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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5]
2003-02-05

엄지손가락은 어디로?

아시아 영화의 약진타이 영화 <친애하는 당신>에 열광

서구 평론가들이 아시아영화에 깊이 매혹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들이 선정한 2002년의 베스트영화 목록을 살펴보면,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영화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키아로스타미의 <텐>이나 차이 밍량의 <거기 지금 몇시니>가 자주 언급된 것은 서구에서 그들의 지명도로 볼 때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애니메이션(그것도 셀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지아장커의 저예산 독립영화 <임소요>가 심심찮게 상위에 랭크됐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특히 <임소요>는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미개봉 영화 베스트 10에서 1위에 올라, 서구 평단에 지아장커의 지지 기반이 확고해졌음을 방증해 보였다.

무엇보다 놀랍고 반가운 사건은 타이 출신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화려한 등장이다. 200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 첫선을 보인 그의 신작 <친애하는 당신>은 이후 세계 각지의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타이에 불법 체류 중인 미얀마 남자, 그를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를 도와주는 중년 여성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섬세하고 진중한 동시에 파격적이다.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 뜨는 오프닝 크레딧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두편의 영화가 맞붙어 있는 듯한 구성의 이 영화는 감독의 표현대로 “작은 순간의 영화이자 풍경의 영화”인 탓에 관객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듯 도저한 롱테이크를 선보인다. <친애하는 당신>은 특히 프랑스 평론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데, 일례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 16명 중에서 10명의 선택을 얻어, 2002년의 베스트영화 종합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개빈 스미스, 마놀라 다지스 등 미국의 스타 평론가들도 <친애하는 당신>을 선택하며, 위라세타쿤을 ‘미래의 거장’으로 점찍었다.

한국영화의 선전은 여전하다. <취화선>과 <오아시스>가 나란히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눈길을 모은 2002년, 서구 평론가들은 ‘그 이상’의 한국영화에 관심과 호감을 표명했다. 한국영화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샤를 테송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그의 ‘베스트 10’에 포함시켰다. 같은 잡지에 기고하는 평론가 뱅상 말로스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을 역시 10위 안에 리스트업시켰다. <필름 코멘트>가 취합한 평론가들의 선택에서도 한국영화가 눈에 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평론가 폴 아서는 무순으로 10편의 베스트영화를 선정했는데, 여기에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포함돼 있다. 또한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던 박기용 감독의 디지털영화 <낙타(들)>은, 타이에서 활동 중인 평론가 척 스티븐스의 선택을 받았다.

낯선 걸작들앗! 이건 무슨 영화지?

해외 평론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2002년의 영화들 대부분은 국내에 개봉됐거나 3대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적어도 제목은 익숙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다수 평론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작품들이 더러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작품은 북미 에스키모영화 <패스트 러너>(Atanarjuat)다. 선과 악, 사랑과 질투, 원한과 복수에 관한 전설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이뉴잇(북미, 그린란드 에스키모) 최초의 영화라는 의미도 크거니와 참신하고 강렬한 영상에 깊고 섬세한 감성을 아우른 솜씨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Adaptation)도 이미 미국의 각종 비평가상에서 언급되고 또 수상한 바 있지만, 국내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작품. <어댑테이션>은 <존 말코비치 되기>에 이은 스파이크 존즈와 찰리 카우프만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희귀한 난을 배양하고 거래하는 남자, 그의 삶을 책으로 쓴 여작가, 그 책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려는 작가(이름하여, 찰리 카우프만이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그린, 형이상학적인 소극으로, 대담한 구성과 재기가 돋보인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베스트영화 리스트에 자주 보이는 또 다른 영화 <시간의 고용자>(Time Out)는 사실, 새로운 작품이 아니다. 2001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돼 오늘의 사자상을 받았고, 같은 해 광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새삼 2002년의 영화로 추어올려진 것은, 지난해 미국에서 상영돼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노동현장과 노동자에 관한 남다른 관심으로 ‘제2의 켄 로치’라 불리는 프랑스 출신 로랑 캉테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직장에 해고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살아가는 한 가장의 비애를 통해 사회와 가정 속에서 개인이 겪는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