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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화제작4 <불빛> <굿바이,레닌> [5]
최수임 2003-02-21

독일에 의한, 독일을 위한두 편의 독일영화, <불빛>과 <굿바이, 레닌!>

2월12일치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는 전날 상영되었던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의 <불빛>을 크게 다루면서 마이클 윈터보텀의 <이 세상에서>와 <불빛>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상영작 299편 중에 가장 중요한 2편의 영화라고 과감히 적었다. 독일과 폴란드 국경지방을 무대로, 폴란드에서 독일로 넘어오는 난민들과 두 나라의 국경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엮은 영화 <불빛>은, ‘이주’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세상에서>와 한 카테고리에 묶여야 할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 상영작 중 100편이 독일영화인 올해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램의 구성을 고려해볼 때, 이 영화는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과 함께 독일영화의 르네상스를 증명해주는 증거자료로 더 큰 존재가치를 지닌 듯하다.

<어댑테이션>과 <디 아워스>를 위시해 미국영화들이 영화제 초반에 시사를 끝낸 뒤 뒤늦게 선보이기 시작한 독일영화들은, <데이빗 게일의 생애> <솔라리스> 등이 기대 이하의 결과를 보여준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매우 튼실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불빛>은 여러 인물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과 심리가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입체적인 하나의 전체 현실이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택한 영화다. 독일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들여와 장사를 하는 폴란드의 앵벌이 청소년 집단, 폴란드에서 독일 국경을 불법으로 넘으려는 사람들, 독일 군인에게 잡힌 폴란드인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폴란드어-독일어 통역자인 독일 여성, 이주민으로 독일에서 매트리스 판매업을 하는 영세사업가, 폴란드에 사업을 하러 오는 독일 사업가의 통역 일을 하는 폴란드 여성, 딸아이가 세례식에 입을 드레스를 사기 위해 불법입국 브로커 일을 하게 되는 폴란드의 택시기사, 그의 아내이자 부도를 맞은 매트리스 판매업체 직원인 여성 등등. 국경지방인 폴란드의 ‘슬루비체’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암 마인이 아니라)가 주배경인 이 영화는, 폴란드에서 독일로의 이주문제를, 섣부른 동정의 개입없이 건조하면서도 매우 따뜻한 태도로 접근한 수작이다.

<불빛>이 스스로의 ‘가장자리’를 바라봄으로써 스스로를 고찰하는 시선에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베를린 사람들의 영화’인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은 옛 서독과 동독 출신 사람들, ‘베씨’(Wessi)와 ‘오씨’(Ossi) 사이의 틈새에 대한 문제, 동독 출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시선이 안으로 향해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인생은 공사장>으로 이미 사회풍자 코미디에서 그만의 입지를 굳힌 바 있는 볼프강 베커의 이 작품은, 베를린 내에서 잊혀진 도시가 되어가는 옛 동베를린에 대한, 옛 동베를린 출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코믹한 드라마에 실어낸다. 기자회견장에서 연신 “브라보” 소리를 들으며 독일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아낸 것도, 바로 자신들의 문제를 논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빛>의 감독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독일에 돌아왔을 때, 독일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베를린이 특히 그랬지만, 전 폴란드에서 독일로 자동차가 통과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어요.” “슬루비체와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를 슈미트는 매우 훌륭한 영화 촬영지로 만들었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국경지방의 쇠락한 도시에서 그는 독일 배우뿐만 아니라 폴란드 촬영감독, 폴란드 배우들과 함께 이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냉전시대에 남편이 서베를린으로 넘어간 뒤 혼자서 남매를 키워온 동베를린의 한 어머니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수개월 뒤 의식을 회복하자 온 가족이 장벽의 붕괴를 속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동독의 소년합창단 지휘를 맡고 훈장을 받을 만큼 열혈 동독 시민이었던 어머니는 결국 동독의 몰락을 모른 채 행복하게 눈을 감고,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옛 동베를린에 대한 아포리즘이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동베를린,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자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라, 이제는 사라져버린 나라, 동베를린.” <불빛>과 <굿바이, 레닌!> 이 두 작품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선의 진정성에 있어,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들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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