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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3]

‘…생활사투리’는 어느 날 떡하니 박준형의 머릿속에서 잉태된 ‘순수혈통’의 코너는 아니다. 이런 유의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응용한 사투리 교육코너는 SBS 창사초기 코미디나 강원방송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보거나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개그콘서트>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코너들은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19일 보수작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봉숭아학당’이다. 이미 이창훈의 맹구 시절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 내에서도 수많은 멤버이동을 보이며 장수하고 있다. 한참 인기를 끌었던 박성호의 ‘뮤직토크’만 해도 “냉장고를 녹이는 뜨~거운 남자” 박세민이 80년대 코미디에서 써먹던 ‘팝개그’의 재탕이었고, 난쟁이처럼 무릎으로 발을 대신하는 ‘몽당친구들’은 이미 <개그콘서트> 내에서 이병진이 선보였던 코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김영식 PD는 “미묘한 데커레이션이 불러일으키는 큰 차이”라고 설명한다. “작은 변화만으로도 시청자들은 다르게 느낀다. 옛날보다 재미없으면 아류라는 소리를 듣는 거고 훨씬 재밌으면 그걸 딛고 일어서는 거다. 특별히 ‘오리지널리티’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쩌면 <개그콘서트>의 중심에 81년 MBC <청춘 만세> 이후 KBS <유머 일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에서 맹할약해왔던 장덕균이 메인작가로 포진해 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땅에 개그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유행코너를 만들어왔던 이에게 더이상 ‘진짜’에 대한 강박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이런 유연성과 열린 태도는 <개그콘서트>의 소재와 주제 형식의 범위를 “KBS방송 규정이 허락하는 한” 못할 것 없이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건 개그다. 그리고 전투다. 그리고 생존이다. <개그콘서트>를 이끌어온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이번주에 웃기지 못하면 다음주에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요, 긴장이다. 이미 코너를 잡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아직 코너를 따내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 처절한 서바이벌의 현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약간은 가학적인 즐거움을 얻는다.

강섬범이 인기 개그맨의 권좌에 오르기까지 대한민국 철도역을 다 외우던 ‘수다맨’이나 박자를 놓칠세라, 핏대를 세우고 열중해서 웅변하고 있는 ‘연변 총각’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맞습니다 맞구요”라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성대모사로 몇주 만에 급부상한 ‘노통장’ 김상태 역시 공채 14기로 입사해 <개그콘서트>에 합류했지만 4년 동안 녹화 전 객석 분위기를 잡는 ‘바람잡이’의 시절을 거쳐야 했고, ‘어차피 당선자 성대모사는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으로 대선 과정부터 테이프를 체크하며 노 당선자 성대모사를 준비해온 것이다. 또한 개편과 함께 폐지되긴 했지만 두세명이 번갈아가며 노래의 한자한자를 떨어뜨려 불러댔던 ‘지그재그송’ 같은 코너는 보고있자면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넘어 안쓰럽고 아슬아슬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무대에서 안쓰러운 것은 양반이다.

새 코너를 준비해서 가지고 와서 보자는 말이 떨어지면 개그맨들은 나름대로 팀을 결성해서 개그를 만들고 전체 리허설을 할 때 선을 보인다. 물론 ‘생활사투리’의 경우처럼 처음 보자마자 모두들 재밌겠다, 해서 그날 바로 녹화를 뜬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리허설에서 버려지는 것이 많고 1, 2주 나가고 없어진 것도 많다.

재미없다, 약하다 할 때는 버리고 다시 써라. 좀 여지가 있으면 다음주에 다시 준비해와라. 녹화를 떠보고 판단해보자는 식이다. 공채 개그맨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개그콘서트>는 다른 방송사에서 온 사람이든, 학교에서 바로 온 사람이든 간에 신선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다면 공채 여부에 상관없이 출연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각 코너가 서로 넘나들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분명한 경쟁 또한 존재한다. 물론 언성을 높이는 건 아니지만 A라는 코너에서 B코너의 유머를 따오려고 할 때 ‘그건 우리 건데…’라며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기도 한다. 매일 4, 5시간을 모여서 연습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도 모자라 그 시간 이후에 밤에 모여서 따로 연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너를 가지고 왔는데 계속 ‘까이고’ 반응이 안 좋고, 어쩌다 녹화는 떴는데 방송 안 나가고, 그런 걸 몇번 겪다보면 개그맨을 때려치우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가 며칠 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중압감을 가지고 웃긴다. 언제나 밀려날 수 있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서다. 냉정하고, 비정하다. <개그콘서트>는 그래서 긴장되고, 그래서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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