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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감독` 타이틀 얻은 곽재용 감독의 어제와 오늘 [2]

그러므로, <클래식>의 지혜가 어머니 주희의 남자친구 준하의 편지를 읽음으로써,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지혜와 지수의 사랑은 되살아난다(참고로 <비오는 날의 수채화> 1, 2편과 <클래식>에서의 딸의 이름은 모두 ‘지혜’이다. “원래 딸아이 이름을 지혜라고 지으려고 했지만, 한자가 좋지 않다고 해서 ‘지수’로 바꿨다.” 그리고, 곽재용 감독이 진짜 엽기녀를 창조하기 위해 요즘 세대인 딸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힌트를 얻은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지혜의 목소리,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생량한 바람이 가을을 예고해줍니다. 그 바람을 편지지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생량한?… 바람을 편지지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유치해!… 음…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마치 조소처럼, 하지만 풀리지 않을 주문처럼 영화의 초입부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멜로의 감정을 촌스럽다고, 또는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들에 대해 지혜의 입을 통해 되묻는 질문이라고도 했다.

"장면마다의 장르에 충실한 것"

“그 당시에 <비오는 날의 수채화>도 지금 이 영화 <클래식>하고 반응이 비슷했다. 나는 그때 영화계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했었다. 그 영화가 복합장르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멜로드라마를 한 호흡으로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장면마다의 장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그 장르에 충실하는 것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서부터 이어져온 멜로에 대한 생각들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또한,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녀가 그려내는 상상의 영화들이 곽재용 감독이 말하는 그때마다의 장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예가 된다. 액션이 주가 될 때는 그 스펙터클에, 코미디가 주가 될 때는 그 강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엔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 안 좋은 쪽으로 콘티를 막 고쳐가며 찍었고”, 그래서 “더 좋아지지 않는 한 고치지 않는다”는 현재의 원칙을 갖게 해준 “최대의 실패작”, <가을 여행>도 아마 그 점에서는 일종의 훌륭한 시행착오였던 셈이다. 장면마다 장르화됨으로써 느슨해지는 총체적인 리얼리티의 허실에 대해 물었을 때는 오히려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 현실에서 약간은 유리되어야 한다”고 받아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경험에 바탕한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클래식>에서 태수가 준하를 믿고 눈감고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곽재용 감독의 중학교 시절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놓았다. “태수가 믿고 준하에게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했는데, 오히려 준하가 주희를 사귀는 것”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곽재용 감독은 자신있게 말한다. “내 영화를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세번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한번 볼 때는 잘 모르는 걸 숨겨놓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 따르면 <엽기적인 그녀>의 관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그 안에서 UFO를 본 관객과 UFO를 보지 못한 관객.” 또, <클래식>의 후반부에서 “상민 역의 조인성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재미없어지는 것이 영화”이므로, 곽재용 감독에게 숨겨놓은 것들의 의미란 바로 “쌓이는 감정”에의 헌신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 직조의 마술들이 여전히 젊은 세대 안에 같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충고를 하는 것은 어른 티를 내는 것이라 싫다”는 말은 왜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언제나 20대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실마리이다. 언제나 시간은 흐르지만, 그 흐른 시간만큼 회귀도 반복된다. ‘성장하지 않는 성장영화’인 듯.

연장전 No 현재진행형 Yes

거의 우격다짐식으로 곽재용 감독에게 스스로 전반전과 후반전, 연장전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서 <영웅의 이름으로> 전까지, <영웅의 이름으로>에서 <엽기적인 그녀> 전까지, <엽기적인 그녀> 이후, 라고 나누며 난처해했다. <영웅의 이름으로>가 획이 되는 것을 보면 “원래 개인적으로는 제작비 많이 들어가는 영화 좋아한다. (웃음) 기회가 되면 액션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언젠가 시도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준비 중인 영화들은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클래식과 연장선상이 될 것 같다”고 못을 박았다. 클래식과 연장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이전의 영화들의 중심적인 모티브와 형식을 가져가겠다는 말일 것이다. 연장전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연장전이라… 앞으로 승부차기 할 일도 많을 텐데, 뭐…”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끝을 낸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다시 한번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곽재용 감독은 역시 연장전에 접어든 것이다. 글 정한석 mapping@hani.co.kr 사진 정진환 jhjung@hani.co.kr 디자인 한정연 han7329@hani.co.kr

곽재용 감독의 영화 속 인용과 오마주

빌려온 이미지, 되살린 이미지

곽재용 감독은 자칭, 타칭 한국의 영화광 1세대에 속하며, 시네필적인 감수성으로 한 시절을 보내온 사람이다. 잉마르 베리만의 구원의 의미에 감명받고, 죄의식을 말하는 히치콕의 영화적 형식에서 많은 것을 배워온 사람이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시네필들이 그렇듯이, 그의 영화 속에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의 흔적이 기입되어 들어가는 순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주변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영화의 장면을 가져온다기보다, 현장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영화들을 빗대어 종종 설명한다”고 하면서 완곡하게 인용과 참조의 지나친 위험성을 벗어났다.

하지만, 영화 <클래식>에서도 ‘연상’은 있었다. 딸 지혜가 어머니 주희의 편지상자를 열어보는 장면에서 곽재용 감독의 머리 속을 파고 든 것은 베리만의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에서의 그 의자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곽재용 감독은 “그 의자가 마치 어떤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혜가 열어보는 편지상자 역시 어떻게 하면 좀더 그 사랑의 역사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많은 부분 신경 썼다. 되돌아가,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에게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줄 앤 짐>에서의 줄의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또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1, 2편에 출연한 배우 이경영이 맡은 역의 이름, ‘송천호’. 곽재용 감독은 개인적으로 멜로뿐 아니라 액션영화도 좋아한다. 특히나, 오우삼 감독은 존경에 마지않는다. 오우삼 감독의 페르소나 ‘송자호’에 대한 오마주가 ‘송천호’로 옮겨오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혹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2>의 마지막 장면. 곽재용 감독은 그의 영화 속에서 무서운 아버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이 굉장히 많은 탓”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런 죄의식으로부터 많이 벗어났지만”, 그때만 해도 “아버지를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길인 것 같았고, 더욱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2>에서는 그 죄의식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죄의식의 강박은 히치콕의 영화를 불러들였다. 지수와 지혜가 자살을 한 뒤, 천호는 혼자 남아 창고의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은 바로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에서 앤서니 퍼킨스가 앉아 있는 모습과 똑같이 설정한 것이라고 곽재용 감독은 말했다. 아마도 곽재용 감독이 일러주지 않은 연상, 또는 인용들도 많을 것이다. 전에도, 또는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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