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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평론가들이 바라본 한국영화 6편 [1]
2003-01-30

엽기적인 그녀

그들의 한국영화, 타인의 시선

2002년 한국영화의 대외적인 성과, 그 정점에 <취화선>의 칸영화제 수상과 <오아시스>의 베니스영화제 수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계 속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긴 힘들다. 지난 한해 세계 각지로 날아가 현지 관객과 만난 한국영화들은 과연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까. <씨네21>은 일본 <키네마순보>의 평론가가 바라본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 <뉴욕타임스>의 스타 필자 스티븐 홀든이 분석한 <생활의 발견>,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가 들여다본 <취화선>, 영국의 <타임아웃>이 발견한 <고양이를 부탁해>, 중국의 <신전영>이 선택한 <오아시스>를 소개한다. 이방의 영화를 향한 그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영화의 2002년을 반추해본다. - 편집자

<키네마순보>가 본 <엽기적인 그녀>그 상상력 귀엽고 흉폭하고 황당하다

여자아이처럼 길러진 남자주인공 견우가 어느 날 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엽기적인 그녀’. 그녀는 흉포하고 터프하고 정의파이면서 술을 물처럼 마시는가 하면, 때로는 숙녀로 변신하여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그녀’와 뜻밖의 일로 만나(일단은 뜻밖으로 보인다)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견우가 이야기하는 놀라운 ‘엽기적인 그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평들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기상천외한 말들, 행동, 표정에 집중한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상 최고로 귀엽고 흉폭한 ‘그녀’, 드디어 일본 상륙!”이라는 영화 캐치 카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만한 수작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그런 귀엽고 흉포한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하면서도 그 캐릭터의 매력에 전면적으로는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녀’의 엽기성은 오히려 케이크에 장식된 체리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을 때 손님이 그 케이크를 사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진정한 ‘맛있음’의 비밀은 그 밑에 숨어 있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들어낸 토대(케이크의 본체)에 있다.

‘2년 전, 그녀와 여기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오늘은 그것을 파내기로 한 날.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엽기적인 그녀>는 캡슐이 묻혀 있는 언덕에 선 견우의,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녀’와의 추억담을 열어가는 도입으로는 흔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 순간까지일 뿐. 다음 장면부터 우리는 순식간에 감독 곽재용의 화술에 우롱되고 만다. 그런 독백으로 시작했다면, 다음 장면은 2년(혹은 그 이상)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면, 시점은 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현재’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견우다. 그것은 ‘현재’에서 1년 이상 더 지난 ‘미래’인 것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을 감독은 독백으로도 문자로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야기(화면)의 진짜 ‘현재’라는 것은 마지막에 판명된다. 그리고 영화는 모놀로그(독백)상의 ‘현재’와 진짜 ‘현재’에 1년 이상의 간격을 둔 채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독백하는 화자 본인 또한 자신의 진짜 ‘현재’가 어떤 것인지를 모놀로그상의 ‘현재’ 상황에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시간의 병존은 감독이 관객을 대상으로 단순히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각본가를 지망하는 ‘그녀’가 쓴 근미래의 이야기나 시대극의 스크립트도 영화 속의 영화로 삽입되는데, 그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역시 미래와 현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고 있다는 공통항이 있다. 실제로 그것은 <엽기적인 그녀> 자체를 지탱하는 통주저음(通奏低音)이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곽재용이 아니라 ‘그녀’였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엽기적인 그녀>의 토대가 얼마나 정성들여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영화 속 영화는 일단 각본가로서 ‘그녀’가 가진 절망적인 재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영화는, 기본이 러브코미디인 이 영화(<엽기적인 그녀>)에 대비되는 스펙터클함을 보여주거나 패러디를 가미해 관객을 웃기면서, 동시에 작품 전체의 ‘시간’을 둘러싼 주제, 구조와 일맥상통한다. 거기에 더해서 <엽기적인 그녀>가 영화화된 경위까지를 보여주는 등 이 작품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영화인 것이다.

‘그녀’나 견우의, 끊임없이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수많은 행동들은 누차 반복해서 활용된다. 견우가 미녀를 발견한 순간에 따라가려 하는 도입부의 개그가 그뒤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또 ‘그녀’를 추적을 피한 것도 한순간,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게 된 견우가 순간적으로 응답한 말 ‘이 전화는 현재 사용되지 않습니다’라는 대사나, 처음으로 ‘그녀’가 ‘자기!’라고 속삭이게 되는 순간부터 견우의 운명이 엉망진창되어버리는 개그도, 그 장면 한순간만을 위한 웃음을 노린 것으로 보이고, 그뒤 다시 다른 문맥에서 재이용되고 있다.

이렇듯 <엽기적인 그녀>는 정밀함을 의심하게 만들면서도 결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처음에 견우가 ‘그녀’와 함께 지낸 밤, 그가 ‘그녀’의 휴대전화를 받게 된 뒤 경찰이 돌입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음날 어떻게 ‘그녀’는 견우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타임캡슐을 묻기 직전에 들은 ‘그녀’의 중요한 고백에, 건너편 산에 있는 견우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나하나 묘사와 설명을 하고 싶을 것 같은 이 사항들에 대해 이 영화는 철저하게 표현을 자제하면서, 사태를 미래로 끌고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에 필적할 정도로 관객의 상상력이 시험되는 영화다. 실제로 <봄날은 간다>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본 뒤 하루이틀이 흘러가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이 허락하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시공간이 펼쳐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에 서서히 감동이 밀려오게 된다.

이렇듯 <엽기적인 그녀>는 금욕과 정밀함을 교묘히 교차시키면서도, 각각의 장면 처리는 결코 심각하게 하지 않았다. 마치 <시무라 겐의 바보대장님>(1998년 후지TV에서 방영한 코믹 드라마 시리즈- 역자)(두 작품 사이에는 엽기적인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행위로 웃음을 끌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처럼 별 생각없이 방심하게 하면서 음악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는 것도 훌륭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에 판명되는, 이 이야기를 움직여온 진짜 주인공에 관한 경악할 만한 사실! ‘엽기적’이라는 단어는 ‘그녀’보다 오히려 이 영화의 감독 곽재용에게 바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키네마순보> 월 순호 테루오카 소조)번역 강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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