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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지각변동 [4]
2003-01-10

얼어붙은 충무로, 금융자본 위축되고 돈가뭄 심각

_____________“어둡거나 혹은 아예 캄캄하거나.” 2003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어느 제작자의 전망은 다소 과장된 구석이 있지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선명히 보여준다. 한국 영화계의 자금난이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점 말이다. 충무로 제작자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 보이는 이유는 이번 자금난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다. 즉,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젖줄 역할을 해온 창투사 기반의 금융자본이 급격한 위축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년만에 290억 흑자가 470억 적자로

시네마서비스, CJ 등 ‘메이저’ 투자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올해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를 보수적으로 펼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금융자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KTB네트워크의 계열사였던 KTB엔터테인먼트는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튜브인베스트먼트를 기반 삼은 튜브엔터테인먼트는 극심한 자금난을 겪는 중이며, 미래에셋 계열의 코리아픽쳐스, 무한기술투자 계열인 아이픽처스 등도 기존 사업을 재점검한다며 신규 투자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영화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이들이 주춤하고 있으니 여타 금융자본의 사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가뭄에 단비처럼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투자해온 앤젤 투자자들도 돈을 움켜쥔 채 영화 밖의 다른 분야를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금융자본의 진통 속에서 <미스터 레이디> <데우스 마키나> 같은 영화는 50% 이상 촬영을 마치고도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을 쉬고 있으며, 캐스팅까지 완료한 일부 작품은 투자처가 결정되지 않아 크랭크인조차 못하고 있다. 2001년과 2002년의 호황 속에서 여러 편의 작품 라인업을 짜놓았던 메이저 제작사들도 경상비 조달을 걱정하며 프로젝트 정비에 나서고 있다.

사실, 이같은 분위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이엠픽처스가 발표한 ‘2002년 영화산업 결산 리포트’에 따르면, 2002년 개봉한 한국영화는 78편으로 2001년에 비해 20여편이 증가했고, 관객도 1800여만명(서울 기준)을 동원해 2001년 대비 14% 정도의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점유율도 45.4%로, 2년 연속 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했다. 흑자를 기록한 작품도 2001년에 비해 6편 많은 16편이었다. 이런 수치만으로 판단할 때, 한국영화는 매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춰보면 한국 영화계의 건강 상태는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니다. 특히 금융자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인 수익성면으로 볼 때 한국영화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 셈이다. 아이엠픽처스에 따르면 2002년 한국영화에 투자된 돈은 2300여억원이었지만 매출은 1800여억원에 그쳐 47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해외판매 실적을 포함하지 않은 기록이라 해도 29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2001년과는 매우 대조적인 성적이다. 한국 영화계가 이처럼 커다란 손실을 기록한 데는 우선 제작비 50억원이 넘는 블록버스터의 흥행 참패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3편이 기록한 손실액만도 190억원이 넘을 정도. <아 유 레디>에 투자한 KTB와 <성냥팔이…>에 투자한 튜브가 큰 타격을 입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묻지마 투자’, 사필귀정

그렇다고 한국영화 수익성이 급속히 하락한 책임을 모두 블록버스터영화에 떠넘기는 것은 무리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에서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데 동의한다.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제작비의 상승이다. 총제작비 기준으로 2000년 평균 21억5천만원이었던 한국영화 제작비는 2001년 26억원이 되더니, 지난해에는 30억5천만원으로 급상승했다. 1998년 평균 제작비인 15억원에 비하면 2배가 넘는 수치다. 프리 프로덕션의 부실화, 스탭 인건비의 상승, 마케팅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 등으로 큰 폭으로 뛰어오른 제작비에 비해 수익은 그만큼 상승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1. 연도별 한국영화 투자 손익 변화 / 2. 반기별 흑자작품 총손익변화 / 3. 한국영화 평균제작비 현황

그러나 제작 파트가 한국영화 수익률의 저하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계의 자금난에는 투자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존재한다. 비계획적이며 느슨한 투자가 그것이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와 2001년 <친구> 이후 ‘영화에 투자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입소문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유입된 금융자본들이 시나리오의 완성도나 연출 역량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영화에 투자되면서 작품의 질이 떨어졌고 흥행력 또한 저하됐다는 얘기다. 2002년 개봉한 작품들 중 상당수가 2001년 투자 결정이 내려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난해의 급속한 수익성 저하는 ‘묻지마 투자’시대의 자연스런 산물로 보인다.

아무리 금융자본이 위축돼 있다곤 하지만, 이들이 당장 충무로에서 일제히 철수하는 사태까지 빚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창투사가 중심이 된 영상투자조합(영상펀드)은 현재 30여개로 대략 2천억원가량의 자금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존속기간이 2∼3년 남아 있으므로 쉽게 영화계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펀드가 그동안의 투자로 상당한 손실을 본 탓에 자금규모가 줄었으며, 이런 영향으로 쉽게 투자작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2002년 시네마서비스의 작품에 일정 지분을 꾸준히 투자해온 MVP창투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펀드는 큰 손실을 기록했거나 수익을 올리지 못한 탓에, 이들은 좀더 신중하게 영화 투자에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