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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평론가들이 바라본 한국영화 6편 [3]
2003-01-30

오아시스

<신전영>이 본 <오아시스>살아 있으므로 사랑하였네라

2002년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은 한국영화를 들자면 적어도 두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은 이창동의 〈오아시스〉(綠洲)이고, 다른 한편은 임권택의 〈취화선〉(醉畵仙)이다. 양 대 유럽 영화제에서 그들은 열렬한 박수 세례를 받았다. 이를 지켜본 수많은 중국영화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의 심정은 아마도 매우 복잡할 것이다. 우리는 21세기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영화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추세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고 거울로 삼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현존하는 문제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현재 중국영화의 상황은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2002년 홍콩영화는 유사 이래 가장 깊은 계곡으로 빠져들었고, 흥행수입은 지난해와 비교하여 14% 하락했다. 대만영화는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고, 중국영화는 지난해와 비교하여 활기를 찾았지만, 주목할 만한 새로운 작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영화라는 영역 속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제 영화의 본질적인 면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결코 여기저기 떠벌리지 않는 이 한국 감독, 매년 더해가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항상 진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이창동의 〈오아시스>는 바로 인류 내면의 의사소통에 대한 그의 또 하나의 진심어린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주목할 만한 두편의 한국영화 〈오아시스〉와 〈취화선〉사이에서 우리는 주변부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의 감정,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힘겨운 의사소통의 심리상태를 그린 〈오아시스〉를 선택했다.

<오아시스〉는 발전한 경제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냉혹함과 어두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종두와 공주라는 주류사회로부터 버려진 두 인물을 통해서 그들 내면의 감정을 좇아가고, 후회없이 표출하고 있으며, 대비의 방법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지닌 꺼지지 않는 찬란한 빛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관객은 영화를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신과 타인, 사회에 대한 이해를 살피는 계기를 마련하고, 영화는 또한 영상의 힘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교류와 이해를 추진시키기도 한다. 〈오아시스>가 표현해내는 잔혹한 비판과 냉정한 깨우침은 자칫 관객으로 하여금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 위주의 한국 관객 사이에서도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오아시스>가 추구하는 진실한 감정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관객이 간절히 원하는 감정이라는 점과 연관된다.

상업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영화계는 이창동이라는 이렇게 사고하는 작가에게 꽤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아시스>를 통해 우리는 한국 영화인들의 창작의 자유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좋은 제작환경은 감독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2년 등장한 〈오아시스>는 현재 한국영화가 달성한 높은 예술적 수준을 반영한다(

<신전영> 2003년 2월 상순호, 비아오지앙).발췌·정리 이홍대/ 베이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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