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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4]
2003-01-18

<바람난 가족> 촬영현장

바람기, 동장군 눌렀다?

“춥죠?”

“어휴, 그래도 이 영화는 천우신조예요” <후아유>를 찍으며 “안 도와주는” 날씨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명필름의 심보경 프로듀서는 <바람난 가족>만큼 하늘이 도와주는 영화가 없다고 말한다. 내부촬영이 있는 날엔 귀가 떨어져나가게 추웠고, 야외촬영이 있는 날엔 어김없이 날이 풀렸다.

평창동 조용한 주택가, 옆집 사는 아줌마 호정(문소리)이 ‘고삐리’ 지운(봉태규)의 뒤를 자전거로 쫓는 이날 촬영도 며칠 동안의 강추위가 누그러든 비교적 따뜻한 날이었다. 옆집 소년이 자신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 호정이 호기심에 소년을 따르는 이 신을 찍기 위해 실제 문소리는 자전거를 탄 듯한 자세를 취하고 ‘각그랜저’를 개조한 레커차에 허리를 흰 천으로 묶어 고정시킨 신세가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섹시해야 한다”는 감독의 주문은 철회되지 않았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의 임상수 감독의 3번째 작품인 <바람난 가족>은 어린 애인을 둔 변호사 남편 영작(황정민),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김인문)을 뒤로 하고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과 ‘쪼글거리는 가슴’으로나마 사랑을 나누는 시어머니 병한(윤여정), 그리고 이들을 쿨하게 인정하고 자신도 고등학생과 아슬아슬한 연애행각을 벌이는 며느리 호정까지, 세상에 둘도 없을 ‘콩가루집안’을 둘러싼 이야기다. 성대를 빼앗긴 개들이 깽깽거리는 가운데 높은 담과 완벽한 보안시스템으로 무장된 평창동 주택가를 닮은 듯, 안으로만 문제를 숨기고 있는 ‘한국형 가족’의 배를 거침없이 복개하는 이 영화는 섣부르고 도식적인 교훈을 늘어놓진 않지만, 블랙유머와 유분기 없는 태도 속에 헤집혀져 벌건 살점에 조심스럽게 빨간약을 바른다.

<바람난 가족> 현장은 유난히 조용하다. 모락모락 김을 피운 밥차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누군가의 표현대로 “서울역 노숙자들처럼” 벽을 보며 식판을 긁적일 때도 큰소리 한번 나는 경우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촬영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큐”사인 대신 “시∼작”! 이라는 독창적인 명령어 아래 일사분란하게 다시 촬영을 시작한다.

저녁식사 뒤 집안으로 이어지는 촬영 또한 조용하다. 호정이 어둠 속에 지운의 집을 슬쩍 넘겨보며 ‘암고양이’처럼 전화기로 은밀한 수다를 나누는 이 신을 찍기 위해 100평짜리 빌라로 들어온 스탭들은 밤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운의 집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지나가는 차를 막기 위해 몇몇 스탭들은 여전히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인물 좋은 제작부 막내 덕에” 섭외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있는 지운의 집은 사실 모 대학 학장님이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예술문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이란 이유로 흔쾌히 촬영을 허락했다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진 제작사“에 “세 번째 영화다 보니 실력이 늘어서”(웃음) 그 어느 작품보다 누수없이 빨리 찍고 있다는 <바람난 가족>은 전체분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영작 집 촬영이 끝나면 75% 정도 촬영이 끝난다. 이제 겨우 1월, 아직 봄이 오기까진 한참 기다려야겠지만, ‘바람피우기 올림픽’이 있다면 개인전 금·은·동에다 단체전 금메달까지 휩쓸 이 ‘뜨거운’ 영화를 찍고 있는데 사실, 이런 찬바람쯤이야 우스운 일이 아니던가.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

메이킹필름 박찬규메이킹 필름은 바람 속에서도 쉬지 않는다

“내 카메라는 물레방아야! 쉴틈없이 돌아가지!” 촬영장엔 카메라가 돌기 전에 바쁜 사람들이 있고, 도는 동안 바쁜 사람이 있고, 돌고 나서 바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돌기 전이나 도는 중이나 돌고 나서나 계속해서 쉴틈이 없다. 배우, 감독, 스탭 모두가 핸드헬드로 움직이는 35mm 카메라에 신경이 쏠려 있는 촬영현장에서 오히려 이들을 향해 6mm 카메라를 치켜든, 그는 바로 <바람난 가족>의 메이킹필름을 책임진 박찬규씨다. 스탭들의 작은 탄식과 추위를 녹이는 농담, 컷사인 뒤에 숨은 웃음을 놓칠세라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그의 카메라는 매서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리는 레커차 위에서도, 한신을 놓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는 배우와 감독 사이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아휴, 고생하는 분들 많으신데 왜 저를….”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워하는 그를 영작 집 부엌에 앉혀놓고 ‘심문’을 시작한다. 영상학과를 졸업한 박찬규씨는 원래 게임방송, 케이블TV 등 방송일을 해오다 우연히 <마들렌> 메이킹필름의 편집일을 도와주면서 처음으로 영화일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니 <바람난 가족> 메이킹필름은 그의 영화계 데뷔작인 셈. 보통 하루에 2개 이상의 테이프가 채워지는 많은 양의 작업이지만 주말이나 촬영이 없는날 틈틈이 편집을 해놓고 있다. “영화보다 훨씬 재밌는 메이킹필름”이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은 <바람난 가족>의 개봉에 맞추어 오픈할 인터넷 홈페이지나 DVD 서플먼트에 실리게 될 예정이다. 혹 영화감독이 최종목표가 아닐까 물었더니 “그보다는 사람냄새 훈훈하게 풍기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박찬규씨. 조금 녹은 듯한 그의 손이 또 다시 부지런히 카메라를 찾는다.

사진설명

1. 승용차를 개조한 레커차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모니터를 보는 스탭들

2. 감독의 입에서 컷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제작부 스탭 중 하나는 부탄가스를 동력으로 하는 초소형 미니스토브를 문소리 앞으로 대령한다.

3. 한편 촬영장의 귀염둥이 봉태규는 ˝자전거 묘기 보여줄게요˝하며 초반엔 생생하더니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몇번 반복하고 나더니 ˝헥헥‥ 이거 타는 거 자체가 묘기예요˝라며 꽤 지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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