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2]

<개그콘서트>는 여러모로 80년대 말, 많은 인기 코너들을 생산해내며 장수를 누렸던 <쇼 비디오 자키>에 젖줄을 대고 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이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앞서 지적한 내러티브의 부재와 함께 개그맨 실명과 개인사에 대한 과감한 사용이다.

“이덕재 장군”, “김시덕 장군”, “니가 강서구 화곡동 신정초등학교다닐 때…” 등 모든 코너에서 강박적이라고 느낄 만큼 자주 실명과 출신학교 등을 강조하는 것은 개그맨 개개인의 스타성과도 연결될 뿐 아니라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실 극화된 코미디에서 여간해서는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그 캐릭터에 걸맞은 이름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어진 이름이 리얼리티를 부여받기 위해선 캐릭터가 극의 상황에 몰입되길 요구한다. 하지만 콩트형식이 아닌 코미디는 다르다. 출연자 개개인이 한 코너가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통해 캐릭터라이징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맹구’나 ‘영구’나 ‘밥풀떼기’가 아니라 박준형, 이정수, 정형돈으로서의 정체성과 캐릭터를 프로그램 내에서 부여받는 것이다. 실명의 사용은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진 현상인데 이는 ‘바보삼대’ 같은 비교적 내러티브가 살아 있는 코너가 퇴화되고 호흡 빠른 비내러티브코너들이 인기를 얻는 것과 연동한다.

18개나 되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은 문지방을 낮춘 채 서로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생활사투리’의 필라델피아에서 온 네이티브 스피커 샘, 정종철은 거의 모든 코너에서 옥동자로 변하기도 하고, 반 아이들을 향해 “천한 것들… 불결해!”라고 깔보던 ‘영국 순수혈통 루이 윌리엄 세바스천 주니어 3세’의 블론드 가발이 벗겨지면 곧 바로 ‘그렇습니다’의 ‘땅그지’ 임혁필이 되어 “놀아줘~ 놀아줘~” 하며 친구들에게 매달린다.

하나의 코너에서 사용되던 관행들이 다른 코너의 관행들의 하위에 놓이면서 단순히 일회적인 익살이나 대사가 아니라 구조적인 패러디 안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캐릭터의 교환뿐 아니라 이른바 ‘시바이’로 불리는 일정한 행동 양식의 교환도 포함한다. 가령 <작전명령>에서 장웅 장군이 “나 대신 갈 수 있겠나!”란 부탁에 김시덕 장군이 “예! 갈 수 있습니다” 하며 이로 무를 벅벅 ‘가는’ 이 에피소드는, ‘갈갈이’ 박준형의 행동을 김시덕이 패러디하는 동시에 ‘우비삼남매’ 식으로 가는(go)과 가는(grind)의 동음이의의 언어유희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실명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개그맨들 하나하나가 이미 그 이름하에 캐릭터라이징되었기 때문에 ‘작전명령’ 코너의 ‘김시덕 장군’은 무뚝뚝한 표정의 장군일 뿐 아니라 동시에 “끄지라 가스냐야!”를 외치는 ‘생활사투리’의 경상도 남자 김시덕인 것이다. “웨이러 미닛~”을 외치는 ‘갤러리 정’, 정형돈 역시 ‘도레미 트리오’의 어설픈 가르마의 뚱땡이나 “이뤈~ 이뤈~! 이뤄언~”을 연발하는 ‘유치개그’의 느끼남까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령 ‘그렇습니다’를 보고 난 뒤에 그것이 ‘갈갈이 삼형제’에서 본 유머인지, ‘생활사투리’에서 본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무분별한 섞임은 각 코너의 변별력을 없애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침범이 어쩌면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너무 자주는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다. 특별한 기준은 없다. 그냥 지나치다 싶을 때 멈출 뿐.”

이렇듯 <개그콘서트>의 상호텍스트화는 같은 개그맨이 여러 코너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20평 남짓한 연습실에 모여 여기저기 삼삼오오 흩어져 아이디어회의를 하는 이들은, ‘이’ 코너 아이디어를 짜내다가 자신이 출연하는 ‘저’ 코너 사람들이 모인 데 불쑥 등장해 그쪽 아이디어를 던지는 자연스러운 이동을 보이고 이런 아이디어 축출행태는 결국 코너간의 무리없는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크로스오버되는 개그방식은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 상당히 훈련된 관객을 대상으로 할때 진짜 빛을 발한다.

결국 관객이 모든 코너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모든 출연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행해지기 힘든 형태인 것이다. 이는 카메라를 상대로 연출되었던 과거 코미디와 달리 콘서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독특한 형식이 낳은 결과다. 즉 이미 ‘<개그콘서트>적’인 유머코드에 감염되어 있으며, 200 대 1,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마치 컬트영화의 숭배자들처럼 개그맨들의 한마디한마디에 자지러지듯이 웃어넘어지고, 즉각적인 교감과 의사소통을 향해 두손을, 두팔을, 온 심장을 뻗는다. 이런 열광적인 관객이야말로 <개그콘서트>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을 만하다. 객석없는 <개그콘서트>를 상상할 수 있을까? ‘유치개그’ 같은 코너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일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