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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DVD 커뮤니티 `DVD 프라임` 사람들 [1]
2003-01-17

뛰는 DVD 위에 나는 소비자 있다!

<DVD 역사신문> 같은 것을 만든다면 취재기자는 반드시 DVD 프라임의 생존자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긴 지 몇년 안 되는 사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한국의 DVD 시장, 그곳에서 DVD 프라임은 서플먼트의 한글자막화와 몇몇 대작 타이틀의 리콜 사태, 초기 타이틀에 속하는 <타이타닉> 가격 인하요구 같은 굵직한 사건 한편에 항상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DVD 프라임의 주요 활동분야는 소비자들이 까탈스럽게 분석하는 타이틀과 하드웨어 리뷰, 그리고 DVD 관련 이슈를 둘러싼 토론. 직접 써본 사람들이 솔직한 글을 올리는 탓에 이제는 메이저 제작사들이 언론사보다 먼저 공지사항을 전달한다는 DVD 프라임은 어떤 분야보다도 적극적인 소비자들이 모인, 거대하면서도 역동적인 커뮤니티다. - 편집자

“저, DVD 프라임이 동호회가 아닌 건 알고 계세요” DVD 프라임 운영자 박진홍 씨는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조심스럽게 첫마디를 뗐다. DVD 쇼핑몰도 아니고, DVD 웹진도 아닌데, 동호회가 아니라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삼킨 그 의문은 DVD 프라임(www.dvdprime.com) 메인화면에 떠 있는 문구와 여러 이벤트 공지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최고는 소비자가 정한다!” 이 문구 아래에는 초소형 DVD 플레이어 테스터를 모집하는 공지에서 2002년의 공룡이라 할 만한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감상기 모집까지, 그들의 경험을 참고하려는 다양한 이벤트가 늘어서 있었다. 99년 6월4일 조그만 개인 홈페이지로 시작한 DVD 프라임은 국내 최대 규모의 DVD 커뮤니티로 성장하는 사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만남을 지속하는 동호회 수준을 넘어 무형의 권력을 가진 소비자 집단으로 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거친 작은 사건들을 배열하다보면, 한국 DVD 시장의 변화를 고스란히 회상할 수 있는 DVD 프라임. 이곳의 짧은 성장사는 신기술이 낳은 매체 DVD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 때문에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체감하게 했다.

DVD 프라임 운영진과 진득하게 대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드웨어 프로모션 때문에 어느 대기업에서 걸려온 전화가 사진 촬영을 잘라먹더니, 한 시간 간격으로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위해 얼마 안 되는 의자를 자꾸 재배치해야 했다. 몇명이 오순도순 모여 소박하게 꾸리고 있으리라는 예상은 들썩이는 사무실 공기에 밀려 일찌감치 무너졌지만, 운영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쁜 사무실 분위기보다도 더 숨이 찼다. “전에는 …했는데, 지금은 …해요”라는 형식의 서술이 DVD 프라임의 2년 반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문장. 그동안 없던 DVD 시연회가 생겼고, 드물던 서플먼트 한글자막이 일상화됐고, 지나칠 뻔했던 타이틀 리콜이 대규모로 행해졌다. DVD 프라임은 유독 액션이 강한 DVD 소비자들의 불만과 찬사와 제안을 제작사에 전달하고 다시 현실적인 성과로 끌어내는 다리 역할을 해온 것이다.

서플먼트에 한글자막이 생기기까지

박진홍씨는 처음엔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디자인은 타이틀 리뷰를 담당하는 백준오씨가 “이보다 더 구린 디자인이 있었단 말이야”라고 놀랄 정도로 부실했고, 사이트 초점도 값싸게 꾸밀 수 있는 PC 시어터에 맞춰져 있었다. 용산 컴퓨터 상가에 들렀다가 발견한 DVD롬이 그 작은 첫 걸음의 동기. AV는 사치스러운 취미라고만 생각했던 박진홍씨는 PC와 스피커만으로도 눈부시게 선명한 화질과 음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신천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그 신천지에 얼마나 깊게 빠져들었던지 2000년엔 “지나치게 일찍 써서 저주받은 걸작이 됐는데, 시대만 잘 타고났더라도 괜찮았을” 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DVD 프라임 역시 그처럼 순수한 마니아로서의 활동에 불과했다.

