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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영화제 개막리포트 [1]
최수임 2003-02-12

`관용`을 향하여,그리고 흥행도 좀 향하여

`관용`을 향하여,그리고 흥행도 좀 향하여

유난히 춥고 음습한 겨울날씨를 동정받을 때마다, 독일 사람들이 잘하는 말이 있다. “그 대신 우리한테는 따뜻한 난방기가 있잖아요.” 심리상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우울한 기미가 가득한 바깥의 추운 날씨에도, 난방이 잘된 집안에 들어와 ‘하이중’(Heizung)이라고 부르는, 라디에이터 난방기의 온기를 쬐며 창 밖을 내다보면서, 자기들만의 은밀한 위로감을 맛본다는 이야기다.

베를린영화제가 2월에 열리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관람이 베를린 사람들에게 ‘실내오락’으로서 솔깃할 뿐더러 절실한 것이리라는 계산 내지 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부산영화제를 가본 사람들이라면 깜짝 놀랄 법하게, 베를린영화제가 거리에서는 거의 축제 분위기를 내뿜지 않는 것도 따뜻한 ‘실내’로 파묻히고 싶어하는 독일 사람들 특유의 겨울심리 탓일지 모른다.

‘관용을 향하여’(towards tolerance)

2월6일 제53회 베를린영화제가 개막했다. 그에 하루 앞서 베를린의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는 어두운 뉴스가 아침 TV를 장식한 2월5일,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 옆 쇼핑 아케이드에 있는 영화제 예매소에는 오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영화제라면 젊은 사람들이 관객의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개막 전부터 표를 예매하는 베를린 사람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했다. 슈퍼마켓에서 화분을 사고 (마치 화분을 사듯) 영화표를 사러 온 초로의 주부가 있는가 하면, 한 시간이 족히 되게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아예 간이의자까지 준비해와 앉은 아주머니, 신문을 읽고 있는 정장 차림의 남성,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온 커플인 듯한 두 젊은 남자, 커다란 검은 개와 동행한 청년, 동양권의 여대생, 휠체어를 탄 할머니 등등. 이들이 다같이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본다면 각각의 감상이 얼마나 다를까 싶은, 너무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만이 혹은 우리만이 ‘영화마니아’라는 요란한 분위기 대신, 이들에게는 젊거나 늙었거나 마니아거나 아니거나, 건강하거나 아니거나,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베를린영화제가 올해 처음으로 폐막식을 하루 앞당기면서 영화제 마지막 날을 영화제 주요 상영작을 앙코르 상영하는 ‘베를리날레 키노탁’으로 삼은 것도 이런 견실한 베를린 시민 관객에 대한 서비스일 것. 긴 시간 기다리면서도 아무런 불만스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이러한 그들의 태도에서 자연스레 ‘관용을 향하여’(towards tolerance)라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모토가 떠올랐다.

“2002년 베를린영화제 때 우리는 ‘다양성의 수용’(accept diversity)이라는 모토하에 9·11 사건 이후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했다. 1년이 지났지만 세계의 정황은 아직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라고,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말했다. 다양성의 수용이나 관용을 향하여나 별로 다를 바 없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가 하는 말, “그래서 올해 다시”라는 말은 그 자체로 ‘톨러런스’의 정신을 보여준다. 디이터 코슬릭이 소개하는, 올해의 모토를 대표하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아프간 소년이 난민 캠프를 탈출하여 런던으로 가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린 마이클 윈터보텀의 극영화 <이 세상에서>(In this world·영국), 독일과 폴란드,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사는 국경지방 사람들의 이야기인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의 <불빛>(Lichter·독일), 어느 파렴치한 피난민 밀수업자의 이야기인 다미얀 코졸의 <여분>(Rezervni Deli·슬로베니아) 등. 코슬릭은, “그러나 영화제인 만큼 당연히 엔터테인먼트도 필요하다”면서 <시카고>를 개막작으로, <갱스 오브 뉴욕>을 폐막작으로 트는 이유를 마치 변명처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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