어쩌면 이는 폴란스키 버전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여신’ 카트린 드뇌브로부터 예기치 않은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감독은 루이스 브뉘엘(<세브린느>)과 로만 폴란스키(<혐오>)뿐이다. 그들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드뇌브의 이미지는 온전히 그들 자신의 힘으로 창조한 것이다. 어쩌면 드뇌브는 그저 자신의 기존 이미지들을 이끌고 이 감독들의 프레임 안에 걸어들어오는 것으로 스스로의 할 일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드뇌브의 얼굴을 이들의 영화에서 보는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그녀가 출연한 다른 모든 영화들과도 맞바꿀 수 없다. 폴란스키는 극도의 ‘순수’가 파괴되고 더럽혀지고 무너지는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는 심리적인 공포의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즉 진정 순결한 형상 위에 덧씌워진 오염적인 형상의 위력을 안다. <혐오>의 여주인공은 강간에 대한 공포와 결벽증에 시달리다 점점 미쳐가고, 마침내는 자신을 쫓아다니던 남자와 집세를 받으러온 집주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특히 그녀가 걷던 복도의 양 측면에서 숱한 손들이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더듬는 환상장면은 그 옥죄는 듯한 느낌에서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또한 그녀가 불안한 얼굴로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런던거리의 풍경이 그녀의 몸을 더듬듯 스쳐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폴란스키가 미국에 가서 만든 첫 번째 영화 <악마의 씨> 또한 다분히 <혐오>의 연장선상에서 고찰될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 후반부에서의 미아 패로의 이미지는 <혐오>에서의 드뇌브의 그것을 변주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폴란스키의 ‘성공적인’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폭력이 진정 끔찍한 것은 그것이 양식화되지 않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크린 너머 거기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그저 ‘벌어진다’. <피아니스트>가 왕년의 폴란스키를 다시 불러오는 것도 바로 이를 통해서다. 심지어 그는 <맥베드>(1971)-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플레이보이>가 제작에 관여했고 콜럼비아에 의해 배급되었다- 와 같은 고전을 거의 고어(gore)영화에 가깝게 스크린에 옮겨놓기도 한다. 칼에 찔린 목덜미에서 솟구쳐 나오는 피, 단칼에 잘려 땅에 구르는 머리와 몸통,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는 제왕절개의 이미지 등등. 또한 갑옷을 입고 맞붙어 싸우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들의 한없이 둔중한 움직임으로 인해 더욱 적나라하게 결투의 무게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셰익스피어의 같은 원작에 대한 다른 뛰어난 해석-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1957)과 오슨 웰스의 <맥베드>(1948)- 에 견줄 만한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폴란스키적이라 할 요소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피아니스트>, 개인적인 기억을 안고

1970년대의 폴란스키가 만든 영화 가운데 최고의 영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차이나타운>- 이 영화에선 필름누아르의 고전 <말타의 매>(1941)를 만든 감독 존 휴스턴이 노아 크로스 역으로 등장한다- 이다. 탐정 제이크가 댐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미심쩍은 사건들에 점점 다가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폴란스키는 추악하게 얼룩진 가족관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이 영화의 결말부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는 사실 3년 뒤면(13살 소녀 강간혐의를 피해) 영영 떠나게 될 미국을 향해 던지는 다소 이른 고별사 같은 것이다. “잊어버리게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라구.”

1979년의 <테스> 이후, 폴란스키는 오랜만에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 몇편의 연극연출에 관여하면서 1980년대를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폴란스키의 오랜 침체기가 시작된다. <해적>(1986), <실종자>(1988), 그리고 <비터 문>으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은 과거의 명성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고니 위버의 진실>(1995)과 <나인스 게이트>(1999)는 부분적으로 폴란스키의 옛 영화들을 떠올리게도 만들지만 한때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 종종 새겨넣곤 하던 유머가 아쉬운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맞아 처음으로 스스로의 개인사적 기억을 전면에 내세운 <피아니스트>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결국 우리는 또 한번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