그런데 열심히 소문내지 않았는데도 DVD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꾸 사이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DVD 프라임을 검색하면 엉뚱한 사이트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어떻게 박진홍씨에게도 이것은 미스터리다. DVD 커뮤니티가 워낙 희귀하던 시절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만 하는 것이 전부지만, 철통 같은 직장 석유공사를 그만두고 사이트 운영에만 매달리고 있는 그는 이렇게도 설명해보려 한다. “DVD는 돈을 주고 사서 두고두고 소장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마니아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DVD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이트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 적극적인 소비자들과 함께 DVD 프라임은 많은 사건을 겪어왔다. DVD 프라임이 처음 소비자집단으로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가격도 잊을 수 없는 3만7500원짜리 타이틀 <타이타닉>이 출시됐던 2000년이었다. DVD 프라임은 사운드트랙 몇곡을 발췌한 CD와 DVD를 묶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였다는 사실에 분노해 DVD 한장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한 사람은 1천명이 넘었다. 가격을 낮추지는 못했지만, 한번 빌려보고 마는 비디오와 달리 DVD는 소비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DVD 프라임 사상 가장 격정적인 대목이었을 서플먼트의 한글자막 요구는 그런 가능성이 토론과 행동을 거쳐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까다로운 소비자와 영세 DVD 제작자

DVD 프라임 운영진은 제작사들을 인터뷰하다가 방대한 규모와 욕심나는 내용을 가진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 서플먼트가 자막없이 출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까진 당연한 것처럼 한글자막 없는 서플먼트를 참았지만 그런 대작의 서플먼트까지 답답한 가슴 달래가며 볼 수는 없었다. DVD 프라임에 들른 네티즌들은- DVD 프라임은 회원제가 아니다- 제작사와 영상물등급분류위원회에 편지를 보내고 온라인에서 함께 불만을 토로하던 끝에 서플먼트의 한글자막화 작업을 의무화하는 영상물등급분류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내는 데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해냈다. 이 밖에도 DVD 프라임은 한국어 더빙을 할 때 음성채널의 좌우가 뒤바뀐, 그래서 슈렉이 화면 오른쪽에서 말하고 있을 때 목소리는 왼쪽에서 나오는 <슈렉>의 기이한 결점을 적발했고, 톰 행크스가 샤워하고 나오는 순간 그의 음모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이유로 출시가 보류된 <포레스트 검프> 해프닝을 두고 반대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DVD 프라임이라는 추상의 공동체나 소수 운영진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DVD 프라임 운영진은 이런 소비자운동이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서플먼트 한글자막의 경우, 늘어난 제작비 때문에 해외 타이틀에는 있는 서플먼트가 국내에선 아예 삭제된 상태로 출시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수백장 팔리고 사라지는 DVD가 무수히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무작정 제작사만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좁은 DVD 시장에서 고전 중인 제작사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요구를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려 폭력적으로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이나 타이처럼 한국도 모든 DVD에 한국어 더빙 버전을 실어야 한다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타이틀 리뷰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타이틀을 잡티 하나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백준오씨는 “굳이 비난할 것까진 없는 단점도 누군가 게시판에 올리면 지나치게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해외 타이틀을 구해서 사소한 차이까지 체크하는 건 너무 까다롭다”는 어느 DVD 제작사 관계자의 말은 이 사이트의 비판이 가끔 선의로 수용할 수 있는 수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렇게 제작사와 소비자가 충돌할 때 양쪽으로부터 오해받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이트의 공정성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박진홍씨는 그런 고민 때문에 가끔 DVD를 보는 일이 재미없어질 때도 있다고 푸념하지만, 그럼에도 DVD 프라임을 순수하고 오래 가는 사이트로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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