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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8]
문석 2003-02-06

˝늬들이 한국 영화사를 알아?˝

Record Maker #4 : 김수용 최다 연출작, 가장 오랜만의 컴백, 가장 오랜기간 활동

109. 이쯤되면 백팔번뇌도 저리 가라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한 김수용 감독. 1999년 <침향>까지 40여년 동안 109편의 작품을 낳았다. 1967년에는 <어느 여배우의 고백> <길잃은 철새> <애인> <산불> <빙점> <고발> <안개> <사격장의 아이들> <까치소리> <만선> 등 무려 10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빚었다기보다 토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 <중광의 허튼소리>(1986)가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난도질당하자 메가폰을 던지고 10년 넘게 공백기를 가졌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연출 편수다. 신기한 것은 태작들 중에 수작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1967년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빨리 촬영이 완료된다는 건 캐스트의 일치와 진행상 차질없는 완전한 계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만큼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편 그는 86년 <…허튼소리> 이후 13년만에 <침향>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가장 오랜만에 컴백한 감독이며, 데뷔 이후 41년간 감독생활을 하고 있는 최장수 감독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감독은 스페인의 헤수스 프랑코. 섹스와 피의 향연을 앞세워 1950년대 후반부터 무려 200편 이상의 저예산영화를 만들어왔고, 그중 100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비디오로도 출시돼 있다. 가장 오래동안 활동한 감독은 1908년생으로 현존 최고령이기도 한 포르투갈의 거장 마뇰 드 올리베이라. 1929년 자신의 고향 오포르토의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두루 강에 대한 습작>으로 데뷔한 뒤, 2001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나 집으로 돌아가리라>까지 꾸준히 영화를 찍어 왔다.

최연소 데뷔 감독 최야성

<검은도시>(1990)로 데뷔한 최야성 감독. 1969년생이니 21살에 ‘입봉’한 셈이다.

직접 제작, 각본, 출연까지 겸한 <천재 강아지 렉스>(1973)로 13살의 나이에 데뷔한 네델란드의 신동 시드니 링.

최고령 데뷔 감독 방규식

<돌아이4-둔버기>(1988)로 데뷔한 방규식 감독. 60년대부터 제작부에서 활약했고 기획자, 제작자로 이름을 알렸던 방 감독은 <돌아이> 시리즈의 4편에서 이두용 감독 대신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53살이었다. 인도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알려진 막불 피다 후세인. 인도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뮤지컬 <가자 가미니>(2001)로 85살에 데뷔했다.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인 장편 상업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역대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한국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이다. 모두 97억원의 순제작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정작 화면 안에서는 그 스케일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아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엄청난 분량의 컴퓨터그래픽, 초대 규모의 스탭, 3번에 걸친 홍콩 무술스탭의 교체 등에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다. <성냥팔이…>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최대 제작비 부문에서 단연 정상에 머물 것이 틀림없지만, 물가기준 등으로 따질 때 이 영화에 도전장을 내미는 영화가 딱 40년 전에 있었으니, 그것은 권영순 감독의 1962년작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이다. 정종화씨는 3500만원이 들었던 이 영화가 규모에서나 ‘체감비용’면에서 <성냥팔이…>를 훌쩍 앞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목 그대로 진시황 시절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탓에 스케일이 큰 데다 김진규, 김지미, 김승호, 신영균, 박노식, 허장강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니 개런티 또한 만만치 않았을 터. 시흥에서 안양까지 이어지는 야산에 아무리 세트라 해도 만리장성까지 둘러쳤으니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촬영 도중인 초여름에 몰아닥친 태풍으로 만리장성 세트가 다 날아가버렸고, 이를 다시 제작한 탓에 제작비는 껑충 뛰어올랐다. 게다가 흥행마저 기대 이하여서 제 아무리 의욕 넘치고 돈 많았다는 제작사 한양영화공사도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정종화씨는 이 작품에 대해 “전쟁물, 사극을 권장했던 박정희 정권과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과잉된 의욕이 결합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혹시 성냥팔이 소녀는 마지막 성냥불 안에서 천하를 호령하려다 스러진 진시황의 꿈을 못 봤던 게 아닐까.

세계적으로는 순제작비 2억달러로, 1억7200만달러로 가장 비싸게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졌던 <워터월드>(1995)를 능가한 <타이타닉>(1997). <미션 임파서블3>가 소문대로 2억2500만달러를 상회한다면, 기록은 다시 바뀔 예정이다

Record Maker #5. <무사> 가장 먼거리 이동하며 촬영, 가장 많은 스탭, 가장 많은 컵라면과 커피믹스 소비

대작 <무사>는 기록의 산실이었다. 우선,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하다보니 이동거리면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사> 제작팀은 촬영 5개월 동안 옮겨다닌 거리보다는 이동에 소요된 시간으로 계산하는 데 익숙한데, 베이징에서 중웨이로 가는 27시간을 포함해 총 307시간30분을 쏟았다. 날짜로 환산하면 12일 8시간 정도였다. 무사가 보유함직한 또 하나의 기록은 가장 많은 스탭이 동원됐다는 것. 한국 스탭과 중국 스탭이 섞여 움직인 탓에 평상시 200여명의 스탭이 대기했고, 가장 많을 때는 300명까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중에는 마부 50명도 포함된다. 영화촬영장의 ‘필수기호품’인 커피믹스와 컵라면 소비량에서도 기록적이었다. 200명 스탭 중 절반이 하루 한끼 정도를 컵라면으로 먹었으니 100x149일=14900개로 20개 들이 700박스인 셈. 커피믹스 또한 하루 30개 들이 10박스 정도가 소요돼 89만4천잔의 커피가 소비됐다.

촬영기간이 가장 짧은 영화 <실제상황>(2000)

200분 만에 장편영화 1편의 촬영이 끝나다니. 믿기는가. 하지만 ‘실제상황’이다. 충무로에서 여느 감독보다 빨리 찍기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은 서울 대학로 반경 2km를 설정해두고 35mm 카메라 10대와 2대의 6mm 카메라로 3시간여 만에 촬영을 모두 마쳤다. 원계획은 러닝타임과 똑같은 100분이었으나 실제는 2시간 정도 늦춰졌다. 하지만 붓 가는 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일. 김기덕 감독을 비롯한 스탭과 배우들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달 넘게 동선을 체크하는 등 사전 리허설을 가졌다. 각 장면을 책임지는 조감독 또한 11명으로 이 역시 최고일 듯. 1968년 김희갑, 서영춘 주연의 <동문서답>. 심우섭 감독은 이 영화의 촬영을 일주일 만에 끝냈다.

<실제상황>보다 짧진 않지만, 의뢰받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남은 필름으로 하루 만에 촬영한 폴 베치알리의 <Trou de Me(오른쪽 삐침)moire>(1985). 지난해 레스페스트에서 소개된 롭 닐슨의 <히트 앤 선라이트>(1987)는 60시간,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의 컬트 <리틀 숍 오브 호러>(1960)는 이틀 낮 삼일 밤 동안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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