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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1]
2003-02-04

어느 영화평론가의 고백,영리한 감독 장이모와 <영웅>이 불쾌한 까닭은?

<영웅>은 거대하다. 그뿐이다. 중국 대륙이 거대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너머가 보이지 않는 대하(大河)가 있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도 있고, 마오쩌둥이 누구인지 모르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오지도 있다. 우주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지구상의 건축물 만리장성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진시황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영웅은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빤한 방식으로,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기예를 겨루는 검무장면은 <와호장룡>에서, 무명과 영정의 진술에 따라 바뀌는 이야기의 형식은 <라쇼몽>이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진나라 군대가 방패로 진지를 구축하고 화살을 날리는 장면은 <글라디에이터>에서 로마군의 전투를 연상시킨다. <영웅>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장이모만의 것은 없다. 아니 하나 있다. 굳이 진나라 군대를 검은색 일색으로 처리하고, 상황에 따라 인물과 배경 색깔을 바꿔버리는 것. 색깔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또 뒤흔들어버리는 것.

그 감독, 불쾌하다

느슨하게 인용하는 정도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웅>을 보고 불쾌해진 이유는 <와호장룡>과는 다른 ‘북방의 무협’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때 파검은 영정의 처소까지 밀고들어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파검은 영정을 죽이지 않는다. 왜 영정을 죽이지 않았는지, 비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무명에게 파검은 모래 위에 글을 써서 남겨준다. 후일 영정에게 들려주는 그 글자는 바로 ‘천하’다. 중국 대륙은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고, 끊임없는 소국들의 전쟁으로 백성은 고통받고 있다. 그렇다면 영정이 모든 나라를 무력으로 통일하여 하나의 ‘평안한’ 국가를 이룬다면 백성들은 더욱 평화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말이다.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시나리오까지 쓴 장이모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패권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이 세계를 통일하여 분쟁과 테러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세계가 하나의 정부 아래 통일된다면,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단순하게 역사를 보자.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나라는 진시황의 사후 바로 허물어졌다. 물론 진이 있었기에 수와 당이 있었고 거대한 통일국가가 가능했지만, 그것이 백성의 행복과 평화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하’라는 말 한마디에 진시황을 이해해주는 무명이나, 그런 파검의 이야기를 듣고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적진에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영정의 모습을 보면 지독하게 씁쓸하다. <영웅>에는 힘의 논리와 승자의 원칙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노골적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장이모의 오만함이 깔려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장이모는 중국 정부가 자랑하는 ‘공식’ 감독이다. 악독하게 말하자면, 관변 감독인 것이다.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칸 심사위원 대상 등 수많은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한때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이기도 했던 장이모는 어떻게 자금성 안으로 무사히 연착륙을 하게 된 것일까. 아니 처음부터 장이모의 지향은 분명했다, 고 생각한다. 장이모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대중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영웅>은 장이모의 재능이 오만으로 비약하며 자멸에 빠진 작품이지만, 장이모의 과거는 오로지 영광의 길이었다. 자유자재로 자신의 영화를 조작하며 서구의 비평가와 고급 관객을 장악하고, 이어서 중국의 대중을 눈물로 사로잡은 ‘위대한’ 감독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장이모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위대한 사기꾼. 데뷔작 <붉은 수수밭>을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장이모는 계륵이었다. 씹어 삼키기는 역겹고, 내쳐버리는가 싶으면 걸작을 들고 나타나서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이 글은 내가 장이모의 영화를 보며 가졌던 생각들이다. 다행히도 장이모는 <영웅>으로 자신의 본색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만약 <영웅>이 아니었다면, 특히 장이모의 초기작들에 대해서는 논문 두권 분량 이상의 분석적 비판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장이모의 초기작을 보는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아주 단순하고 거칠게 내지른 장이모의 영화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다. 변명이지만, 그것이 장이모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글쓰기인 것 같다.

개인적인 혐오 혹은 불신

유이가 일본군에게 내던지는, 불을 붙인 커다란 술병처럼 <붉은 수수밭>은 강렬한 충격을 안겨줬다.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 장이모의 초기작을 보고 나면 늘 붉은색의 물감통에 들어갔다 나온, 붉은색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붉은 폭포수 아래에 있다가 차츰 늪이 되어 빠져들고, 그러다간 어떻게든 기어나오고 싶어진다. 좋았지만, 자극적이다. 붉은색은 사람의 심장을 물들게 하기에는 딱 좋지만, 쉴새없이 펌프질을 하지 않으면 굳어버린다. 딱딱하게, 검은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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