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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1]

한국 코미디를 뒤집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지식인 H씨. 그는 매주 일요일 저녁 9시가 되면 만사 제쳐두고 반드시 TV 앞에 앉아서 를, 안 본다고 합니다. ” 이 증상은 비단 H씨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지난 1999년 가을 이후 우리 모두에게 나타난 증상이다. ‘사바나 추장’ 심현섭, ‘수다맨’ 강섬범, ‘황마담’ 황승환, ‘이장님’ 김준호, ‘갈갈이’ 박준형, ‘우격다짐’ 이정수, ‘옥동자’ 정종철, ‘세바스찬’ 임혁필, ‘우비삼남매’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우리의 기피증세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바로, 같은 시간 방송되는 <개그콘서트> 때문이다. 햇수로 5년 동안 방영돼오면서 영 시원찮다 싶으면 ‘번개탄’까지 동원해 뜨거운 불씨를 다시 활활 태워왔던 이 프로그램은 좀처럼 시청률 10위권을 벗어나지 않았고, 맨땅에 구르고 진화한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와 완고한 시스템를 정착시켰다. 결국 지난해 말 심현섭, 강성범, 박성호 등의 주요 멤버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대란’을 겪은 뒤에도 코너정비 뒤 첫 방송(1월19일)이 시청률 33.0%을 기록하고 이어 2주 동안 34.4%와 31.8%라는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낳으며 ‘제3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낮은 문지방의 열린 구조를 기본으로 익숙한 틀거리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원초적 반응으로 승부하는 <개그콘서트>. 어떻게 <개그콘서트>는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나. 이 프로그램의 번지수는 대한민국 코미디 지도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 이 무시무시한 ‘유기체의 비밀’을 이제는 캐볼 때가 된 것이다. - 편집자

별 다른 설명도 없다. 긴 여운도 주지 않는다. “아하… 전생이 ‘개’였다고!” 한발 늦게 웃을 때쯤 밴드의 간주는 이미 끝나고 ‘얄쨜없이’ 다른 코너가 시작된다. 총 70분 방송시간 동안 18개 정도의 코너가 포진되어 있는 <개그콘서트>의 호흡은 ‘치고 빠지기’를 기본으로 한다. 한 코너당 짧으면 30, 40초에서 ‘봉숭아학당’을 제외하곤 보통이 3, 4분이며 길어도 10분을 넘기는 법이 없다.

총녹화시간은 NG없이 2시간 가까이 되지만 재미없는 부분이나 약한 코너는 녹화 뒤 잘려나갈 수도 있다. 마치 한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개그콘서트>는 쉬지 않고 달려간다. 리모컨을 다른곳으로 돌렸다간 2, 3개 코너가 휙 넘어가버린다. 특별한 진행자 없이 토크쇼에서 자주 사용되던 무대밴드들의 경쾌한 간주을 타고 다음 코너로 넘어가는 이 형식은 지난 코너에서 형성된 긴장의 끈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다음 코너로 이월시키겠다는 이들의 의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 전체의 구조적인 긴장은 시청자들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결국 시작은 ‘비트박스’로 끝은 ‘봉숭아학당’으로 라는, 큰 틀을 제외하고 그날 녹화 분위기와 관객 반응에 따라 방송으로 나가는 각 코너의 순서는 늘 뒤바뀌고 재배치된다. “영화 보듯이 가만히 보게 되면 달아오르는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 흐름이 아니라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죠.”(김영식 PD) 하지만 이것은 재미있는 코너를 계속해서 이어붙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두 좋아하는 코너만 열 몇개가 이어져 간다면 오히려 지루해서 못 볼걸요?” 대신 반응이 좋은 코너의 틈새에 시작단계에 있는 아슬아슬한 코너들을 배치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속도전이 가능한 것은 <개그콘서트>의 각 코너들이 대부분 비(非)내러티브코미디라는 데 있다.

어느 하나 말이 되는 건 없다. 어떤 코너는 아무 데서나 구사하면 “집단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내보일 만큼. 사실 <개그콘서트>의 대부분의 코미디는 내러티브가 부재한 형식인 비내러티브코미디다. 물론 ‘봉숭아학당’의 경우 이야기 형식을 띠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내러티브의 외피를 가져오는 수준이다. 옥동자와 노통장이, 김댄서가 각자의 개인기를 펼쳐 보이기 위해 교실이라는 배경과 수업이라는 내러티브는 극의 진행을 돕는 도구일 뿐 큰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보아오던 코미디는 어떤 것이었나.

초기 슬랩스틱코미디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면 버라이어티쇼를 제외한 80년대 이후 방송코미디의 대부분은 일정한 결론에 도달하는 콩트코미디였다. 즉 기승전결 과정을 거쳐 해피엔딩이나 곤란한 상황으로 결론나는(하루의 여자사냥을 끝내고 결국 “에구에구에구 오늘도 나는 바보됐다” 식으로 마무리지었던 최양락의 ‘도시의 사냥꾼’처럼) 극화된 콩트코미디에는 이야기의 진행을 위한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코미디는 시작이 곧 전개요 끝이 곧 절정이다. 하여 콩트코미디보다는 적어도 2배 이상의 빠른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비내러티브코미디를 극복하는 것은 대신 캐릭터의 숙지와 진행틀에 대한 반복적 학습이다. “한 코너가 시작되고 초반 3주에서 4주까지는 똑같은 걸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형식과 캐릭터를 인지시키기 위해 약간 내용만 바꾸는 식이다.”(김영식 PD) “에헤헤헤헤헤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정종철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시작되기 무섭게 관객석에서 합창하듯 ‘옥동자표’ 대사를 질러대는 것 역시 몇 주간의 방송을 통해 학습되고 익숙해진 관습 때문이다. 그러나 웃음이 발생하는 지점은 바로 이런 안전한 관습 속에서 매주 바뀌는 내용물이다. 논리적 규범이나 관습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에서 일탈된 새로운 유머는 편안히 등을 눕힌 구조 안에서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요즘 친구들이 콩트 형식의 긴 호흡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거예요. 개그맨들도 그렇고 제작진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그렇고, 모두들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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