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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5]
2003-01-18

<별> 촬영현장

하얀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춥죠?”

너무 추워서 정말 그렇게 똑같이 물었는지 확신이 안 설 정도지만 돌아온 대답은 정확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추운 거예요.” 거기에 있던 모든 스탭들이 그렇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옷으로 꽁꽁 동여맨 녹음기사의 짧은 답변이다. 이들은 어제도 여기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보이는 별들이지만, 누구나의 것은 아니기에 별은 보는 사람들의 보화”라는 장형익 감독의 변에서 <>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유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알퐁스 도데의 <>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서정성, 사랑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의 시 같은 영화”가 될 거라는 감상적인 문구에까지 이르면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영화 <>을 ‘문학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영우(유오성)는 고아로 자랐으며, 단 하나의 친구인 강아지 알퐁스와 함께 소백산중계소에서 전화국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알퐁스를 매개로 만나게 된 수의사 수연(박진희)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고백하는 대신 별의 신화를 들려주고, 뜨겁게 포옹하는 대신 어깨를 빌려주면서 밤을 지새운 다음날이 바로 오늘의 촬영일정이다. 신93, 산, 언덕-낮. 취재진이 본 촬영현장이 시나리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하얗게 눈 덮인 언덕에 비닐 포대로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는 영우와 수연, 넘어질 듯 불안하게 타고 내려오고 수연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영우.”

지우고 새로 쓸 수 없는 것이 영화이다. 못 쓰게 되면 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은 언제나 찍어놓은 다음이다. 말하자면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이 완성되고 있었다.

원래 영화의 배경인 소백산에 원하는 만큼의 눈이 없어 <>의 촬영팀은 임시로 강원도 횡계까지 촬영지를 옮겨야만 했다. 당연히 무거운 기자재들도 같이 ‘모시고’ 와야만 했다. 또한, 버스 두대가 마주치면 채 지나가기도 힘들어 한 쪽이 비켜서야만 하는 눈길(정말 그랬다)을 달려와, 다시 오르막 언덕까지 눈에 발목을 적시며 힘겹게 밟아 올라와야만 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낮 3시경 20개 정도의 컷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후의 촬영장 역시 정신없이 분주했다.

취재진이 먼저 내려오기까지 <>의 촬영팀은 세개의 오케이 컷을 내기 위해 여러 번의 테이크를 반복했다. 영우와 수연은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컷.” “오케이야 한번 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들. 그리고 힘겹게 다시 오른다. 눈썰매를 타는 영우와 수연을 담기 위해 카메라는 앞서 내려간다. 촬영기사는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카메라를 들고, 그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카메라와 촬영기사를 부축하고, 또 한 사람은 내려가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모포를 끌고. “컷.” 오케이가 나지 않는 한 이들은 다시 눈길을 오른다. 걸음이 엉켜 넘어지는 것은 다반사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제작부는 더욱 바빠진다. “제작부! 제작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나마, 바삐 촬영하고 있는 동안에는 추위를 견딜 수 있다. 겨울이며 산 속이기 때문에 해는 더욱 빨리 질 것이다. 그런데도 해는 덩어리진 구름들 사이로 숨어 가끔씩만 얼굴을 비칠 뿐이다. 자연광으로만 찍기 때문에 모두가 하늘만 바라보며 “빵구 난다, 빵구 났다”를 외치며 대기상태이다. 스탭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는 눈보라에 실린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짧은 문장 하나가 이렇게 완성되고 있었다.글 정한석 mapping@hani.co.kr 사진 조석환 sky0105@lycos.co.kr

유오성과 박진희검정 귀마개와 볼빨간

찡그리지 않고 웃고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인공 영우와 수연을 연기하는 유오성과 박진희는 정말 그렇다. 쉴새없이 털어보지만 유오성과 박진희의 등은 온통 눈투성이다. 검정색 귀마개를 한 채 유오성은 쉬는 틈을 타 곧잘 담배를 피운다. 때로는 촬영장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던 스탭에게 “야, 나 진짜 이런 데 운동화 신고 촬영하러 오는 애 처음 봤어!”라며 농담 반 훈계도 한다. 대기가 길어지자 아예 눈밭에 드러누워버리기까지 한다. 추위를 견디는 그만의 방식은 느긋함인 것처럼 보였다.

박진희는 이미 얼굴이 반쯤 얼었다. 양쪽 볼이 색칠한 것만큼 붉어졌다. 제작부들이 건네주는 작은 스토브 하나를 연신 얼굴에 갖다대보기도 하고, 그러고도 못 견디겠으면, 마치 회의라도 하듯 여러 명에 둘러싸여 바람을 피해보기도 한다.

눈썰매 위에 앉아 또 하염없이 해 나오기만을 기다릴 때, “선배님 이거 조금만 쬐보세요. 따듯해요”. 박진희가 웃으면서 유오성에게 스토브를 건넨다. 멋쩍은 듯 웃으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있게, “괜찮아, 너 해”. “아이, 그래도 한번 해보세요. 정말 따듯해요.” “괜찮아, 나는 말야 원래 열이 많아” 하며 얼굴을 눈 위에 갖다대고 하나도 안 춥다는 듯 장난을 치는 유오성. 그때 들려오는 소리. “빵구 났다, 레디.” 또 한번 내려간다.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야… 와…”.

사진설명

초행이면 곤욕을 치르는 대관령 목장의 까끌한 눈보라에도 장형익 감독은 꿈쩍않는다. 이미 동토의 러시아에서 수년간 육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야 약과죠.˝ 칠십 고령에도 불구하고 눈밭을 헤집는 전조명 촬영감독도 근성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직접 카메라를 들진 않지만, 앵글 하나를 건지기까지 그의 고함은 계속된다. 근사한 ˝별˝하나 따겠다고, 겨울 짧은 하루와 씨름하는 스탭들의 입김은 현장을 덥하는 뜨듯한 온풍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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