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2]
문석 2003-02-06

˝늬들이 한국 영화사를 알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춘향전>(1935)의 야심은 ‘유성’에만 있지 않았다. 이필우는 1931년 디스크에 사운드를 따로 녹음하는 방식의 유성영화가 수입되자 4년 연구 끝에 필름에 직접 소리를 입히는 방식의 P.K.R 발성장치를 만들어낸다. 형인 이명우가 연출과 촬영을 맡고, 이필우가 조명과 녹음을 맡은 <춘향전>은 애초 동시녹음까지 욕심냈던 것. 하지만 현장은 머릿속의 구상을 헤집어놓았다. 처음 써보는 시스템이라 작동이 서툴렀고, 새벽 두부장수 소리부터 자동차 소리까지 덤벼드는 노이즈를 어찌할 수 없었다. 후시녹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상과정까지 거치고 나니 버려야 할 필름만 4만척. <농부가>를 집어넣으려 하였으나 충분한 경비를 얻지 못해 포기한 뒤 양악으로 대체한 것은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었다. <춘향전>이 놓친 최초의 동시녹음영화의 타이틀은 이듬해 <홍길동전>(1936)이 가져갔다.

최후의 무성영화

1936년 안종화의 <역습>. 1930년대 이후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무성영화는 타이에서 1960년대까지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돌비사운드영화

1985년 <돌아이>. 1971년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최초의 촬영감독

이필우(李弼雨). 1897년에 태어난 그는 촬영뿐 아니라 현상, 편집, 녹음에서도 활약하며 초기 한국영화 기술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최초의 조명기사

김성춘(金聖春). 1935년 일본 신흥키네마에서 조명 연수를 하고 조명기재 갖고 돌아와 <살수차>(1935)에서 80kW 조명을 선보였다.

최초의 달리 촬영

1931년 이구영 감독의 <수일과 순애>에서 이필우의 동생인 촬영기사 이명우가 현장에 레일을 깔고 촬영했다. 장편영화에서 달리가 처음 사용된 것은 러시아 감독 에브게니 바우어의 데뷔작 <The Twilight of a Woman’s Soul>(1913)의 트래킹 쇼트.

최초의 컬러영화

홍성기 감독의 <여성일기>(1949)로 16mm 필름을 사용했다. 35mm 영화로는 <선화공주>(1957)가 최초.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

신동헌 감독이 연출한 <홍길동>(1967). 아우인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제작비 5400만원과 하루 400명씩 동원해 <홍길동>을 제작했다. 이때 그린 그림은 가로길이로 3759km에 이르렀고, 장수도 12만5천장에 달했다. 신동헌 감독은 60년 ‘야야야, 차차차’로 유명한 진로 소주의 애니메이션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1958년 이강천 감독의 <생명>. 1953년 할리우드 그로맨스 차이니스 씨어터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던 <옷>(The Robe). 시네마스코프로는 최초지만, 첫 와이드 스크린 장편영화로는 이미 1929년에 70mm로 찍은 <폭스 무비톤 폴리스>(Fox Movietone Follies)가 있었다.

최고의 1인다역

1926년 <멍텅구리>에서 이필우는 제작, 각색, 감독, 촬영, 편집, 현상과 기획까지 맡아 1인7역을 소화했다.

첫 입체영화

1968년 장석준 감독의 <천하장사 임꺽정>.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