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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좌충우돌 시련기 [1]
2003-01-18

촬영장 시계는 돌아간다

제작부 막내라면 영화팀의 최전방 심부름꾼이다. 스탭들이 타 마실 커피믹스 사놓는 일에서부터 걸레가 필요하다면 걸레, 수건이 필요하다면 수건을 척척 내놓고 세트 벽을 바꿔 낄 때면 한명의 힘쓰는 일꾼으로 봉사하기까지. 제작부 막내의 일은 촬영부나 조명부처럼 뚜렷한 전문 분야가 없는 대신 스탭들의 주문을 제일 밑바닥에서 신속정확하게 들어주는 ‘만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일들은 물 끓이는 통에 하루 네댓번씩 물을 채워넣는 일처럼 안 하면 티나고 해도 별 칭찬받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마치 살림살이를 하는 가정주부의 일처럼. 다른 스탭 중 ‘막내’도 다 그럴 테지만, 제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제작부 막내는 그래서 더욱 힘들다. 프로듀서를 꿈꾸는 <귀여워> 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가며 제작부 막내의 희로애락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 편집자

“재영아, 마스크 없냐?” 세트 작업하던 스탭이 일하다가 갑자기 박재영을 찾는다. 스튜디오 안은 먼지로 자욱하다. “아 네, 지금 사올께요.” 바로 스튜디오 밖으로 뛰어나간다. 제작실장이 그런 그를 불러세우고 어디 가는지 묻는다. “마스크 사러 밖에 약국에 가려구요.” “마스크는 왜 또 마스크가 일회용이야 왜 자꾸 사” “저, 사람들이 잃어버리기도 하고 안 빨고 새거 달라고도 하고 그래서...” 자신은 마스크 하나 써보지 못하고 세트장 먼지를 뚫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박재영이 변명을 도맡는다. 차를 몰고 양수리 중심가 약국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제작실장이다. “마스크 샀어” “아니요, 밖에 약국에 지금 거의 다 왔는데요. ” “그거 사지 마. 매점에서 지금 벌써 사왔으니까.” “아, 매점에 마스크도 파나요 ” 이번엔 또 매점의 상품 목록을 다 꿰지 못하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밖에 나온 것이 책을 잡힌다. “마스크는 됐고, 아침에 뭐 샀어” “어, 생수랑 커피랑...” “종이컵은 종이컵이 얼마 없는데” 아차, 종이컵을 미처 생각 못했다. 전화를 끊고 박재영은 약국으로 가던 차를 돌려 급히 마트로 가 종이컵 한 박스를 사가지고 스튜디오로 돌아온다. 티테이블 앞에서 배우 예지원 씨와 스탭들이 서성이고 있다. 얼른 종이컵을 꺼내놓고 있자니, “저기, 녹차는 없나요” 예지원 씨가 정신없는 박재영씨에게 묻는다. 테이블 바로 아래에 녹차 박스가 있는데... “네, 드릴께요.” 채 숨도 고르지 못한 채 그가 녹차 박스에서 티백을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그를 놓아준다. 박재영은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물고 겨우 숨을 돌린다.

김수현 감독이 양수리 종합촬영소 제5세트에서 촬영 중인 영화, <귀여워>의 제작부 막내인 박재영씨는 올해 스물여섯살로, 충무로 영화 일은 <귀여워>가 처음이다. 명지대학 영상학과 98학번이지만 5년 전에 한 학기만 다니고 군대에 갔다온 뒤 내리 휴학 중. “학교에서는 그리 뭘 배우게 되지 않는 것 같지 않아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하니 <귀여워> 촬영현장은 그의 대안 학교도 되는 셈이다. 박재영씨는 <귀여워>가 청년필름에 있던 지난해 초, <와니와 준하> 마케팅을 한 적 있고 지금은 <귀여워> 제작부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이지연씨(이지연씨는 박재영씨의 형 박수영씨와 한양대 연극영화과 동기다)의 소개로 팀에 합류했다. 상업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단편 <아주 사소한 중독>, DV장편 <동방의 신비한 나라> 등 형인 박수영(28)씨가 연출한 작품을 프로듀서 혹은 공동연출을 맡아 함께 만든 경험이 있어서 “별 거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대뜸 <귀여워>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