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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인감독 출사표 - <나비>의 김현성 [6]
황혜림 2003-02-14

로미오와 줄리엣+인생은 아름다워 | 출사표6 - <나비>의 김현성 감독

이러다 감독됐지요

“자신을 표출하고는 싶은데, 방법이 영화밖에 없었던 것 같다.” 1985년 미국, 시카고.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을 간 사춘기 소년에게 바뀐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아직 설기만 한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백인도 흑인도 아닌 동양인이란 이질감이 종종 또래에 쉽게 섞여들 수 없는 벽을 세우곤 했다. 위안이라면, 비디오를 섭렵하며 영화 안에서 피고 지는 무수한 이야기 속에 공감을 찾는 것.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본 <죠스>에서 마냥 무서웠던 느낌 외에 남은 기억이 없을 만큼 어려서부터 영화를 접한 소년은,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 반했던 4학년 때 이미 감독이라는 조숙한 꿈을 품어온 터였다.

딱히 할 일도, 친구도 없던 당시 미국에서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영화를 많이 본” 덕분에, 오랜 이민 생활에도 우리말이 자연스러운 한편 이따금 “영화 대사 같은 말을 해서” 사람들이 웃는다.

비교적 ‘범생이’로 지냈던 그가 영화 감상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접 카메라를 든 것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찍는 재미에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영화는 여러 사람과 부대껴야 한다는 두려움이 남아 미술을 택했다.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사진과 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에 적응하게 되면서는, “결국 하고 싶은 건 영화인데, 오래 도망다니진 못하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다. 실기 위주인 시카고 컬럼비아 칼리지에서 연출을, 내친 김에 AFI에서 촬영을 공부하는 동안 꾸준히 단편영화를 찍었고, 촬영을 맡은 단편 <그레이 매터>로 2000년 선댄스 단편경쟁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해 직접 연출한 <윈도우>를 출품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임필성 감독과 친구가 된 인연이, 결국 <나비>로 가는 첫 걸음이었던 셈. 그의 소개로 배창호 감독을 만나 <흑수선>의 비주얼 디렉터로 충무로에 발을 디뎠고, 뒤이어 <가문의 영광>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와 안면을 트게 됐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애초 김현성 감독과 <나비>의 만남은 역시 비주얼 디렉터로서였다. <가문의 영광>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터라 흔쾌히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고민하던 차, 연출로 내정됐던 장현수 감독이 그만두게 되면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미국에서 자란데다 72년생인 그로서는 체험과는 거리가 먼 80년대와 삼청교육대란 배경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 역사적인 배경을 빌려왔지만,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는 대중적인 영화로 풀어가자는 그의 의견에 정태원 대표도 선뜻 공감하면서 연출을 맡게 됐다.

그가 생각하는 <나비>는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극한 상황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의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 원래 시나리오에는 삼청교육대의 비중이 더 컸는데, “현실에서는 짓밟힐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 속에서나마 희망을 줄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멜로드라마를 보강하며 다듬었다.

이렇게 할랍니다

지난해 11월26일에 크랭크인한 <나비>는 현재 러닝타임의 후반 12분 분량의 촬영을 남겨둔 상태. 효율적으로 찍고 싶었다는 김현성 감독은 여간해선 하루 12시간 이상 찍지 않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두대의 카메라를 돌리며 마스터 숏과 미디엄 숏, 클로즈업 등 편집에 충분한 소스를 고루 확보하고자 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강한 멜로드라마를 주축으로,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웃기면서도 서글픈 휴머니즘, 그리고 빠른 편집과 액션까지 가볍지 않은 소재지만 최대한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대중영화로 풀어낼 계획이라고. 글 황혜림 blauex@hani.co.kr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나비>는 어떤 영화? 군홧발에 짓밟힌 산골 연인들

“1년 안에 자리잡고 자가용 타고 너 데리러 온다. 폼나게 한번 살아보는 거야.” 산골 청년 민재(김민종)는 연인 은지(김정은)에게 이같은 맹세를 남긴 채 서울로 향한다. 하지만 약속한 1년이 5년이 되도록, 성공은커녕 깡패로 뒷골목을 전전하는 민재. 돈을 더 쉽게 번다는 말에 제비족으로 변신한 민재는 우연히 은지를 만나지만, 그를 찾아 상경했다가 요정에 팔린 은지는 군 고위간부인 허 대령의 정부 혜미가 되어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재회도 잠시. 허 대령에게 발각된 민재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두 연인의 꿈은 권력과 신분상승을 꿈꾸는 황 대위의 군화발에 짓밟힌다.●●●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 출연 김정은, 김민종, 이종원 촬영 중(5월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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